‘더 커뮤니티’, 이 독보적인 정치 실험 서바이벌이 불러 일으킨 기대감
흔히들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면 떠올리는 느낌은 ‘피곤하다’는 것이 아닐까.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누군가는 생존하고 누군가는 탈락한다. 그러면서 그 생존의 법칙이 사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양이라고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은연 중에 강요한다. 그 많은 오디션 형식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떠올려 보라. 마지막 한 명의 생존자만이 독식하는 그 욕망의 질주를 바라보며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동시에 그것이 우리가 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씁쓸해지는 그 양가감정들이 피어오르지 않던가.
하지만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는 마치 이런 사회가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단정이 섣부르다고 말하는 듯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물론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여타의 그것들과 다르지 않게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살아온 배경, 성향 등을 가진 출연자들을 한 자리에 모여 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프로그램이 그 사람의 사상을 나누는 기준은 네 가지다.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이 그 키워드다. 이로써 진보와 보수, 페미니즘과 이퀄리즘, 서민과 부유, 개방과 전통으로 출연자들의 사상은 마치 MBTI처럼 구분된다.
그래서 이런 구분은 출연자들 간의 다른 가치관과 생각들로 인한 갈등과 대결을 상상하게 한다. 여타의 서바이벌이었다면 이들은 ‘사상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사상을 맞춰 탈락시킬 수 있다는 룰이 공개되자마자, 공격과 반격이 벌어지며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민의 힘 소속 도봉갑 당협위원장 출신인 슈퍼맨(김재섭)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문재인 정부 대통령 비서실 청년 비서관 출신인 백곰(박성민)처럼 정치 최전선에서 서로 다른 진영에 있었던 이들은 팽팽한 대립이 불을 보듯 뻔한 일처럼 여겨진다.
나아가 페미니스트인 하마(하미나)와 페미니즘과는 어딘가 거리가 있어 보이는 707 특수단 상사 출신 다크나이트(이창준)이나, 홍콩대 출신의 금수저를 자처하는 지니(이지나)나 흙수저를 자처하는 다크나이트나 청와대 여성 경호원 출신 낭자(이수련)처럼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더 커뮤니티>는 이러한 차이가 결국 분란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저격하며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흐름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간다. 성향과 출신이 다른 이들은 결코 함께 생존해가는 커뮤니티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생각 자체가 그저 고정관념이고 편견의 소산이라는 걸 보여준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테드(이승국)가 통찰력으로 빠르게 현재 그들이 놓여 있는 상황들을 브리핑하듯 정리하면서 다 같이 생존할 수 있는 ‘천국’의 이상을 설파하면, 정치적 성향에 있어서는 충돌하지만 같은 정치권에서 활동했던 이력을 갖고 있어 오히려 더 잘 소통되는 슈퍼맨과 백곰이 머리를 맞대고 그 방법들을 고민한다. 데이터 전문가이자 방송인인 그레이(전민기)나 맥심 모델이지만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슈가(김나정)가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커뮤니티의 소통을 풀어간다.
이러한 통상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예상을 깨는 의외의 전개 때문일까. <더 커뮤니티> 이렇다할 대대적인 홍보 없이도 방송이 진행되면서 입소문을 탔다. 웨이브측의 발표에 의하면 <더 커뮤니티>는 3~4회가 공개된 오픈 2주차 전체 시청시간이 앞선 1주차 대비 120% 증가했고, 설 연휴였던 오픈 3주 차에는 4회차 동시 공개(5~8회)라는 파격 편성으로, 오픈 4주차에는 첫 주 대비 무려 420% 상승한 시청시간을 기록했다. 또 매 신규회차 오픈 당일인 금요일 웨이브 예능 장르 신규유료가입자 견인 1위를 기록했고, 특히 30대 여성 시청시간 비율이 30%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물론 <더 커뮤니티>는 서바이벌이 갖는 분란도 엄연히 존재했다. 모두가 생존하자는 이들의 노력들을 현실주의자인 다크나이트나 낭자 그리고 다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경험자이기도 한 마이클(윤비)은 앞에서는 커뮤니티의 결정에 따르면서도 뒤에서는 비웃는다. 그것은 마치 현실주의자들의 조롱처럼 처음에는 느껴지지만 뒤에 가면 이들이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즉 누군가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베이징덕 요리를 먹지 못하게 되어 너무 슬퍼 울었다는 이야기를 짜장면 한 그릇도 사치로 여겼던 이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처럼 생각과 성향과 출신이 다른 이들이 꾸려가는 커뮤니티는 놀랍게도 꽤 오래도록 유지된다. 전체 11회 분량에서 8회까지 모두가 생존하는 ‘평화의 시대’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평화는 룰 자체가 더 독해지고 불순분자인 벤자민(임현서)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8회에 깨진다. 어쨌든 탈락자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룰의 압박 속에서 평화와 공동 생존을 주장해왔던 이들 중 이를 깨고 배신과 저격을 시도함으로써 첫 번째 탈락자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균열은 또 다른 탈락자로 이어진다. 불순분자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 불순분자를 모두가 협력해 커뮤니티에서 탈락시키지만 또 다른 이가 그 역할을 부여받는 지독한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더 커뮤니티>는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이 그러하듯이 그 생존의 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탈락하고 끝내 살아남는 이들이 상금을 분배해 가져가는 것이 이 형식의 결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건 애초 사상이 전혀 다른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존의 커뮤니티를 꿈꿨던 그 이상이 깨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다크나이트가 주장하듯이 이들이 그간 해왔던 토론과 노력들이 마치 ‘배운 이들의 탁상공론’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커뮤니티>의 서바이벌이 달랐던 건 정해진 생존 현실의 결말을 향해 간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끝없이 이들이 공존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10회에 미션으로 주어진 ‘인생스피치’에서 테드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위선자’라는 키워드를 갖고 개인적인 경험까지 꺼내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자신이 가진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위선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자신 안에 있는 욕망들을 마구 꺼내놓기보다는 그걸 콘트롤하며 살아가는 ‘위선’을 선택할 거라는 거였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더 커뮤니티>에서 8회까지 공존의 이상을 꿈꾸며 해왔던 노력들이 ‘위선’이라고 간단히 폄하될 수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설사 현실은 끝내 이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커뮤니티라는 틀을 통해 함부로 자신만의 욕망을 마구 꺼내놓는 걸 스스로 통제하려 애써 노력하는(물론 실패할 수 있겠지만) 것 자체가 아름다운 선택일 수 있다는 걸 이 독특한 서바이벌은 보여주고 있다.
이제 리얼리티쇼 트렌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한국 예능에서 이제 ‘서바이벌’도 조금은 다른 시도가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더 커뮤니티>는 보여줬다. 그건 정치라는 소재적 차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사회 실험’이라고 할 수 있어 그저 프로그램에 머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가능할 수 있는 보다 본격적인 리얼리티쇼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최근 몇 년 간 진행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 중에서 단연 <더 커뮤니티>는 도드라져 보인다. 이 프로그램이 연 이 문을 통해 리얼리티쇼의 새로운 영역들이 열릴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는 이유다.(사진: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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