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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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방송

이념에 특히 민감한 한국사회에서 이런 서바이벌 실험이라니

D.H.Jung 2024. 2. 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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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커뮤니티’, 첨예한 이념의 차이를 이들은 넘어설 수 있을까

더 커뮤니티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하던 그들은 커뮤니티 센터 안내방송이 나오자 일순 얼어붙었다. 이 커뮤니티에 들어온 그들에게 사전에 그런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는데, 놀랍게도 12명 중 두 사람이 ‘그렇다’고 답했다는 것.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침묵으로 바뀌었다. 성향을 숨긴 채 화기애애한 대화를 하던 사람들 중에 그런 답변을 한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생겨난 변화다. 

 

이 장면은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라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앞으로 무얼 보여주려 하는가를 압축해 보여준다. 이 서바이벌 예능은 ‘정치’를 소재로 했다. 저마다 다른 성향과 생각을 가진 12명을 한 자리에 모아 놓았고, 합숙을 하며 주어진 미션들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으며 더 많은 돈을 분배받는 게 목표다. 매일 리더를 뽑고 당연히 리더는 그만한 메리트와 더불어 더 많은 돈을 자신이 가져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권력을 쥐기 위한 치열한 정치 대결이 펼쳐지게 되는 이유다. 

 

프로그램은 이들을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로 각각 좌파와 우파, 페미니즘과 이퀄리즘, 서민과 부유 그리고 개방과 전통으로 어느 쪽에 어느 만큼의 성향을 갖고 있는가로 나눠 놓았다. 하지만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중도적 입장의 가면을 쓰지만, 밤에 각자 방에서 채팅창으로 펼쳐지는 익명의 토론에서는 저마다의 다른 성향들을 드러낸다.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다’ 같은 젠더 주제에 대한 다소 과격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이가 2명이나 존재한다는 사실에 이들이 놀라고 침묵하게 되는 이유다. 겉보기와는 다른 생각의 차이가 드러나는 어떤 순간에 야기되는 갈등들이 예고되는 장면이다. 

 

흥미로운 건 이 프로그램이 마치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이들이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하나의 작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는 점이다. 첫 날의 리더를 뽑고 돈을 나누며 그 날 저녁 식사 비용으로 각자 받은 돈에서 몇 프로씩 나누어 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은 그래서 마치 하나의 정부가 만들어지고 세금을 몇 프로로 거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과정처럼 보였다. 또 이튿날 미션으로 야외 노동을 하러 가기 위해 인원을 선발하는 과정 역시 노동을 분배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더 커뮤니티>는 이처럼 서로 다른 성향과 이념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사회를 만들어 살아갈 수 있는가를 테스트하는 ‘사회 실험’ 같은 흥미로움을 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프로그램은 ‘서바이벌’과 ‘리얼리티쇼’라는 예능적 성격도 놓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의 성향을 정확히 맞추면 그 사람을 탈락시키고 돈을 벌 수 있는 룰이 주어졌고, 협동을 방해하기 위한 ‘불순분자’로 불리는 스파이도 심어 놓았다. 또 앞서 젠더 문제 같은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자신들의 성향을 드러내는 토론 시간(익명으로 펼쳐지지만 시청자들은 알 수 있다)이나, 그들이 그 안에서 연합을 하거나 배신을 하는 모습이 가감없이 잡히는 리얼리티쇼의 자극점들도 빠지지 않는다. 

 

그간 서바이벌이나 리얼리티쇼라고 하면 소재적으로 음악오디션이나 연애 리얼리티, 게임, 피지컬 같은 영역에 머물러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더 커뮤니티>는 서바이벌 장르에 ‘정치’ 같은 지금껏 시도되지 않았던 영역을 넓혀 놓았다는 데 의미와 가치가 있다. 특히 이념이나 사상처럼 한국사회에서 너무나 예민해 친구들끼리도 만나 속으로만 생각할 뿐 밖으로 내놓지 않았던 그 성향을 가감없이 꺼내놓고 부딪쳐 본다는 점은 의미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다만 우려스럽게 여겨지는 점은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으로 나눠 놓은 성향에 있어서 다른 것들은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지만, 눈에 먼저 띠게 되는 남녀라는 성별이 혹여나 성대결 구도로 첨예화되지는 않을까 싶은 점이다. 물론 성별에 따른 성향이 모두 같다고 볼 순 없지만 이를 하나의 구별점으로 삼아 연합을 하거나 대결갈등을 만들려는 흐름들이 보이기도 해서다. 또 아무래도 이슈를 끌기 위해 가장 먼저 젠더 관련 질문들로 그 성향을 끄집어내 자극적인 화제성을 만들려는 것도 다소 우려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궁금해지는 건, <더 커뮤니티>가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가져온 이 서바이벌 실험이 과연 어떤 결론으로 끝을 맺을까 하는 점이다. 프로그램은 최종 미션으로 출연자들이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는 ‘신뢰게임’을 한다고 정해놨다. 그것이 말해주는 건 이 과정을 통해 성향이 다른 이들이 서로 다르긴 해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면서, 실제 이념과 생각으로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어떤 가능성이나 희망이 존재하는가를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몹시 궁금해지는 이유다. (사진:웨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