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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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HD로 보니 자연다큐가 사네

D.H.Jung 2008. 11. 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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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페셜, ‘순천만 도둑게’

어쩌면 자연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HD 방송을 HDTV로 보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색의 감동이다. 그 선명한 색들 속에서 자연의 생명들은 진짜 살아서 꿈틀꿈틀 화면 밖으로 기어 나올 것만 같다. 국제 환경회의인 람사르 총회를 맞아 특집으로 방송된 MBC 스페셜, ‘순천만 도둑게’에서는 순천만 갯벌에 사는 도둑게를 비롯해, 짱뚱어, 망둥어, 낙지 같은 갯벌생명들을 멀리 떨어진 이 TV 앞까지 생생히 전해주었다.

도둑게는 갯벌에서 뚝방을 넘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와 음식을 훔쳐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HD 영상은 도둑게가 거의 직각에 가까운 뚝방을 마치 스파이더맨처럼 기어오르는 장면과, 닫혀진 부엌문을 넘지 못해 닭똥, 심지어 개 사료까지 훔쳐먹는 장면들을 잡아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갯벌의 모습은 고속촬영으로 찍어 흔히 겉보기에 잠잠하게만 보였던 갯벌의 생동감 넘치는 생명력을 그려냈다.

우리의 시선으로는 포착하기 힘든 것을 내시경 카메라 같은 시야를 확장해주는 장비는 세세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장비를 이용해 갯벌 위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포착하는 카메라들이 발견하려 하는 것은 거기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생존 경쟁이 있고, 사랑이 있고, 끔찍한 공포가 있으며, 즐거움이 있다. 그것들은 짱뚱어들이 서로 툭탁거리며 싸우는 모습에서, 게들이 짝짓기를 하는 모습에서, 또 낙지가 수많은 알을 낳는 장면에서 찾아낼 수 있다.

특히 갯벌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같이 잡아줌으로써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아무런 설명 없이도 영상을 통해 느껴지게 만든 점은 이 프로그램의 덕목이다. 먹이를 잡기 위해 갯벌 위에 긴 족적을 남기는 생물들을 먼저 보여준 후, 자그마한 판자처럼 생긴 배를 끌고 갯벌로 나가는 사람들이 남기는 족적을 연결하자 거기 생태의 일부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과거의 자연다큐가 그저 그 곳에 사는 생물들의 신기한 삶의 방식들을 포착했다면 이제 HD로 생생히 살아난 자연다큐는 거기에 미학적인 영상을 통해 철학적인 울림까지를 전달한다. 실제 리얼리티에 가까운 영상을 통해 그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순간, 또 그 모습이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 자연과 유리되어 살아왔던 도시인은 바로 자연의 일부로 되돌려진다.

MBC 스페셜, ‘순천만 도둑게’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이제 다큐멘터리가 이 HD를 만나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에 대한 예감이었다. 다큐멘터리의 진짜 힘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혹은 인간의 시야로는 잡아낼 수 없어서, 또 잡아낸다 해도 그 결정적 순간을 포착할 수 없어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을 보여주는데 있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영상 자체의 생생함이다. HD로 인해 이제 저 바깥의 자연과 세상은 우리네 안방으로 조금씩 다가오게 되지 않을까. 마치 저 도둑게가 인가로 기어 들어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