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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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에가 껴안은 건 강건우뿐만이 아니다

D.H.Jung 2008. 11. 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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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바' 강마에, 문화현실과 맞서다

정치인이 바뀌면 문화도 다른 길을 걷게 된다는 건 우리나라 문화계의 비극이다. 문화적 소양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느 한 구획을 책임지게 될 정치인에게는 실로 중요한 문제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김명민)는 문화적 소양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 취임한 시장을 불러 자신이 들려주는 음악의 느낌을 다섯 가지 말하라고 한다. 시장은 아름답다, 좋다는 식으로 그것을 단순히 표현한다. 강마에는 거기에 대해 수많은 표현들이 가능한 그 음악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그걸 모든 시민들에게 강요하지는 말라고 말한다. 문화에 대해 모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자기 식으로 마음대로 재단하지는 말라는 말이다.

그 새 시장은 자신의 취임식을 빛나게 할 목적으로 시향을 불러 자신의 애창곡인 ‘마이 웨이’를 연주하라고 했다. 이것은 아주 오래 전 군부독재 시절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자기 취향을 위해 문화를 굴종시키려는 것. 거기에 대해 강마에가 한 것은 존 케이지의 ‘4분33초’다. 이 전위음악은 4분33초 동안 침묵함으로써 그 즉흥적인 반응으로 들려지는 소리들을 음악으로 전화시킨 곡이다. 즉 이 4분33초 간의 침묵 속에서의 자신의 반응은 자신 스스로 연주한 음악이 되는 셈. 새 시장은 침묵으로 꺾어지는 자신의 욕망에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음악, 즉 음악적 소양의 조야함을 드러낸다. 여기서 강마에의 선택이 보여주는 것은 문화 그 자체가 어떤 잘못된 정치적 선택에 대한 저항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 시장이 시향의 존폐를 결정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서 한 정치인은 이렇게 말한다. “먹고살기가 힘든데 그깟 시향이 뭔 소용입니까 그 돈으로 길이나 하나 더 내세요.” 경제가 어려운데 문화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말이다. 그러자 반박이 날아든다. “아무리 어려워도 밥만 먹고삽니까? 향기가 있어야죠.” 그 논박이 오고가는 자리에서 강마에는 귀에 헤드셋을 끼고 클래식을 듣는다. 이 말 저 말 다 듣기 싫다는 무언의 반항인 셈이다. 이 돈을 벌어주는 것도 아니고, 길을 내주는 것도 아닌 음악의 무모성에 대한 시퀀스는 이미 희망을 잃어버린 수재민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만 같은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진짜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에피소드에서 이미 나왔던 대목이다. 클래식으로 대변되는 문화는 불황에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고상한 취미처럼 여겨져 왔지만, 실상은 그것이 오히려 힘겨움에 빠진 서민들을 위무하고 희망을 주는 존재라는 걸 말해준다.

강마에는 이 가녀리고 우리의 현실과 유리되어 보이는 문화(클래식으로 대변되는)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 하고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니 석란시향의 지휘자를 그저 5급 공무원으로 생각하는 새 시장과 맞설 수밖에. 이러한 인식은 강마에가 이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를 끝까지 마음 한 구석에 세워두고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적어도 이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들은 이 어려운 경기와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꿈을 잃지 않는 존재이며, 그래서 실제 현실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밤잠도 설쳐가며 연습을 하는 이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경제를 내세워 문화나 생태 같은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식의 경제 강박증을 가진 정치인들보다 훨씬 건전하고 건설적이다. 이들은 백도 없고 학벌도 별로 없는 보통 사람들이다. 특히 클래식이라는 세계에서 보면 애송이들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애송이들은 클래식 즉, 문화의 힘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꿈은 우리네 서민들의 꿈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 입네 하면서 꿈은 이미 버린 지 오래인 그들과는 대립되는. 강마에가 그들을 보며 안타깝게 생각하고 또 지켜주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그 꿈이다. 그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해서 강마에는 저 스스로도 그러했듯 때로는 냉혹한 현실이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재능도 있고 열정도 넘치며 근성도 있는 강건우(장근석)를 현실 앞에 몰아세우면서도 “독해져라”하고 조언을 해준다. 또 클래식계에 아무런 프로필도 없는 강건우가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못나서”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를 껴안아주며 “아니야. 넌 훌륭해. 대단해.”하고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 강건우에게 하는 강마에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울림은 고스란히 어려운 시기를 마치 단원들이나 강건우처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달된다. 강마에가 껴안은 건 강건우뿐만이 아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