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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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가 없는 사극, ‘대왕 세종’의 가치

D.H.Jung 2008. 11. 1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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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거리, 멜로, 적과 아군이 없는 ‘대왕 세종’

이제 종영을 앞두고 있는 ‘대왕 세종’은 독특한 사극이다. 사극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던 흥행요소들이 빠져있는 사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시청률이 아마도 10% 초반대에서 종영하는 KBS 사극은 ‘대왕 세종’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간대와 채널 이동이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그 근간에는 ‘대왕 세종’만이 가진 이 같은 도전이 깔려있다.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는 ‘대왕 세종’의 행보, 그것은 무엇이었고, 또 어떤 의미가 있나.

볼거리가 없다? 스펙타클보다는 심리사극으로
‘대왕 세종’의 가장 큰 특징이자 난점은 여타의 사극들에 비해 볼거리가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볼거리에도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간 대하사극하면 기대하게 하던 전쟁, 전투신의 그 스펙타클한 영상이 ‘대왕 세종’에는 없었다는 말이다. 어린 충녕대군이 대왕 세종이 되어가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부각되는 것은 정치다. 즉 칼의 싸움이 아닌 말의 싸움이 사극의 중심에 서게 된다.

스펙타클한 영상을 기대한 시청자라면 인물들의 심리에 천착하는 ‘대왕 세종’의 이런 면모는 낯선 것이 아닐 수 없다. 눈과 귀를 열어두기만 하면 쉽게 상황이 파악되면서 역사적 인물들이 그 속에 살아 움직였던 과거의 사극들에 비해, ‘대왕 세종’은 자세하게 인물들의 대사를 읽어나가야 하는 곤혹스러움이 있다. 대사 또한 정치적 언변이 그러하듯이 직설적이라기보다는 중의적이고 다의적이다. 만일 그 대사가 주는 특별한 재미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대왕 세종’은 자칫 ‘말만 번지르르한 사극’으로 비칠 수 있었다.

적도 아군도 없다? 독특한 대결구도
정치 사극을 지향하는 ‘대왕 세종’에는 전투나 전쟁이 중심이 되는 사극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적과 아군의 선명한 대비가 없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는 이 정치판에서 때론 강력한 대립자였던 양녕대군(박상민)과 황희(김갑수)는 후에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이것은 권력에의 욕망을 드러내며 사사건건 세종과 대립하던 박은(박영지)도 마찬가지다. 또한 초기 세종의 지원자였던 최만리(이성민)는 뒤로 가면 원칙주의자로서 세종의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강력한 적이 된다.

이것은 사실 사극에서 이제껏 잘 보여주지 않던 독특한 대결구도이다. 선명한 대결구도가 갖는 복수극의 구조는 사극이 가진 흥행의 핵심요소. ‘대왕 세종’은 그 비현실적인 대결구도를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복마전의 세계로 끄집어낸다. 이것은 또한 세종의 정치철학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오히려 가장 강력한 대립자인 조말생(정동환)을 가장 측근에 두면서 자신이 엇나가지 않도록 균형자 역할을 하게 만든다. 즉 정치란 상명하복의 과정이 아니라 다른 생각들의 부딪침을 통해 보다 나은 것으로의 타협의 과정이라는 것을 ‘대왕 세종’은 보여준다.

멜로가 없다? 인간애를 다루다
대결구도나 전쟁신 같은 스펙타클을 버리고 나면 사극에서 흥행요소로 남는 것은 멜로이다. 현대극이 식상한 것으로 그리는 운명적인 사랑은 아직도 사극 속에서는 유효한 코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왕 세종’에는 그 흔하디 흔한 멜로가 없다. 초반부에 후궁으로 들어와 세종과 사랑을 나누며 후일 신빈 김씨가 되는 역할을 맡았던 이정현은 성대결절을 이유로 하차하자 그나마 있던 이렇다할 멜로 구도는 사라져버렸다.

대신 ‘대왕 세종’이 천착하는 것은 세종의 무한한 백성들에 대한 사랑, 즉 인간애이다. 조선 백성들의 삶을 위해 조선의 역법과 천문을 연구하고, 한글 창제를 해나가는 그 과정은 한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사랑하는가를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독특한 것은 그 과정에서 ‘대왕 세종’만의 재미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백성들을 위해 끊임없이 추구하는 발명의 과정과 그 발명을 제지하려는 세력 간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두뇌 싸움이다. 물론 이 재미 역시 보통의 사극을 기대하던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것으로 비쳐질 수 있었다.

‘대왕 세종’은 결과적으로 이 사극의 세 가지 흥행코드를 버림으로써 시청률에서 실패한 사극이 되었다. 주말 밤, 아직까지는 도전적인 새로움보다는 익숙함이 통한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렇지만 ‘대왕 세종’이 그린 그 독특한 세계 자체가 시청률이라는 양적 판단에 재단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낯선 사극의 구조는 훗날 어쩌면 새로운 대중적인 사극의 구조 속으로 편입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도 하지 않지만 해야하는 길을 걸어갔다는 점에서 ‘대왕 세종’은 그 드라마의 주인공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