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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베토벤 바이러스’, 그들이 바로 우리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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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의 자화상 그려낸 ‘베토벤 바이러스’

‘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이라는 우리네 드라마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소재를 다룬 드라마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그 속에서 타인의 얼굴이 아닌 우리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딘지 우리와는 다를 것만 같은 클래식이란 소재였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 서민들의 자화상을 그 속에 담고 있었다.

정희연, 우리 시대 주부의 자화상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늘 뒷전이고 오로지 가족들이 우선인 삶을 살다가 뒤늦게 첼리스트로서의 꿈을 찾아낸 정희연(송옥숙)은 바로 우리네 주부들의 초상이다. 가족들 속에서는 늘 밥 차려라, 수험생 뒷바라지해라는 말에 마치 그것만이 그녀의 인생이라도 되는 양, 못 챙기는 걸 미안해하는 그녀는 바로 그 틀을 벗어나 강마에(김명민)를 만나면서 삶이 변화한다. 그녀를 변하게 한 한 마디는 다름 아닌 강마에의 “똥 덩어리”. 아픈 말이지만 그것은 스스로를 똥 덩어리 취급하며 살아온 그녀를 자신과 맞서게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서조차 남편의 눈길을 의식하는 그녀는 그래도 늘 가족의 틀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이 시대 주부들의 초상이다.

박혁권, 이 시대 가장의 자화상
콘트라베이스로서의 꿈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박혁권(정석용)은 가장으로서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 하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과 같다. 당장 아기의 분유 값이 급하고, 살아가야 할 집을 구하는 것이 급급한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밟히는 것은 가족이다. 그런데 때론 이것은 핑계가 된다. 너무나 멀리 있어 보이는 꿈을 저 스스로 포기하려는 핑계. 직장에서 후배에게 밟히면서도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그를 오히려 바꾸는 것은 가족이다. 조심스럽게 내미는 그의 꿈으로의 발걸음이 남다르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강건우, 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
강건우(장근석)는 절대음감을 가진 천재로 등장하지만 그 면면은 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왜 즐거우면 안돼요”하는 그의 질문은 이 시대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직업이든, 학업이든 늘 성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기성세대들에게 강건우가 던지는 질문은 무언가 깊이 없어 보이는 아이의 그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즐기는 자를 노력하는 자가 이기지 못하는 시대, 강건우의 질문은 오히려 성공하고 나서도 즐거움을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것이 아닐까.

김갑용, 이 시대 실버의 자화상
시향 단원으로 활동했지만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연주할 자리를 얻지 못하고 주로 길거리에서 연주하게 되는 김갑용(이순재)은 이 시대 실버들의 자화상이다. 한 시대의 중심이었고 그들로 인해 지금의 삶이 가능하게 됐지만 점점 중심에서 벗어나 지금은 잊혀져버린. 친자식보다 하이든(쥬니)에게 더 자식 같은 정을 받고 말년의 기억을 갖게된 김갑용은 이 아이러니한 현실의 대변자다. 치매는 어쩌면 그에게 행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하고픈 것만 기억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이든. 이 시대 청소년들이 자화상
하이든은 교육열 속에 부자인 아이들은 더 좋은 대학에 가고, 가난한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이 시대 청소년들의 자화상이다. 누구는 매달 몇 백만 원씩 레슨을 받으며 공부를 하고, 누구는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대물림되는 시대. 빈곤은 또한 문화까지도 특정한 사람들만의 향유물로 바꾸어 버리는 세태. 하이든의 절망과 까칠함은 바로 그런 세상과 맞서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배용기, 이 시대 마이너리티의 자화상
제대로 배운 게 없어 밤무대에서 활동하지만 오케스트라가 꿈인 배용기는 이 시대 마이너리티의 자화상이다. 캬바레라 비아냥대는 말들에 “캬바레 무시하지마”하고 말하는 그의 말에는 진정성이 들어있다. 세상에 인간이라는 단어 앞에 메이저와 마이너가 따로 있을까. 꿈이 있는 한 말이다.

강마에, 이 시대 멘토의 자화상
저마다 사연 한 가지씩들을 갖고 이 시대의 대변자들로서 등장한 이들 모두를 조련해 어느 경지에까지 끌고 가 꿈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강마에는 이 시대 멘토의 자화상이다. 그네들의 착한 마음을 다 알고는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강력한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그들 앞에 스스로 벽이 될 수밖에 없는 멘토. 냉혹한 현실 앞에 약해질까봐 혹 상처를 입을까봐 괜한 부드러움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이 시대의 멘토.

‘베토벤 바이러스’가 그려낸 캐릭터들은 모두 이 시대의 자화상들이었다. 거기에는 현실이 힘겹기만 한 서민들의 얼굴들이 있었다. 무모하리 만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클래식이 낯설어도 우리는 모두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강마에가 그 중심에 섰던 이유는 바로 이 서민들의 꿈을 이끌어주는 리더십으로 자리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이 작은 오케스트라는 지금 현재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현실은 답답하지만 꿈은 포기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