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되고송? 이제는 ‘난.. 뿐이고’세상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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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송? 이제는 ‘난.. 뿐이고’세상

D.H.Jung 2008. 11. 2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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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되고’와 ‘했을 뿐이고’사이

“부장 싫으면 피하면 되고, 못 참겠으면 그만 두면 되고, 견디다보면 또 월급날 되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한 때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모 통신사의 ‘되고송’. 특유의 긍정어법으로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화제를 일으켰었다. 부정적 상황을 긍정적 생각으로 뛰어넘겠다는 이 단순한 가사의 구조는 결국 마지막 후렴구, ‘생각대로 하면 되고’로 결론지어진다. 모든 건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긍정론은 현실이 그나마 버틸 만 할 때나 통용되는 말이다. 따라서 더 어려운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올 때, 긍정론은 자칫 부정적 현실을 가리는 자그마한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는 것이 탄로 나기도 한다. 여기에 그 천 쪼가리를 씌운 어떤 의도 같은 것까지 읽게 되면 긍정론은 거꾸로 더 잔인하고 무서운 현실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가 ‘세상을 바꾸려하지 말고 네 생각을 바꿔라’라는 말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긍정론이 먹히던 시절의 아이콘이 ‘되고송’이었다면, 지금은 ‘난... 했을 뿐이고’의 시대다. 개그콘서트에 복귀한 개그맨 안상태가 들고 나온 이 유행어에는 현실에 대한 부정의식이 짙게 깔려 있다. 물론 ‘...뿐이고’는 적극적인 부정이 아니다. 소극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뿐이다.

안상태의 이 개그코너가 가진 구조를 보면 어째서 이 유행어가 지금 시대의 대중들의 마음을 콕 집어냈는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이 코너에서 안상태는 기자로 등장한다. 기자란 자신이 본 현실과 그 현실을 보여줄 대상 즉 대중들 사이에 선 매개자다. 따라서 이 매체적 역할을 하는 존재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는 것. 대중들에게 리포터는 따라서 감정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매체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면 그 매체가 전해주는 세상의 소식은 어떤가. 매일 같이 급락하는 경제소식과 하수상한 사회의 각종 사건사고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세상은 사실 아무리 리포터라고 해도 감정 없는 뉴스를 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저 편의 일이라 여겨지던 그 세상의 사건사고들이 이제는 나의 일이 되어 가는 이 체감상황 속에서 안상태 기자의 토로가 보여주는 것은 그 현실 속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저 TV 속의 뉴스가, 그것도 점점 험악해져 가는 소식들이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되어 가는 세상에 대한 억울함. 잘못은 엄한데서 했는데 자신에게 떨어지는 불똥에 대한 서민들의 억울함. 안상태 기자가 ‘난... 했을 뿐이고!’를 외치며 하는 말에는 서민들과의 이런 공감의식이 깔려있다.

부정의 세상에 긍정론은 허위다. 안상태 기자의 짧고 소심한 부정에 대한 열광은 바로 그 허위의 세상을 순간 발견하는데서 나오는 것이다. 급전직하의 주식경기 속에서도 자꾸만 사라고만 외쳤던 사람들 속에서 “사지 말라”고 부정했던 미네르바처럼, 누군가는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자꾸만 말하지만 그래도 “했을 뿐이고!”를 외치며 그 허위를 꼬집어주는 듯한 안상태 기자의 말에 자꾸 끌리는 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