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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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히어로’, 명랑하게 볼 수 없는 이유

D.H.Jung 2008. 12. 21.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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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기획의도, 연예인 신변잡기로 가는 ‘명랑히어로’

‘명랑히어로’가 처음 방송을 탔을 때, 그것은 토크쇼의 놀라운 진화로 받아들여졌다. 그것은 그저 웃고 떠들고 즐기는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로 채워지거나 출연자들의 홍보수단으로 활용되던 토크쇼를 넘어서 사회 시사문제를 예능 프로그램 속으로 과감히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시사문제라면 늘 심각하고 무언가 특정한 사람들만이 거론해야될 것으로 오인되었던 것을 ‘명랑히어로’는 가볍게 씹어줌으로써 그것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웃고 떠들면서 체화시켰다.

‘명랑히어로’의 형식변화, 진화일까 퇴화일까
하지만 무슨 일인지 이 재미와 의미까지 가질 수 있었던 훌륭한 형식은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 포맷은 가상장례식을 표방한 ‘두 번 살다’로 바뀌었다. 그러자 ‘명랑히어로’가 가진 외부에서 끌어오는 토크쇼의 화제는 결국 과거 토크쇼들이 하던 연예인들의 이야기로 퇴행했다. 토크쇼의 진화로서 받아들여지던 ‘명랑히어로’는 이 순간부터 퇴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두 번 살다’란 결국 화제에서 현재 벗어나고 있는 연예인을 죽음이라는 형식 속으로 집어넣고는 다시 그를 회고해 살려내는 토크쇼다. 이것은 한 마디로 죽어가는 이미지를 살리는 작업과 마찬가지다. 결국 연예인 홍보라는 얘기다.

그나마 ‘두 번 살다’는 그 형식만으로는 참신한 면이 있었다. 누군가 결국은 맞이하게 될 죽음을 미리 체험해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또 그것이 토크쇼 형식으로 들어왔을 때 묘한 재미를 선사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사실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하는 가상 장례식에서 문상의 형식으로 자리를 한 선후배 연예인들이 오히려 고인(?)의 험담을 할 때다. 즉 이 형식은 본래 의도를 거스를 때 재미를 줄 수 있는 구조다. 이것은 그만큼 대중들은 홍보지향형 토크쇼를 금세 간파해내고 쉬 식상해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있다는 자인인 셈이다.

그 한계를 일찍이 알았기 때문일까. 이제 바뀌어진 형식은 ‘명랑한 회고전’이다. 이것은 형식적으로도 전혀 새롭거나 참신한 것이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주인공을 세워놓고 그 사람에 대해 증언을 하는 형식은 아침방송에 늘 등장하는 고전적인 토크쇼의 그것일 뿐이다. ‘인생중간점검프로젝트’라고 거창하게 붙여 놓았지만 이것은 결국 ‘두 번 살다’의 노골화된 홍보 토크쇼로의 귀환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초창기 ‘명랑히어로’와 비교해보면 과도하게 연성화된 형식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의도가 산으로 가는 ‘명랑토론회’
한편 새로운 코너로 등장했던 ‘명랑토론회’ 역시 처음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게스트가 책을 한 권 선정하고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TV 책을 말하다’같은 교양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는 바로 ‘명랑히어로’가 초기 시사문제를 끌어들였던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초반 신선하다 생각했던 이 포맷은 점차 책 이야기는 사라지고 게스트를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세워놓은 채, 저들끼리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코너로 변질되고 있다.

박진희가 들고 나온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부부가 그래도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그런데 ‘명랑토론회’에서 이 책을 가지고 고작 한 이야기는 자신들의 연애에 얽힌 스킨십 이야기나 첫날밤에 대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정작 책을 들고 나온 박진희는 거의 아무런 얘기를 하지 못했고, 마지막에 가서 긍정적으로 하는 말이 “보통의 남자는 이런 감성 이해할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라디오스타’에서 목격했던 김구라, 신정환, 윤종신, 김국진 4자 구도로 만들어진 그 분위기의 연장선이다. 물론 ‘라디오스타’는 여전히 매력적인 구도를 갖고 있지만 그 형식이 과도하게 스핀오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형식의 과도한 소비가 참신한 형식마저 식상하게 만든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것은 취지가 ‘라디오스타’와는 다르다. ‘라디오스타’는 말 그대로 스타들을 게스트로 출연시켜 그들의 이야기를 하는 연예인 토크쇼를 표방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홍보성 멘트를 불식시키는 불친절한 형식이 어떤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명랑한 책이 지구를 움직인다’는 캐치프레이즈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읽고싶은 욕구를 만들어내야 그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다.

토크쇼에 있어서 의외성이 갖는 참신함과 의도 자체가 산으로 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프로그램 말미에 박진희가 그나마 챙겨준다고 한 말과 거기에 대해 김국진이 보탠 자성적인 말은 그래서 의미 있게 들린다. 박진희는 “여섯 가지 다른 생각을 배우고 가서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물론 이 말은 아마도 자기 생각과는 달랐던 MC들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표현한 것일 것이다), 거기에 대해 김국진은 마치 자신들의 토크쇼가 엉뚱한 곳에 와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이 “여섯 가지 생각이 한 가지 생각보다 못한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명랑히어로’, 그 이름에 걸맞는 명랑한 토크쇼로 다시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