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글들/명랑TV

2008 토크쇼, ‘무릎팍 도사’가 무릎 꿇린 것

728x90

‘무릎팍 도사’를 보면 2009 토크쇼가 보인다

올 예능을 단적으로 정리하자면 그 한 축이 리얼 버라이어티쇼이고 다른 한 축은 토크쇼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토크쇼에 있어서 올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을 고른다면 단연 ‘무릎팍 도사’가 꼽히지 않을까. 그것은 ‘무릎팍 도사’가 얻은 시청률 성적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토크쇼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때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걸어온 ‘무릎팍 도사’의 실험적인 행보가 전체 토크쇼에 일으킨 영향력을 말하는 것이다. 올 한 해 ‘무릎팍 도사’는 우리네 토크쇼에 어떤 실험을 했고 그것은 내년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탈신비주의, 탈권위주의 바람
‘무릎팍 도사’의 핵심적인 특징은 배틀 구조의 화법으로 진행되는 토크의 진검 승부라는 점이다. 마치 탐문하듯이 상대방이 원하든 원치 않든 시청자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끌어내려는 도사와, 그것을 숨기거나 아예 자포자기하듯 털어놓는 게스트의 입장이 절묘하게 부딪치는 이곳은 기존 연예인들 혹은 유명인들이 갖고 있던 신비주의 혹은 권위주의의 껍질을 벗겨내는 곳이기도 하다. 과거 신비주의 마케팅이 주조를 이루던 시대라면 이 대결구도는 애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겠지만, 이제 탈신비주의가 어떤 대세가 된 상황에서 이 도사와 게스트가 벌이는 한판 굿은 가능해진다. 그 양자가 공유한 목적은 신비주의라는 겉옷을 벗어 던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신 연예인 혹은 유명인은 친근한 이미지를 대신 얻게 된다. 반면 도사가 얻는 것은 바로 그 연예인, 유명인의 껍질을 벗겨내는 쾌감이다.

도사의 직설어법은 여타의 토크쇼에서 에둘러 홍보가 아닌 척 가장한 채 홍보를 하는 그런 방식을 깨뜨려버린다. 올해 다른 토크쇼들은 여전히 이 방식을 어떻게 잘 위장한 채 고수할 것인지만을 고민해왔다. ‘야심만만2’도 올킬 시스템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게스트의 홍보에 집중하고 있고, 게스트의 카테고리화로 어떤 주제를 상정하는 방식을 취하는 ‘놀러와’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해피투게더’나 ‘샴페인’ 같은 토크쇼에도 해당되는 얘기다. ‘명랑히어로’는 초기에 시사문제를 끌어 들여 이 문제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두 번 살다’라는 컨셉트는 역시 인물 홍보로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토크쇼들 역시 직설어법을 따르고 있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무릎팍 도사’ 같은 형식은 구축하지 못했다. 과거의 형식에 화법만 바꾼 셈. ‘무릎팍 도사’가 보여준 화법과 형식의 균형은 2009년 토크쇼들의 주된 고민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 중심주의 벗어난 게스트 섭외의 확장
무엇보다 올해 ‘무릎팍 도사’가 토크쇼의 변화에 기여한 부분은 게스트 섭외에 있어서 연예인 중심주의를 벗어났다는 점이다. 언제부턴가 토크쇼라고 하면 늘 연예인들이 출연해 자신들의 신변잡기나 홍보거리를 토로하는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 초기 ‘무릎팍 도사’도 이 한계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했었다. 논란 연예인을 섭외한 것은 참신한 부분이었지만 그것 역시 논란 연예인에게 면죄부를 씌워주었다는 역홍보의 한계를 드러낸 부분이다. 한참 공격적인 발언을 하던 도사가 마지막에 가서 “○○여! 영원하라!”고 외치는 장면은 이 토크쇼 역시 연예인 홍보의 한 분파임을 자인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 직면해서 ‘무릎팍 도사’가 꺼낸 비연예인 게스트라는 카드는 주효했다. 비연예인 출연은 연예인 홍보라는 지적을 간단히 뛰어넘으면서 동시에 그만큼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릎팍 도사’는 양준혁, 박세리, 이만기, 장미란, 추성훈 같은 스포츠인들은 물론이고 산악인 엄홍길,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장영주), 발레무용가 강수진, 만화가 허영만, 소설가 이외수 같은 문화계 전반의 인물들을 비롯해 심지어 우리 시대의 소설가 황석영까지 토크쇼로 끌어들여 한바탕 걸판진 솔직한 토크의 재미 속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연예인보다는 비연예인이 출연했을 때 더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는 점은 앞으로 우리네 토크쇼들이 게스트를 섭외하는데 있어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준 셈이 아닐 수 없다.

집단MC체제? 1인 토크쇼로도 충분
무엇보다도 ‘무릎팍 도사’가 내년 토크쇼의 어떤 전범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모두가 집단 MC체제를 부르짖을 때 홀로 1인 토크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건방진 도사 유세윤과 올밴이 있지만 이들은 보조적인 위치에 있을 뿐, 그 진짜 형태는 1인 토크쇼로서 게스트와 메인 MC의 토크 대결이 중심을 이룬다. ‘무릎팍 도사’는 정통 토크쇼 구조를 유지하면서, 대신 토크의 형식과 대화의 방식을 바꾸는 것으로 정면승부를 통해 그간 홍보와 진정성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있던 토크쇼의 문제를 뛰어넘었다.

이것은 현재 경기불황으로 인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집단 MC체제에 있어서 하나의 가능성이 된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 같은 1인 체제가 구조조정의 한 선택으로 대세를 이룬다고 해도 똑같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박중훈쇼’ 같은 1인 체제의 토크쇼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쇼의 경우처럼 그저 과거로 회귀하는 1인 토크쇼는 어쩌면 시대착오일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1인 토크쇼라도 그 구조 위에 이 시대의 화법을 적용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토크쇼는 늘 반복되는 것 같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시대에 맞게 얼굴을 고쳐오며 진화해왔다. 그 전방위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무릎팍 도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