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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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악역 이제 웬만한 주인공보다 멋있다, 왜?

D.H.Jung 2009. 4. 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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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이야기’의 김강우, ‘카인과 아벨’의 백승현

악역이야말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힘이라고 할 때, ‘남자이야기’의 채도우(김강우)는 실로 매력적인 악역이라 할 수 있다. 잔뜩 인상을 쓰면서 악다구니를 해대는 ‘에덴의 동쪽’의 신태환(조민기)이 온몸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신이 악역임을 드러낸다면, 채도우는 최대한 그걸 숨김으로써 그 속의 섬뜩한 면모를 보여준다.

채도우라는 악역의 핵심은 ‘감정이 없다’는 것. 어린 시절 늘 병상에 누워 진통제로 살아가는 어머니에게 주사를 끊임없이 내주며, ‘엄마, 이젠 행복해?’하고 묻던 인물이다. 그 감정 없음은 타인이건 가족이건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끔찍하다. 그는 아버지 채회장(장항선)과도 대놓고 맞서는 패륜아이기도 하다.

감정이 없는 그는 목적을 위해서는 친구 앞에서 무릎도 꿇고, 심지어 눈앞에서 친구를 배신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이른바 사이코패스라고도 불리는 채도우의 이런 감정 없는 악역이 상징해서 보여주는 건 이 드라마의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바로 자본이라고 하는 감정 없이 사람을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존재를 채도우라는 캐릭터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감정 없는 자본(채도우)이 이른바 작전이라 불리는 숫자놀음을 하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숫자 놀음이란 그 숫자 밑에 놓여진 사람의 존재 따위는 지워버리기 일쑤다. 따라서 자본을 가진 자의 횡포는 그 숫자 밑에 놓여진 사람을 파탄에 이르게도 하고 죽음으로도 내몬다. 숫자만을 보는 채도우에게 감정이란 있을 수 없다. 즉 채도우란 캐릭터는 무감정한 돈의 생리로 움직이는 이 사회를 축소해 보여준다.

한편 ‘카인과 아벨’에서 주목할 악역은 최치수(백승현)다. 주인공인 이초인(소지섭)과 실제 대결구도를 이루는 인물은 이선우(신현준)지만, 왜 최치수가 더 주목되는 걸까. 그것은 이선우가 가진 형이라는 입장이 악역으로서 복합적인 성격을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선우라는 악역은 대놓고 시청자들을 도발한다기보다는 어딘지 동정이 가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것은 그가 뇌종양이라는 병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이선우가 가진 너무 많은 성격적 소재들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그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반면 최치수는 사실 그다지 주목할 만한 악역의 성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그는 단순히 정해진 소지섭의 B급 악역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치수라는 인물은 백승현이라는 연기자를 통해 그 존재감을 살려냈다. 사실 최치수는 그다지 대사도 없고 상황에 대한 심리묘사도 거의 없다. 하지만 짧은 순간에 보여주는 백승현 특유의 표정과 목소리 톤은 보는 이를 소름 돋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악역이 이제 웬만한 주인공보다 더 주목되는 이유는 사실상 대립구도에서 드라마를 극적으로 이끌어가는 인물이 악역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제는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딘지 꾸며낸 듯한 달달하고 교훈적인 주인공들보다는 이 사회적 문제들을 독하게 표현해내는 악역이 오히려 리얼한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악역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그 역할을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강우와 백승현은 악역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준 배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