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프로인 그들, 아마추어 같이 왜? 본문

옛글들/명랑TV

프로인 그들, 아마추어 같이 왜?

D.H.Jung 2009. 4. 22. 00:01
728x90

아마추어리즘이 예능의 새 트렌드가 된 사연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이 유행어만큼 작금의 예능 트렌드를 보여주는 게 있을까. ‘개그콘서트’의 종료된 코너 ‘많이 컸네 황회장’에서 황현희가 히트시켰던 이 유행어에는 “알 거 다 아는 사람들끼리 왜 이러냐”는 핀잔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말이 웃음을 주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상은 아마추어 같은 유치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황현희는 조직의 회장이지만 체신머리 없이 일개 실장과 사소한 말싸움을 하면서 이 말을 내뱉는다. 프로라면 보여주지 않을 속내가 살짝 드러났을 때 터져 나오는 웃음. 아마추어리즘은 이렇게 리얼리티 시대에 예능의 새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너는 내 운명’에서 발연기 논란을 빚었던 박재정이 ‘상상플러스’의 MC로 자리한 사연은 이 드라마에서 비난받았던 아마추어리즘이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빛을 발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박재정이 보여준 어색한 연기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그 자체로 리얼이 된다. ‘상상플러스’에서 그가 보여주는 특유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멘트는 프로정신으로 똘똘 뭉친 MC들이 보여주었던 틀에 박힌 모습을 순간적으로 깨버린다. 이처럼 리얼리티 시대에 연기되지 않는 리얼함은 어색함을 어떤 진면목으로 평가절상시키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박명수는 콩트 개그 시대에도 활동해온 개그맨이다. 즉 설정에 맞는 연기를 기본적으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라디오 DJ로서의 박명수는 겉으로 보기엔 어수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것이 하나의 설정이며 진행자체는 꽤 매끄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무한도전’이나 ‘해피투게더’에 출연하는 박명수는 MC의 자질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멘트는 앞뒤가 맞지 않고, 단어 사용은 부적절하며, 발음 또한 어색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진행본능을 갖고 있는 유재석과 대비되면서 그 상황을 형식적인 것이 아닌 리얼한 것으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유재석은 박명수의 그런 면들을 잘 포착해 전체 분위기를 리얼하게 이끌어나간다. 이렇게 보면 박명수는 어색함을 캐릭터로 활용해 리얼함을 만들어낼 줄 아는 흔치 않은 개그맨으로 볼 수 있다. 아마추어처럼 하는 것이 오히려 그의 프로 정신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리얼하게 그려진 것은 그들이 거의 방송 부적합자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으로 불린 정형돈, 사고만 저지르는 바보 정준하, 정신을 쏙 빼놓는 돌+아이 노홍철 같은 캐릭터들은 그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어색함으로 오히려 리얼 버라이어티를 살렸다. 이것은 이후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에서 이른바 뜬 캐릭터들의 면면을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1박2일’의 초딩 은지원, 버라이어티에서 다큐를 찍는다 핀잔 받는 김C가 그렇고, ‘패밀리가 떴다’에서 주목을 받았던 엉성 캐릭터 이천희가 그렇다. 이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유재석과 강호동이 확고한 메인 MC로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프로와 아마추어를 넘나드는(진행에 있어서는 프로이면서도 설정에 있어서는 아마추어처럼 행동하는) 능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거꾸로 예능 프로그램이 점점 웃기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개그맨들보다는 그것이 비전문인 가수나 배우들을 더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그저 그 다른 형식 속에서의 부적응을 통해 엉성함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리얼한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문제가 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차츰 그 형식에 적응되는 그 상황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하나의 트렌드로 제시하는 도전과제들이 점점 독해지고 상상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그 적응상태를 깨기 위한 것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프로그램의 이 같은 집착은 때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까지 아마추어로 포장하게 만든다. ‘무한도전’에서 실패했던 미션, 좀비 특집이나 ‘1박2일’에서 기상악화로 가려던 제주도를 포기하고 보낸 영종도에서의 하루 같은 실패담은 과거라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밤새워 새로 찍던가 아니면 방영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얼리티 시대에 이 실패한 미션들은 가감 없이 방영되고, PD들은 자막으로 시청자에게 사죄를 하는 모습을 연출한다. 하지만 이 성의 없어 보이는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한 영상들은 오히려 그 리얼리티를 보장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다.

리얼리티 시대, 예능 프로그램은 프로로서의 매끄러운 진행보다는 아마추어처럼 거칠지만 생생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 예능인들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러 어색하게 행동하고, 상황은 어색함을 드러낼 수 있게 조장되며, 연출은 그 어색함을 극대화해서 포착해낸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아마추어같이 행동한다고 해서 진짜 아마추어일까. 지금은 가장 자연스럽게 아마추어같이 행동하는 이가 프로인 세상이다. 그런 면에서 농담처럼 던지는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라는 말은 이들에게는 핀잔이 아닌 칭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