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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휴먼다큐 사랑', 열두 살 재희가 알려준 사랑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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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랑', 사랑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세상 그 어떤 부모가 그 작고 예쁜 손을 놓을 수 있을까. 세상 그 어떤 부모가 별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눈을 보고 싶지 않을까. 뇌종양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재희(12)의 엄마 정자경씨는 말을 할 수 없는 재희에게 계속 말을 건다. 눈을 뜨라고, 손을 올려보라고, 또 보드판을 내밀며 무언가를 써보라고. 그러면 고맙게도 아이는 엄마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그 작은 동작들을 힘겹지만 해준다. 어쩌면 아이는 엄마가 그 작은 동작 하나에도 기쁨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도 모른다.

실로 아이와 함께 그렇게 있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부모가 바라는 전부일 것이다. 서로 말을 걸고,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매만지고, 뺨을 맞대는 그것이 아마도 세상의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재희의 부모는 그 많지 않은 사람 중의 한 부모다. '우리가 사랑할 시간'을 문득 느끼게 되는 그 순간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옆에 함께 있는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존재들이 아닌가.

'휴먼다큐 사랑-우리가 사랑할 시간 편'은 뇌종양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중인 재희와 그 가족들의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길어야 1년이라는 선고에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에서 가족들은 그제야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흔히들 '사랑하며 살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재희네 가족이 그 악몽같은 선고 이후 보낸 2년 남짓은 바로 그 말을 실증해보인 시간들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얼굴에 크림을 찍어 바르는 엄마는 매일 매일이 이렇게 새로울 수가 없는 것이 모두 재희 덕분이라고 말한다.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는 행복이라고. 하지만 어찌 고통이 없을까. 매일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병수발은 눈앞에서 아파하는 딸을 바라보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고통이었을 것이다. 잘 움직일 수 없는 딸의 손과 발이 되어 거의 모든 것을 해주고 있지만, 딸의 아픔을 대신해줄 수는 없는 그 손과 발은 또한 얼마나 무력하게 느껴졌을까.

하지만 꼭 안아주는 따뜻한 엄마의 품속에서 재희는 가수의 꿈을 꿀 수 있었고 꿈을 이룰 수도 있었다. 그 품이 주었던 희망은 재희를 살게 해주는 힘이기도 했다. 그렇게 품으로 보듬어 희망을 준 엄마에게 재희는 자주 '미안하다, 고맙습니다'라고 보드판에 삐뚤빼뚤 어렵게 써놓는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재희가 안쓰럽다며 엄마는 "그 애는 나니까 자식은 나니까 내가 나를 위해 하는 건데 그런 얘기 들을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이미 엄마는 그렇게 재희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사랑할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을까. 그것은 재희의 엄마도 또 세상의 그 어떤 사람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열두 살 재희와 그 가족은 우리에게 그 얼마나 남아있을 지 모르기에 바로 지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순간순간을 충분한 사랑의 시간으로 지내온 엄마의 가슴 속에서 이미 재희는 그 눈과 입을 닮아버린 별과 노래가 되어 영원히 살아가고 있었다.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