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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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배철수와 김창완, 그 청년정신의 소유자들

D.H.Jung 2009. 5. 1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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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숫자에 불과한 것으로 만드는 그들

햇수로 19년이 흘렀지만 한결 같이 저녁 6시면 들려오던 그 털털한 목소리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7000회를 맞은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배철수는 7000이라는 숫자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도 방송을 할 뿐"이라는 것. 하지만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한 팝 음악을 소개하는 라디오 DJ로 같은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만일 당대 스무 살로 처음 '배철수의 음악캠프'의 청취자가 됐던 분이라면 지금 불혹의 나이가 되어 있을 터(필자가 그렇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은 그 자체적으로 20년 터울의 세대가 갖는 차이 따위는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역시 배철수라는 청년정신의 소유자 덕분이다.

이 라디오 방송을 듣다보면 배철수가 가진 세대를 넘는 흡인력에 놀라게 된다. 그는 때론 사뭇 진지하게 세상 돌아가는 꼴에 대해 거침없이 쓴 소리를 해대다가도 특유의 어눌한 목소리로 자신 역시 그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젠 채 하지 않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는 이 화법 속에는 자신 또한 한 명의 샐러리맨이라는 동류의식이 담겨 있다.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에 대해 배울 것은 배우는 자세로 듣다가도 할 얘기는 따끔하게 하는 그 모습은 선생의 목소리가 아니라 친구의 목소리로 친근하게 다가간다. 배철수를 들으며 우리가 느끼는 것은 세월이라는 어찌 보면 잔인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편안한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청년일 수 있다는 그 편안함.

이런 한결 같은 청년정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또 한 인물은 김창완이다. '아니 벌써'로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한 그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며" 인디 밴드들과 나란히 소극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동생의 죽음으로 산울림을 해체하고 작년 김창완 밴드를 재조직한 그는 인디 정신을 통해 청년을 수혈 받은 듯, 초창기 산울림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무엇보다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은 그의 현재가 단지 산울림을 추억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여전히 진행형이고 여전히 도전적이다.

김창완은 또한 연기라는 영역에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열어놓았다. 김창완은 드라마의 조역으로 늘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 역할을 해오다가, '하얀거탑'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용길 부원장이라는 정치적인 인물을 연기하며 그는 조직 내에 늘 있게 마련인 직장 상사의 또 하나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능글능글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편안함에서 나오는 그의 연기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귀차니스트 홍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내조의 여왕'에서 김홍식 이사 역할로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배철수나 김창완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했던(물론 현재도 김창완은 활동중이지만), 음악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배철수가 송골매라는 그룹사운드로 한국적인 록의 세계에 한 획을 그었다면, 김창완은 포크 록의 신화라 할 수 있는 산울림을 통해 때론 동요적이고 때론 우울하며 때론 반항적인 록의 자유분방함을 구가해왔다. 아마도 이들이 지금껏 청년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록이 갖는 도전정신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 이들 청년(?)의 행보가 우리 문화에 어떤 궤적으로 남을 지 자못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