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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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로 남은 대통령, 아직도 웃고 있네

D.H.Jung 2009. 5. 3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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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 3일', 'MBC스페셜'이 담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아주 행복합니다." 그 3일이 어쩌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행복하시냐고 묻는 PD의 질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주저 없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5월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 - 대통령의 귀향 봉하마을 3일간의 기록'에서 그는 여전히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약 1년이 지난 지금, 그 행복한 웃음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

영상물이 역사가 되는 시대,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가 평소 꿈꾸었던 평범한 촌부가 되어 살겠다던 한 대통령의 3일을 기록한 ‘다큐 3일’. 이 평범한 일상이 청와대에서 집무를 보던 시절보다 더 진짜 역사처럼 느껴지는 것은 늘 서민들의 눈높이에서 털털하게 웃고 있던 그 모습 때문일 것이다.

"손 흔들면 같이 손 흔들어주고 그러시더라구요." 마을로 가는 버스기사의 한 마디나, “산책하시다가 오셔서 장사 잘 돼요? 라고 불쑥 물어 깜짝 놀랐다”는 가게 아주머니, 동네 주민들과 형 동생 하며 지내는 그 모습은 ‘다큐 3일’이 잡아낸 그의 진정성이었다. 얼굴 한 번 보려고 손 한 번 잡으려고, 한 번 안아보려고 봉하마을을 찾는 사람들 앞에 왜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나와 인사를 하냐고 묻자, 그는 “손님이잖아요. 손님이 왔는데 안 내다 본다는 게... 백수잖아요. 그거라도 해야지”하고 말했다.

이 말은 ‘MBC스페셜’에서 2부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말을 조명했던 ‘대한민국 대통령’편을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그는 청와대 나가면 맨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여행이라며, “시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가고 싶다”고 했다. 사람이 많은 데 못가는 것이 못내 답답했던 것. “5년 내내 격리돼서 살았는데. 나가서도 여전히 격리될 것 같은 불안감 이런 게 있죠. 여러 사람이 구경하고 악수 청하고 그러면 그게 격리죠. 사람들 속의 격리.” 이렇게 말했던 그는 ‘다큐 3일’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손을 내밀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MBC스페셜’과 ‘다큐 3일’이 오버랩되는 이유는 그 두 영상 속에 담겨진 이질적인 세계와 그 다른 세계 속에서도 늘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 때문이다. ‘MBC스페셜’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모습은 ‘다큐 3일’의 촌부의 모습과, 화려한 청와대는 작고 아담한 봉하마을과, 끝없이 관리되던 음식들은 김치 한 조각에 마시는 막걸리 한 잔과, 펑크가 나도 시속 백 킬로로 달린다던 전용차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전거와 끝없이 대비되며 어떤 울림을 만든다.

대비되는 건 그런 외적인 배경뿐만이 아니다. 한 때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했으나 봉하마을로 내려와 동네 주민이 다 되어버린 비서관, 양복을 벗어던지고 구두대신 등산화를 챙겨 신은 게 오히려 편하다던 자칭 머슴 전직 청와대 행정관, 문구 하나를 고치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던 그 손에 이제는 삽을 들고 있는 전직 홍보 수석실 대변인. 그들은 두 다큐멘터리 속에서 전혀 다른 세계 속에 자신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관된 그 모습들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민을 향한 마음이 정책으로서나 생활로서나 다 한 가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MBC스페셜’에서 대통령 집무실 한 벽을 장식하고 있는 희망돼지 저금통은 청와대와 봉하마을 만큼의 거리를 이어주는 힘이었다.

다큐로 남은 대통령. 그는 여전히 그 특유의 서민적인 얼굴로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 속에 들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좀체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을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