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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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일밤', 진짜 문제는 뭘까

D.H.Jung 2009. 6. 3.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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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아이템보다는 캐릭터의 호감도가 더 큰 문제

지금 '일밤'이 처한 위기 상황은 한때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처했던 그것과 유사하다. '새로운 코너를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형식을 바꿔보기도 하지만 상황은 좀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장수 버라이어티쇼가 왜 갑자기 이런 문제에 봉착한 걸까.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일밤'을 대표할만한 MC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일밤'에는 신동엽, 김용만, 탁재훈, 김구라, 신정환, 이혁재가 '퀴즈 프린스'에 투입되었고,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에는 소녀시대, 유세윤, 조혜련, 김신영이, 또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황정음과 김용준 커플을 중심으로 신영일, 오영실, 김태현, 유채영이 포진해 있다.

'공포영화제작소'는 애초부터 소녀시대라는 아이콘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MC는 그다지 중요한 위치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 결혼했어요'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퀴즈 프린스' 같은 코너는 말 그대로 MC들이 나서줘야 되는 코너다. 이 코너의 MC들은 물론 한 때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분명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스타성이 예전 같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경규가 KBS '남자의 자격'으로 들어가면서 '일밤'은 대표 MC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착각하는 것이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이 어떤 성공을 가져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된 작금에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리얼한 반응을 보여주고 이끌어내는 대표 MC가 없으면 성공은 요원해진다.

여기서 대표 MC의 중요성은 그 능력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매력도다. 신동엽이나 김용만, 이혁재, 신정환, 김구라 같은 MC들이 가진 능력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것이다. 능력으로만 따진다면야 '패밀리가 떴다'의 이천희나 박예진 같은 출연자는 이들을 따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호감도로 보면 상황은 정반대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시청자들은 특별한 형식보다 거기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는가를 먼저 살핀다.

'일밤'의 위기를 가져온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호감가는 인물들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공포영화제작소'의 소녀시대는 어떨까. 이것은 거꾸로 코너 자체가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깎아내는 경향이 강하다고 여겨진다. 여전히 시청자들은 소녀시대를 보기 위해 이 코너에 눈길을 주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소녀시대 때문이지 이 코너가 재미있어서가 아니다. 그런데 이 코너의 형식은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깨는 데서 나온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대표 MC의 부재를 출연자들의 호감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알렉스-신애, 서인영-크라운제이가 있던 초창기 커플들에서부터 최근 강인-이윤지, 태연-정형돈에 이르기까지 풋풋한 캐릭터들의 가상결혼이 주는 설정의 판타지는 그 자체로 강한 호감을 이끌어내 주었다. 하지만 판타지가 주는 한계는 곧 드러났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꺼낸 카드가 황정음-김용준이라는 실제 커플이었다.

아마도 판타지의 한계를 뛰어넘고 리얼이 주는 화제성과 자극적인 부분들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것 역시 적절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가상결혼의 커플이 리얼이냐 판타지냐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것도 결국은 호감도의 문제로 귀결된다. 황정음과 김용준이 실제 커플인 것은 맞지만 과거 네 커플이 해나가던 다채로운 결혼의 판타지 이야기를 대신할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인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판타지라면 적절한 캐릭터 설정이라도 하겠지만 리얼을 강조하다 보니 이제는 약간의 설정조차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를 위험에 처해버렸다. 반면 '패밀리가 떴다'를 보면 오히려 해답은 보인다. 대본 공개와 함께 리얼 논란이 나왔지만 '패밀리가 떴다'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유는 리얼이냐 판타지냐에 상관없이 캐릭터들이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매너리즘의 문제가 불거져 나오자 '패밀리가 떴다' 역시 약간의 변화를 모색했지만, 그래도 그 형태 자체를 깨지는 않았다.

'패밀리가 떴다'는 정체된 캐릭터를 매력적인 게스트의 힘으로 끌고 나갔다. 여러 사정으로 박예진과 이천희가 나가고(여기에는 물론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박해진, 박시연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오게 되었지만 이 프로그램은 특유의 판타지적 설정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충분히 새 멤버들 속에서도 어떤 매력을 끄집어낼 공산이 크다. 그만큼 형식 자체가 인물들의 호감을 끌어내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는 게 이 프로그램의 최대 장점이다.

작금의 '일밤'이 처한 위기에는 물론 시의적절한 아이템이나 기획을 하지 못한 문제가 크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그걸 살리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면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캐릭터의 부재 혹은 캐릭터들의 떨어진 호감도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일밤'의 꼬여버린 위기 상황은 바로 이 캐릭터의 문제에서부터 풀어나가야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