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무한도전'의 역발상, 불황을 먹어치우다 본문

옛글들/명랑TV

'무한도전'의 역발상, 불황을 먹어치우다

D.H.Jung 2009. 5. 17.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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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겨서 웃기는 시대, 먹여서 웃긴 '무한도전' 그 의미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리얼리티의 재료는? 바로 음식이다. '무한도전'은 일찍이 이 음식이 주는 식욕과 굶주림 사이에서 리얼리티를 포착해 큰 웃음을 주었다. '1박2일'의 복불복에서 가장 많이 쓰인 조건은 먹음직한 음식 앞에서 굶는 것이었고, '패밀리가 떴다'는 프로그램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음식을 만들어먹는데 쓴다. 웃음의 포인트도 모두 이 음식과 관련된 것들이 가장 크다. 아무리 설정과 연기를 한다 해도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음식 앞에서는 리얼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로 음식을 활용해 웃음을 주는 방식은 굶기는 쪽이 많았다. 이유는 아마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과거 '무리한 도전' 시절, 정준하가 우동을 몇 그릇씩 먹어야 하는 미션도 있었지만 배부름이 주는 리얼리티는 어딘지 거북한 면이 있다. 굶주림의 정서가 주는 공감대가 서민들의 정서와 맞닿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배고픔이 주는 웃음은 풍요의 시대의 정반대 그림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더 큰 웃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박명수의 기습공격'편이 선택한 것은 굶주림이 아니라 오히려 먹여서 웃기는 쪽이었다. '서민 경제 살리기'라는 기치를 내건 박명수와 무한도전 멤버들이 기습 공격한 것은 불황에 힘겨워하는 치킨집과 삼겹살집. 불황으로 늘어난 주름과 한숨을 한 방에 날려줄 프로젝트로서 최고 매상을 올려주기 위해 유도부원들과 축구부원들 그리고 개그맨들이 일정 매출 이상 음식을 먹는 미션을 수행했다.

그저 음식점을 찾아가 먹는다면 말 그대로 '서민 경제 살리기' 이벤트 프로그램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 상황 자체를 웃음의 코드와 연결시킴으로써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진수를 선보였다. 군사들을 출전시켜 전쟁을 치르는 설정극을 음식 먹어치우기와 연결시켰던 것. 미션을 실패하면 음식 값을 치러줘야 하는 박명수 장군(?)의 진두지휘 하에 음식점에 투입된 군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치킨과 삼겹살을 먹어 치웠다. 설정극을 차용하자 이 단순할 수 있는 미션은, 배부름에 힘겨워하는 군사들을 독려하고 때때로 무와 음료수를 보급(?)해주는 장면들로 전화되면서 버라이어티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과거 정준하가 우동을 몇 그릇씩 먹던 '무리한 도전'이 주던 거북한 리얼리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것은 이 '많이 먹는 미션'이 '서민 경제 살리기'라는 의미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많이 먹는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을 때는 그 도전 자체가 무식하고 거북한 일이 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돕는다는 차원이 되면 보람 있는 일로 바뀌어진다. 그런 면에서 '무한도전-박명수의 기습공격'편은 음식점에도, 운동부원들에게도, 또 '무한도전'에게도 모두 이득을 남겼다. 음식점은 음식을 팔았고, 운동부원은 실컷 음식을 먹었으며, '무한도전'은 그걸 통해 큰 웃음을 얻었다.

불황에 아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쓰는 것이다.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 '무한도전'의 공격 대상이었던 치킨집과 삼겹살집이 우리네 서민 경제처럼 보이고, 그들이 먹어치우는 엄청난 양의 치킨과 삼겹살과의 전쟁이 불황과의 전쟁처럼 읽혀지는 것은 왜일까. 굶겨서 웃기는 시대, 먹여서 웃긴 '무한도전'의 웃음이 값지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