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뚫고 하이킥', 경계를 넘어서는 웃음의 가치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이순재는 칠순의 노인이면서도 김자옥과의 멜로를 선보이고 있다. 학생들에게 들킬까, 가족들에게 들킬까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그 비밀 데이트에서 이순재는 포복절도의 액션을 선보인다. 2층 학교 실험실에서 학생들에게 들킬 위험에 처하자 이순재가 방독면을 쓴 채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식이다. 이 코믹 설정에는 두 가지 파격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나이 들어서도 여전히 설렘을 간직한 어르신들의 멜로와, 노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액션의 파격이다.
이 파격은 지금까지 TV가 보여주었던 어르신들의 상투적인 이미지를 깨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그리고 그 웃음의 대상은 어르신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 시트콤을 보는 온 가족이 이순재와 김자옥의 비밀 데이트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즉 그 안에는 이미 세대를 넘는 어떤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이 들어서 연애하는 것이 뭐가 어때서?" 하고 시트콤은 묻고 있고, 바로 그 질문이 가진 상투성을 깨는 지점에는 그 파격이 가진 세대를 넘는 어떤 공감대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상투적인 선입견의 벽을 깨는 방식은 '지붕 뚫고 하이킥'이라는 시트콤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이 선입견의 벽은 이 시트콤이 설정해 놓은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캐릭터들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제 갓 상경해 서울의 풍경이 모두 낯선 9살 신애에서부터 10대의 고등학생 준혁, 20대의 지훈과 정음, 중년의 정보석과 이현경(오현경), 그리고 노년의 이순재와 김자옥까지, 이 시트콤은 캐릭터의 연령대가 다양하다.
그러니 이 다양한 세대를 포함하는 캐릭터들이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시트콤이 보여주는 갈등들은 세대 간의 차이나, 살아왔던 배경의 차이, 성별의 차이, 직업의 차이, 국적의 차이 같은 서로 다른 인물들의 성격과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그 지향점은 그러한 차이의 인정, 화해 같은 것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시트콤은 그 차이의 부딪침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해 화해의 계기를 준다고도 할 수 있다.
이순재와 딸인 현경 사이의 갈등은 세대 간의 차이를 보여주지만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이미 어떤 화해를 전제하고 있다. 산골 소녀 신애가 서울로 상경해 겪는 이야기 속에는 도시와 시골이 갖는 문화적 갈등이 들어가 있지만 그것은 신애의 서울 적응기로 차츰 화해를 만들어간다. 정보석과 현경은 그 역전된 성별 역할로 달라진 부부관계를 모색하고, 줄리엔이 보여주는 따뜻함은 국적의 벽을 넘는 인간애를 보여준다.
게다가 이 시트콤은 장르가 갖는 상투적인 벽까지도 깨고 있다. 신애와 세경의 에피소드는 신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극적이다. 빚쟁이들에게 쫓겨 아버지와 헤어진 그들은 '아빠 없는 하늘 아래'에서 눈물 겨운 서울 살이를 하지만 이 시트콤은 이 비극을 비극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본래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 시트콤은 잘 알고 있다. 고통이 고통이 될 때 비극이 되지만, 고통이 고통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것은 희극으로 바뀐다. 신애가 언니인 세경을 잃어버리고 울면서 서울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장면은 고통스런 비극이지만, 그렇게 울면서도 식욕을 어쩌지 못하고 누군가 남겨놓은 컵라면을 먹고, 무료로 나눠주는 밥을 꾸역꾸역 먹는 장면은 그 고통을 무화시킬 정도로 충분히 희극적이다.
'지붕 뚫고'라는 표현은 아마도 이 시트콤이 가진 유쾌함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 표현을 통해 떠오르는 또 다른 이미지는 어떤 선입견으로 갖고 있는 상투의 지붕을 뚫는 이 시트콤이 서 있는 자리다. 상투의 지붕을 뚫는 장면에서 터져 나오는 하이킥 같은 웃음은, 바로 이 현실의 상투가 만들어놓은 벽이 무너지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것은 일상화된 상투의 틀을 깨는 데서 웃음을 유발하는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가진 고유의 미덕인지도 모른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지금 그 시트콤 고유의 미덕을 잘 살려내고 있다.
'옛글들 > 드라마 곱씹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누가 시트콤을 하위장르라 폄하했나 (0) | 2009.09.21 |
---|---|
'선덕여왕' 빼곤 볼게 없다, 어쩌다가? (1) | 2009.09.18 |
막장의 저녁, 유쾌한 시트콤을 기대하는 이유 (1) | 2009.09.07 |
사회극을 꿈꾼 공포극, 그 미완의 이유 (0) | 2009.09.04 |
어디서 본 듯, 2% 부족한 드라마들 (0) | 2009.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