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들/책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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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왜 '동백아가씨'를 부르다 우셨을까새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11. 8. 17. 10:09
어린 시절, 아버지는 가끔 다락방에서 꺼내온 아코디언을 연주하셨다. 아코디언하면 어딘지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집시의 시간'에 나오는 음악 같은 걸 떠올리겠지만, 아버지가 연주하는 곡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것은 트로트, 이른바 뽕짝이었다. 쿵짝 쿵짜작 하며 이어지는 아코디언의 반주는 기막히게 뽕짝에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그 연주에 맞춰 '목포의 눈물'이나 '동백아가씨' 같은 곡을 잘도 부르셨다. 아버지가 연주할 때 어머니는 다소곳이 앉아 그 노래를 감상하시곤 했다. 마치 팬이라도 되는 듯이.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왠지 '동백아가씨'를 떠올리곤 한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일로 지새우시던 어머니는 어쩌면 아버지의 노래 한 자락에 피로를 푸셨을 지도. 아버지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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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좋아 보인다구? 모르시는 말씀!새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11. 7. 20. 09:38
정말 영화처럼 사는 형이 있다. 물론 이 영화는 로맨틱한 장르가 아니다. 예술가의 삶을 다루는 조금은 지질하게도 보이는 홍상수표 영화 같은 장르다. 회사를 다녔고 마흔 즈음에 때려 쳤다. 그리고 한 지방 도시로 내려가 자그마한 방 한 칸 딸린 집을 얻었다. 한 때 음악카페를 운영하기도 했던(쫄딱 망했지만) 이 형은 방안 한쪽 벽 책장에 레코드판을 빼곡히 채워 넣었다. 찾아갈 때마다 마치 음악카페처럼 형은 velvet underground나 한대수 판을 틀어주곤 했다. 비가 올 때 좁은 방안에서 형이랑 소주 한 잔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는 맛은 정말 좋았다. 그것은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12시쯤 해서 게으르게 일어나 대충 밥을 챙겨먹고 하루 종일 동네와 일상을 기웃거리면서 감성을 열어놓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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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름다운 집에 대하여새글들/책으로 세상보기 2011. 7. 1. 21:33
아주 예전 곤지암에 사는 화가 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작업실로 쓰시는 집이었는데 넓은 마당과 집 구석구석 선생님의 손때가 묻은 작품들이 투박하게 놓여져 있었죠. TV가 없어서 우리는 서로 얼굴보고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술도 많이 마셨죠. 선생님이 집 뒤켠에서 따온 호박을 듬성듬성 자르고 햄 하나를 통째로 꺼내서 역시 대충 썰어 넣고는 볶아서 안주로 내놓으셨습니다. 글쎄요... 맛으로 치면 식당처럼 맛깔나진 않았지만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여긴 농약도 없어. 그냥 먹어도 되지." 그 말 한 마디에 왠지 더 맛이 나더군요.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노래도 듣고 그러다 녹차도 마셨습니다. 차와 술은 함께 하면 안된다고들 했지만 그 때는 녹차를 안주삼아 술을 마시기도 했죠. 그렇게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