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제대로 건드린 소외된 이들을 위한 위로

 

“저도 지쳐요.”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황용식(강하늘)이 그렇게 말하자 동백(공효진)은 ‘이별’을 떠올렸다. “내가 뭐라고”를 입에 달고 살던 동백이었다. 까불이가 낸 방화로 불구덩이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했던 그 순간, 황용식은 온 몸을 물을 끼얹은 후 그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불길 속에서 자신을 구해내다 다쳐 병상에 누워 있는 용식을 보며 동백은 눈물이 차올랐다. 용식이 그렇게 다친 것조차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는 동백이었다. 하지만 용식이 지치고 그만 하자고 한 건 ‘이별’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놈의 썸. 다 때려 쳐요. 다 때려 치고요. 우리 고만 결혼해요. 저 동백씨 걱정돼서 못 살겠어요. 걱정되고 애가 닳고 그리고... 너무 너무 귀여워갔구요. 죽을 때까지 내 옆에 두고 싶어요. 팔자도 옮는다며요. 예? 동백씨 제 팔자가요. 아주 타고난 상팔자래요. 내가 내거 동백씨한테 다 퍼다 줄게요.”

 

용식의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그 직진 청혼에 동백이 그간 철벽처럼 치고 있던 마음이 녹아내린다. ‘내 나이 서른 넷 난생처음 청혼을 받았고, 사랑받지 못해 찌질 대던 일생의 불안이 날아가며 겁도 없이 말해버렸다.’ 동백은 용식에게 하지 못했던 그 말을 결국 내놓는다. “용식씨 사랑해요.” 썸의 끝이다.

 

아마도 용식이가 동백에게 청혼을 하고 키스를 하는 그 장면에서 시청자들도 심쿵했을 게다. 도대체 이 촌스러운 남자의 촌스럽기 그지없는 청혼의 무엇이 이토록 시청자들을 설레게 만들었을까. 항간에는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며 용식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신드롬까지 이야기한다. 이미 맘 카페 같은 곳에서는 이른바 ‘촌므파탈’로 불리는 ‘용식이 앓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된 건 동백과 용식의 멜로에 투영된 특별한 몰입과 공감의 카타르시스 때문이다. 어딘지 세상에서 소외되거나 존재 가치를 폄하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이들은 동백이라는 인물에 동일시를 느낄 수밖에 없다. 고아에 미혼모라는 그 사회적 편견 때문에 동백이 겪는 낮게 보는 시선들이, 열심히 살아도 잘 풀리지 않고 그래서 내가 뭘 잘못했나 스스로 생각할 정도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소외된 이들에게 자신들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픔과 힘겨움에 깊이 공감하게 된 시청자들은 갑자기 나타나 당신 삶이 잘못된 게 아니고 당신 삶을 그렇게 비뚤어지게 바라보는 세상이 잘못된 것이며, 그런 편견의 비수들 앞에 나서서 온 몸으로 그걸 받아 내주는 용식이라는 인물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 돈키호테처럼 앞뒤 잴 줄 모르고 돌직구만 날리는 인물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래서 동백을 울리고, 시청자들을 울린다.

 

촌므파탈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아마도 멋진 말만 내뱉는 차도남이 갑자기 동백 같은 소외된 이 앞에 나타나 용식이 하는 그런 말들을 했다면 이만한 위로가 되진 못했을 게다. 그런 말은 어딘지 신뢰가 덜 가는 입바른 말처럼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건 무식해서 잘 모르겠고”라고 거두절미하며 솔직히 있는 그대로 촌스러워도 속내를 꺼내놓는 용식이라는 캐릭터기에 이 말들은 더더욱 빛을 낸다. 듣는 이들이 따뜻한 위로를 느낄 만큼.

 

<동백꽃 필 무렵>은 유독 인생캐릭터가 많은 작품이다. 손담비가 그렇고 마을 아주머니들로 나오는 ‘옹벤져스’ 4인방, 김선영, 백현주, 김미화, 이선희가 그러하며, 남다른 걸크러시 캐릭터로 주목받고 있는 염혜란이나 찌질한 남성의 끝판을 보여주는 오정세, 아역이지만 어른을 울릴 정도로 깊은 감정 연기를 보여주는 김강훈 등등 인생캐릭터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 중에 으뜸은 역시 강하늘이다. 이토록 순박하고 촌스러운 캐릭터로 심지어 신드롬의 징후까지 만들어내고 있으니.(사진:KBS)

‘동백꽃’, 우리가 물망초 손담비에게 이토록 몰입했던 건

 

“내가 아주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구나.” 동백(공효진)이 강종렬(김지석)로부터 받았다 돌려주려 했던 3천만 원을 갖고 도망치려던 향미(손담비)는 결국 다시 터덜터덜 동백의 가게 까멜리아로 돌아온다. 그 발걸음은 아마도 어린 시절 자신의 집이었지만 들어가기 꺼려졌던 엄마의 술집 물망초로 향하던 그 마음의 무게만큼 무거웠을 게다.

 

그 누구도 향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몸까지 험하게 굴리고 심지어 사기와 협박을 해서까지 번 돈으로 유학에 생활비, 병원비까지 대왔던 코펜하겐에 있는 동생이지만 그 동생은 향미가 그 곳으로 오는 걸 꺼려했다. 동생은 향미가 무슨 짓을 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다며 여기선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했다. 아마도 집에 들어가지 못해 바깥을 맴돌던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물망초로 들어가곤 했던 향미였다. 가족이라고 있는 동생까지 이토록 편견의 시선으로 대하는데 타인들은 오죽할까.

 

향미의 생이 끝나게 된 마지막 날,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살의를 보냈다. 협박하기 위해 찾아간 강종렬은 향미를 보고 “죽여버릴까”라고 했고, 제시카(지이수) 역시 향미의 당당한 도발에 살의를 드러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향미는 그렇게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유일하게 단 한 사람 동백만이 갈 곳 없는 그를 받아줬다. 도망치듯 까멜리아를 나왔던 향미가 그래도 갈 곳이 그 곳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잘 말해준다.

 

그는 잊혀진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주목받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한 삶에 남는 건 막연한 편견어린 시선뿐이었다. 편견이란 결국 자세히 살피지 않는 그 무관심과 소외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동백 또한 고아에 미혼모라는 편견 속에 살아왔지만, 향미는 다방에서 일하다 옹산이라는 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가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조차 던져지지 않았다.

 

동백이 향미에게 아무 것도 묻지 않고 편견어린 시선 또한 던지지 않으며 믿어주고 받아들여줬던 건 자신 또한 그 편견 속에 외롭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밤늦게 오삼불고기 1인분을 배달 나가는 동백에게 향미가 앞으로 1인분은 배달하지 말라고 했을 때, 동백이 “그럼 혼자 사는 사람은 오삼불고기 못 먹게?”하고 되묻는 대목은 그래서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동백은 그렇게 항상 누군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향미는 그게 짜증나게 가슴을 울린다. “언니가 지금 남의 오삼 걱정할 처지에요?” 그 무표정하기만 했던 향미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묻지도 않고 다시 받아주는 동백 앞에서 향미는 울컥해진다. “너나 나나 인생 바닥인 건 쌤쌤인데 왜 너만.. 너만 그렇게.. 지가 부모사랑을 받아봤어 세상 대접을 받아봤어. 사랑받아본 적도 없는 년이 뭘 그렇게 다 퍼줘? 왜 맨날 다 품어?” 문득 동백은 향미가 차고 있는 자신의 팔찌를 보고는 돈도 안되는 그걸 왜 가져갔냐고 묻는다. 그런데 향미의 말이 너무나 슬프다. “널 기억하려구. 그 놈의 동백이 까먹고 살기 싫어서 가져갔다 왜.”

 

“너 가게 이름 드럽게 잘 졌어. 동백꽃 꽃말 덕에 니 팔자는 필 거야.” 꽃말이야 다 좋은 거 아니냐는 동백의 말에 향미는 드럽게 박복한 꽃말도 있다며 물망초의 꽃말을 알려준다. “나를 잊지 말아요. 너도 나 잊지마. 엄마니 동생이니 다 나를 제끼고 잘 사는데 너 하나는 나 좀 기억해줘라. 그래야 나도 세상에 살다온 거 같지.”

 

많은 이들이 이 대사에 깊이 공감했을 게다. 무수히 많은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고 살다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심지어 누군가의 지독한 편견 속에서 고통만 받다가. <동백꽃 필 무렵>의 임상춘 작가는 아마도 이렇게 잊혀져간 사람들에 대한 깊은 헌사를 담으려 했던 것 같다. 그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함이 오롯이 느껴진다.(사진:KBS)

‘동백꽃’ 어쩌다 발견한 손담비, 인생캐릭터 만났네

 

이런 걸 인생캐릭터(인생캐)라고 부르는 것일 게다.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활짝 피어난 건 동백(공효진)의 인생만이 아니다. 이 드라마로 의외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손담비도 활짝 피었다. 향미라는 캐릭터가 이제 손담비라는 인물에 척척 달라붙는다. 특유의 느릿하고 차분하지만 어딘지 차갑게 느껴지는 어조와 무표정한 얼굴. 하지만 그런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내면의 따뜻함과 아픔. 그런 복합적인 면모가 향미에게서는 느껴진다.

 

MBC 수목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 빗대 표현한다면 ‘어쩌다 발견한 손담비’라고 할까. 처음 향미라는 인물은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 옆에 있는 엑스트라에 가까운 조역처럼 여겨졌다. 거기에는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담고 있는 일종의 ‘편견’이나 ‘선입견’도 깔려 있었다. 까멜리아라는 술집에서 알바를 하는 인물에 대해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것.

 

하지만 향미는 조금씩 그 존재감을 키워나갔다. 노규태(오정세)라는 옹산의 군수를 꿈꾸지만 어딘지 빈 구석이 많은 인물을 옭아매 점점 궁지로 몰아넣는 향미라는 캐릭터는 웃음을 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섬뜩한 느낌을 더하기 시작했다. 특히 무표정한 얼굴에서 담담하게 나오는 말들은 인생 다 산 듯한 서늘함이 느껴졌고, 해외로 떠날 거라며 어딘가로 송금을 하는 이 인물에서는 미스터리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여기에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지면서 심지어 향미가 까불이가 아니냐는 추측까지 생겨났다. 혹자는 향미가 어떤 의도를 갖고 까불이인 양 낙서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추측까지 내놨다. 이렇게 된 건 향미라는 인물에 대해 시청자들이 점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어느새 향미는 드라마 속 부수적인 인물에서 점점 중심으로 들어오게 됐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지만 향미가 까불이가 아니고 까불이에 의한 희생자였다는 정황증거가 등장했다. 사체에서 나온 지갑에 향미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분증이 발견되었던 것. 그런데 향미가 향후 살해당할 것이라는 정황증거와 함께 현재 그가 처한 안타까운 상황과 또 그 와중에도 동백의 믿어주는 마음에 대해 갈등하는 모습은 시청자들도 연민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강종렬(김지석)이 갖다 놓은 돈 다발 앞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향미의 현실 상황과 동백에 대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갑자기 나타나 평생 나한테 빚 갚으며 살아야 된다는 사내에게 “내 인생이 그렇지 머”라고 체념하는 향미는 그를 돕기 위해 나서주는 동백에게 “이 언니 짜증나”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질러 왔지만 동백의 이 친절함과 따뜻한 마음에 스스로가 갈등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안쓰러운 모습에 시청자들은 향미가 까불이에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갖게 됐다. 발견된 건 신분증일 뿐이지 그걸 갖고 있는 사체가 향미라는 건 추정일 뿐이지 않냐며.

 

향미는 알고 보니 동백의 어린 시절 똑같이 따돌림을 당했던 일명 ‘물망초’였다. 어머니가 술을 파는 물망초에서 일한다는 것 때문에 붙여진 그 별명은 향미를 그 어둡고 희망 없는 삶 속으로 곤두박질치게 했을 게다. 그러다 그 먼 길을 돌아 까멜리아에 한 겨울 눈 내리는 날 슬리퍼 바람으로 찾아온 그에게 동백은 따뜻한 밥을 나눴다.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낸 향미가 속절없이 살해를 당한다는 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어느새 우리도 모르게 향미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되었고, 그걸 연기하고 있는 손담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연기하고는 거리가 멀다 여겨져 이 드라마에 등장할 때부터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손담비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들여다보니 그 독특한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우러진다. 엑스트라처럼 치부되었지만, 그것이 일종의 편견이었다며 보기 좋게 깨버리고 중심으로 들어와 버린 손담비. <동백꽃 필 무렵>은 그래서 어쩌다 손담비를 발견한 드라마가 되었다. ‘인생캐’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사진:KBS)

‘동백꽃’이 까불이라는 사회적 공포를 활용하는 방식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옹산에 들어와 까멜리아라는 술집을 하며 아들을 부양하는 미혼모 동백(공효진)과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여러 차례 범인을 검거하며 경찰이 된 황용식(강하늘)의 멜로가 주요 스토리다. 도서관에서 본 후 첫 눈에 반해 동백을 따라다니며 구애하는 황용식을 애써 밀어내다 대책 없는 그 돈키호테식 직진에 결국 동백은 마음을 열고 이제 달달한 관계가 시작되려던 참이다.

 

그런데 드라마 첫 장면에 들어가 어딘지 불안감을 만들었던 ‘까불이’라는 연쇄살인마의 그림자가 달달한 멜로에 조금씩 드리워지고 있다. 까멜리아의 벽에 낙서로 쓰인 ‘까불지 마라’는 글귀가 어떤 불안감을 주더니 이제 벽면에 커다란 글씨로 ‘까불지 말라고 했지.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너를 매일 보고 있다’고 쓰인 경고 메시지에 동백은 애써 강한 척 했던 그 면모마저 무너져 내렸다. 자신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 버텼지만 아들 필구(김강훈)마저 위험해질까 두려운 동백은 “옹산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까불이라는 존재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드라마의 분위기는 달달한 멜로에서 소름끼치는 스릴러가 덧씌워졌다. 물론 까불이를 잡겠다고 옹산 사람들을 만나 탐문수사를 하는 황용식과 마을사람들의 엉뚱함은 여전히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이제 공개적으로 경고를 해대는 까불이의 섬뜩한 메시지는 시청자들도 긴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 드라마를 집필하고 있는 임상춘 작가는 동백과 황용식의 구수하고 달달한 멜로에 까불이라는 섬뜩한 존재를 끼워 넣었을까. 그건 먼저 멜로가 갖는 자칫 느슨해질 수 있는 드라마에 적당한 긴장감을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인다. 황용식이 경찰이라는 사실과 동백이 까불이의 연쇄살인에서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멜로가 이 사건 해결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지점이다.

 

사실 황용식이 동백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졸졸 따라다닌 것도 바로 그 까불이라는 공포의 존재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었다. 게다가 이제 황용식은 두려움에 옹산을 떠나려는 동백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까불이를 반드시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멜로에 이만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까불이라는 설정은 그만큼 효과적이었다는 것.

 

또한 그간 친근했던 마을 사람들 중 까불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도대체 누가 까불이인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래서 이미 시청자들은 다양한 저마다의 추리를 내놓고 있다. 동백의 가게에서 일하는 향미(손담비)가 까불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향미가 다른 의도로 실제 까불이를 흉내내고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오랜만에 갑자기 돌아온 동백의 엄마(이정은)도 의심스럽고, 까멜리아에 CCTV를 달아주었던 철물점을 운영하는 흥식(이규성)도 시청자들의 용의선상에 오르기도 했다. 누가 까불이인지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런 관심과 궁금증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까불이라는 존재를 끼워 넣은 건 이 드라마를 그저 사적인 멜로에만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던 뜻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까불이가 등장하면서 시청자들은 그 정감 넘치던 옹산 사람들을 하나하나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었다. 어떤 선입견이나 편견은 보는 대상을 이토록 다르게 보게 만든다. 이것은 <동백꽃 필 무렵>이 동백과 황용식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전하려는 공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려서는 고아로, 나이 들어서는 미혼모에 술집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동백은 한 평생을 편견과 선입견의 굴레 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잔뜩 주눅 든 채 살아가는 동백에게 다가온 황용식의 사랑은 그저 사적인 사랑을 넘어 그 편견과 선입견을 깨주는 공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신과 달리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을 보내는 걸까. 그건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까불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불안감이 만들어내는 편견과 선입견의 시선을 구체화해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불안의 근거일 수 있는 까불이만 사라지면 사라져버릴 비뚤어진 시선들인 셈이다. 그래서 모두가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가운데 황용식이 그 까불이를 잡겠다 나서는 그 대목은 동백에 대한 사랑이면서, 그 불안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편견, 선입견에 맞서는 공적 정의의 의미를 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과 황용식의 사랑이야기를 여타의 멜로와 달리 절절하게 보게 된 건, 그 사적 멜로에 공적 의미들이 담겨 있어서였다. 편견 때문에 자신의 소중함을 폄하하며 근근이 버텨내며 살아가던 동백에게 그 소중함과 귀함을 일깨워주는 사랑. 이 작품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절묘한 작가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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