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 지나치게 엄격할 이유 있나

 

요즘 머리에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사진들이 인터넷에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이른바 아이스 버킷 챌린지라는 사회운동의 하나로 희귀병인 루게릭병을 세상에 알리고 또 그 환우들에게 기부도 권장하는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벤트다. 지목받은 인물들이 24시간 내에 머리에 얼음을 물을 뒤집어쓰거나 혹은 미국의 ALS 협회에 기부를 하는 일종의 게임처럼 벌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문화라고도 볼 수 있다.

 

'사진출처:이켠의 아이스버킷 SNS'

가끔 정치인들이나 유명인들도 있지만 연예인들이 단연 많다. 아이돌 걸 그룹 베스티의 지목을 받아 유재석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장면이 인터넷에 올라온 후 점점 더 많은 연예인들의 행사 참여 동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연예인들의 참여가 점점 많아지면서 행사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들도 조금씩 생겨났다.

 

이켠은 유행처럼 아이스버킷 동영상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그 마음은 인정되지만 루게릭병에 관해서 알고들 하는 건가?”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그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의미에 대해 차가운 얼음물이 닿을 때처럼 근육이 수축되는 고통을 묘사한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그게 엄밀한 이 행사의 의미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따라서 그가 너무 재미 삼아 즐기는 것 같다. 그럴 거면 하지 마라고 일침을 가한 내용은 뜻은 알겠지만 너무 기부 같은 사회운동에 대해 엄격하게만 바라보는 시각이 들어가 있다.

 

물론 이켠은 후에 자신의 이 발언에 대해 사과한 후 스스로 얼음물을 뒤집어쓰며 행사에 동참하는 뜻을 전했는데, 이 해프닝 속에는 우리가 사회기부에 대한 지나친 엄숙주의를 갖고 있다는 걸 살짝 보여주었다.

 

또 한편에서는 이 행사가 세간의 화제를 모으자 연예인들이 취지와는 상관없이 자기 홍보를 위해 행사에 참여한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클라라와 전효성은 그래서 아이스버킷 릴레이에 참여하고도 좋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 사실 여기에는 언론도 한 몫을 한 부분이 있다. 행사에 참여한 사진을 올리면서 그 뜻을 전하기보다는 오히려 볼륨감이나 속살같은 자극적인 단어들로 이들의 참여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사 자기 홍보를 위해 행사에 참여한다고 해도 또 루게릭병을 알리는 행사지만 거기에 즐겁게 얼음물 세례를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그것이 비판받을 일인가는 의문이다. 이 행사에는 분명히 연예인 같은 유명인들의 자기 과시욕 같은 것들도 들어가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왜 조용히 기부를 하지 SNS상에 굳이 동영상을 올린단 말인가. 흔히들 기부를 한다면 엄청난 의미부여와 진지함을 떠올리지만 바로 그런 점은 기부문화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스버킷 릴레이가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기부문화가 즐거울 수 있다(fun)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구나 즐겁게 웃으면서 행사에 참여하고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리고 또 기부도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약간의 자기 홍보를 담고 있다고 해도 권장될 일이다. 또한 루게릭병이 고통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돕는 기부행사까지 고통을 강요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루게릭병을 앓는 환우들도 원치 않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기부문화가 너무 엄격하거나 진지함에 빠질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항간에는 얼음물만 뒤집어쓰고 기부는 안한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부란 반드시 금전적인 것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행사에 같이 참여하는 것도 어쩌면 또 다른 이름의 기부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기부가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건 그 어떤 의미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연예인 홍보? 좀 하면 어떠랴. 그걸 통해 행사가 더 즐거워지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면.

 

<아빠 어디가>에서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

 

<아빠 어디가>를 우리는 힐링 예능이라 부른다. 거기 출연한 천사 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순수해지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가 가진 딜레마 역시 바로 아이들에 있다. 이들이 대중들에게 선사하는 즐거움은 값진 것이지만, 결국 아이들이기 때문에 방송 출연은 그 자체로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실제로 아이들에게마저 날아드는 악플은 당사자나 가족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또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보통 아이로서의 생활을 누리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도 큰 부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걱정거리는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이 본래 갖고 있는 가치(즉 아빠와 아이의 관계 회복 같은)가 희석되고 자칫 시청률 같은 양적 가치로만 평가되거나 광고 수익 같은 상업적 가치로 바라보게 될 때 생겨날 결과다.

 

만일 이렇게 가치의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에게 힐링을 선사했던 아이들은 자칫 상업주의에 의해 소비되는 존재가 될 위험성이 있다. 이것은 아직까지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방송에 출연할 경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아빠 어디가>의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며 <일밤>을 구원해냈다는 팡파르가 울려 퍼질 때(이 때가 가치가 전도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기다)가 그래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이런 시점에 김성주가 광고 출연료 전액을 사회공동복지모금회와 소년소녀가장돕기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실로 <아빠 어디가>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빠 어디가>에서 아이들을 위해 만들었던 짜빠구리로 광고까지 출연하게 되었지만, 그것을 다시 사회에 기부함으로써 가치를 돈이 아닌 나눔으로 되돌렸다는 것이 이 김성주의 선택이 가진 큰 의미다.

 

아마도 김성주의 선택으로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아빠 어디가>의 맏형 민국이가 될 것이다. 아이에게 ‘좋은 아빠’만큼 큰 선물이 있을까. 또한 이 ‘좋은 아빠’라는 선례는 <아빠 어디가>에도 중요한 선물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이 출연하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그저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순수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이니까.

 

<아빠 어디가>의 김유곤 PD는 필자에게 “이 프로그램이 시청률 20%를 넘기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빠 어디가>는 시청률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따뜻함과 순수함을 잔잔하게 시청자들과 나누는 프로그램이라는 것. 김유곤 PD의 이 말은 <아빠 어디가>가 추구하는 가치가 양적인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이라는 걸 느낄 수 있게 한다. 실로 아이들의 예능인 <아빠 어디가>에서 어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빠 어디가>가 계속 해서 우리를 힐링시켜주는 좋은 프로그램으로 남으려면 그 가치가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한다. 제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것을 위해 과도한 장치를 한다거나 어떤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아빠 어디가>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아빠와 아이라는 그 관계의 진정성과 순수성이 유지될 때, 그래서 그 가족의 따스함이 가치로서 전달될 때 <아빠 어디가>는 계속해서 사랑받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성주의 선택은 박수 받을 만하다.

'7일간의 기적', 우리에게도 기적인 이유

김제동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일주일 간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네 식구를 위한 집을 찾아헤매던 그에게 선뜻 자신의 집을 내주겠다는 집주인의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제동을 바라보는 PD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비록 마당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풀들이 무성하고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낡았지만, 그 집이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네 식구에게는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처음 유재석이 기부한 선글라스 하나로 시작해서, 그 선글라스가 수많은 물건으로 교환되고 변신해 결국은 집으로 변하는 이 기적 같은 일은 '7일간의 기적'이 매주 우리 앞에 보여주는 마술이다.

우리 주변에 넘쳐나는 물건들. 너무 흔해서 때론 있는지조차 몰랐던 그 물건들이 우리를 이토록 감동시킬 수 있을까. '7일간의 기적'은 '물물교환'이라는 방식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떻게 기적 같은 기부와 나눔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왜 하필 '물물교환'일까. 화폐 경제 사회 속에서 가격이라는 수치로만 가치매겨지는 물건은 '물물교환'이라는 조금은 구닥다리의 방식을 통해 가치가 새로 매겨진다. 누군가 사용하던 만년필이 장인의 다기와 교환되고, 누군가의 캠코더가 일년 내내 어떤 이가 자식처럼 키운 마늘과 교환될 때, 물건들의 가치는 수치를 넘어선다.

대부분의 물건들이 그렇듯, 구매할 때는 수치로 가치매겨지던 것도 사용하면서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그 물건에 새로운 가치로 덧입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물건과 물건이 교환되는 순간, '7일간의 기적'은 단지 그 수치적인 가치가 교환되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그 물건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천착한다. 40여만 원에 달하는 야구 글러브가 가치 있는 것은 그 가격 때문이 아니라, 그 글러브를 처음 끼고 마운드에 섰던 주인의 마음과 경험치 때문이다.

이 기부 프로그램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그래서 어떤 작은 물건이 수혜자들에게 간절히 필요한 거대한 물건으로 변신하는 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물건들이 다른 물건으로 변화할 때 거기에 담겨지고 중첩되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낼 때, 그래서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될 때 그 기적은 일어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기적이 있다는 말이다.

사실 '느낌표'나 '일밤'에서 사회 공익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7일간의 기적'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가진 담담한 시선 때문이다. 흔히들 수혜자의 힘겨운 삶 앞에 눈물을 흘리고 그 동정적 시선을 기반으로 카메라의 위력을 과시하던 기부 프로그램들과는 달리, '7일간의 기적'은 기부자와 수혜자 사이에 수직적인 시선이 없다. 수평적인 눈높이로 위가 아니라 옆자리에 서서 수혜자를 동등한 눈높이로 바라보는 김제동이라는 MC의 시선은 '7일간의 기적'이 가진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 '물물교환'이라는 방식은 기부가 가진 일방성을 교환이라는 쌍방향성으로 바꿔놓음으로써 이 수평적 시선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리고 나아가 이 '물물교환'을 통해 목도하게 되는 물건이 가진 가치의 재배열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각을 바꿔놓는다는 점에서, 이 '기적'은 단지 TV 속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건이 더 이상 부의 증명이거나 소유의 욕망으로 존재하는 교환가치가 아니라 본래 있었던 사용가치를 복원하는 지점에서 우리는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진 물건이지만 다른 사람이 가진다면 더 큰 가치를 가질 물건은 무엇일까. '7일간의 기적'이 제안하는 이러한 생각의 전환은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사회에 전하는 가장 큰 기적일 것이다. 그래서 매주 '7일간의 기적'이 방영되는 1시간 동안 우리들은 우리가 변화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기부 프로그램의 새로운 실험, '올리브'

"비둘기는 저녁 때가 되어 되돌아왔는데 부리에 금방 딴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있었다. 그제야 노아는 물이 줄었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의 한 구절이다. 아마도 홍수로 배 위에서 절망적인 나날을 버텨내던 그들은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잎사귀에서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올리브는 평화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인 기부 프로그램 '올리브'에는 그 비둘기와 그 올리브가 모두 존재한다. 비둘기가 기부자라면 올리브는 그가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는 희망이다.

그 희망이 닿는 곳은 지금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사연 하나씩을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온다. 출연자들이 직접 필요한 금액을 적어보이는 모습은 조금은 직설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그 투박함이 어떤 진실에 가까워보인다. 이것은 힘겨운 현실에 처한 이들을 그저 말로 위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누군가는 고상하게 '돈'이라는 말을 피하겠지만, 사실 이들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돈이다.

하지만 돈을 적어내고 그 돈을 기부하는 것으로 '올리브'라는 프로그램을 단순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드러내고 그 사연을 들어주는 이가 있으며, 거기에 선선히 돈을 쾌척하는 기부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부의 선순환을 희망하게 만드는 힘이 생겨난다. 그래서 '올리브'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은 돈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출연진들이 전해주는 사연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낮은 곳을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날치기범을 잡은 자율방범대원이지만, 바로 그 일 때문에 오른쪽 어깨 인대 파열을 입고 손을 사용할 수 없어 횟집을 2년 여간 방치해오다 왼손으로 다시 칼을 잡게 된 이도 있고, 두석장을 만드는 중요무형문화재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나무조차 살 수 없게 된 이도 있으며, 고2 때 아들을 낳아 이제 갓 스물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사연을 통해 힘겨운 삶의 이야기들을 시청자들에게 물어다 준다.

한편 기부자를 통해 도움을 받은 그들은 자신들 또한 자신처럼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한다. 다친 오른손 때문에 서툴게 왼손으로 회를 썰며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던 남자는 다음날 새벽 3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시장에 나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매일 왔던 곳인데 어제와 오늘이 달라 보입니다."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연봉 1천5백만 원도 안 되는 자신의 일을 선뜻 아들에게 권하지 못한 중요무형문화재 두석장 보유자는 다음 날 신바람 나게 목재상을 찾아간다. 그것은 희망을 찾아가는 발걸음이다.

프로그램 시작에 MC 이경규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버는 건 기술이지만 돈을 쓰는 건 예술"이라고.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그것을 직접 목도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건 '올리브'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힘이다. 의외로 공감의 힘은 강하다. 어떤 사연을 가진 이에게, 또 그에게 도움을 주는 이에게 공감할 때, 이미 사회는 그 변화가 시작됐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방주 위에서 비둘기가 물어다 준 올리브를 보며 느꼈던 그 희망이 다시 삶을 살아가게 해주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의 올리브였던 적이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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