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에서 퇴조한 독설, 무대개그로 옮겨가는 이유

한때 토크쇼의 대세처럼 보였던 독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이경규의 버럭이 사라진 지는 오래고 박명수의 호통은 기력 빠진 아버지의 지청구처럼 힘이 빠진 지 오래다. 독설의 대명사처럼 자리잡았던 김구라는 잇단 사과방송을 통해 유한 이미지를 또한 획득했다. ‘라디오스타’같은 프로그램에서 김구라는 번번이 신정환에게 당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이른바 독설에 균형을 잡아갔다. 그의 독설은 과거의 그것처럼 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독설은 토크쇼가 아닌 무대개그에서 번창(?)하고 있다. 무대개그에서 왕비호(윤형빈)는 자타가 공인하는 현재의 독설가로 자리잡았다. 비슷한 유형으로 세 명이 나와 번갈아 가며 서로가 독하다고 과시하는 ‘독한 놈들’은 왕비호의 그 성공전략에 영향을 받은 코너다. 한편 ‘황현희 PD의 소비자 고발’은 이 독설을 연예계가 아닌 타 분야로 넓힌 사례다.

이처럼 독설이 토크쇼에서 점차 사라지고 무대개그 속으로 편입되는 이유는 무얼까. 그 해답은 왕비호의 그 특유한 의상에서 찾아질 수 있다. 딱 붙는 반팔 쫄티에 핫팬츠를 입고 등장하는 왕비호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연기하는 캐릭터다. 즉 왕비호의 독설은 일상의 리얼한 토크 속에서 우연히 던져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짜여진 틀 속에서 준비되어진 독설이다.

대본으로 준비된 독설에 사적인 감정은 전혀 개입될 여지가 없다. 물론 다른 토크쇼 속에서도 김구라 같은 독설가가 사적인 감정을 실어 독설을 퍼부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리얼 토크쇼의 형식상 그의 독설은 사적인 감정까지도 리얼로 포장되곤 한다. 반면 무대개그 속에서의 왕비호는 이 사적 감정을 배제할 수 있는 안전막을 여러 겹 갖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무대, 비일상적인 의상, 분장 같은 것이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독설이 가능한 유일한 이유는 그것이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권위적인 것이 독설로 인해 유쾌하게 해체됐을 때, 그 이완감 속에서 우리는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하지만 그 독설이 웃음의 목적을 넘어서서 실제로 타인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게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존재의 이유를 잃게 된다. 무대를 넘어서서 현실까지 영향을 주는 개그 프로그램의 독설은 웃음이 아닌 불쾌감을 주게 된다.

방송에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독설은 토크쇼 어디에서든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회는 그 독설을 받아들일 만큼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심각한 경기침체로 인해(이것은 연예계도 마찬가지다) 그런 여유는 사라져버렸다. 여유 있는 자에게 날리는 독설은 그 자체가 관심의 표현으로 변모할 수 있지만, 여유조차 없는 자에게 던져지는 독설은 그 자체가 칼날이 된다. 왕비호가 톱스타들만 그 독설의 도마 위에 올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왕비호의 독설에는 정해진 룰이 있다. 그 독설은 그 틀 속에서 대중들과 웃음을 나누기 위한 어떤 게임일 뿐, 진짜 속내를 드러내는 독설은 아니다. 한번 웃고 나면 그뿐, 앙금이 남지 않는 독설. 그것은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독설이 아닌지도 모른다.

독설, 이독제독(以毒治毒)의 기능, 지나치면 독

예능 프로그램에 언제부턴가 등장해 거침없는 독설로 주목을 끌고 있는 이들이 있다. 예능계에 김구라, 박명수가 있다면, 가요계에는 신해철이 있고, 개그계에는 왕비호(윤형빈)가 있다. 하나같이 독설가라는 이미지로 읽히지만, 그 양상은 조금씩 다르다. 상대방의 말을 받아치는데 능한 김구라는 특유의 공격적이고 집요함이 특징이며, 박명수는 약간은 모자란 듯이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에게 호통을 치는데 능하다. 신해철은 특유의 직설어법으로 연예계에서부터 사회전반에 걸쳐 진지한 비판을 하는 반면, 왕비호는 독설을 개그의 틀로 끌어와 신비화된 스타들을 비틀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귀여운 독설가’이미지를 갖고 있다.

연예계에 독설가들이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작금의 달라진 방송 환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시대는 이제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할 수 없는 개방적인 대중사회로 변화해가고 있으며 이 상황 속에서 TV의 ‘맨 얼굴 숨기기 전략’은 거짓으로 치부되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폰카에 찍힌 연예인 굴욕사진들이 순식간에 인터넷에 퍼지고 화제가 되는 시대에, 아닌 척 하는 이른바 짜고 치는 고스톱은 더 이상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달라진 시대에 대본에 의해 만들어진 대사들과 이벤트, 제스추어들은 ‘방송의 독’이 되었다.

박명수의 호통개그와 김구라의 막말개그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이 ‘방송의 독’에 시청자들이 식상함을 느낄 때였다. 이전에는 재미없는 출연진들의 멘트에 억지로라도 웃음을 강요했었다면, 박명수는 그 재미없는 멘트에 대해 “야야야! 재미없잖아!”하고 호통을 쳤다. 김구라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숨기고 있는 연예인들의 이면을 들춰내기 시작했다. 약점으로 지목된 부분들을 거침없이 들춰내 이야기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물론 과격해 보이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독으로서 독을 치유하는 이독제독(以毒治毒)의 기능도 한다.

김구라가 ‘명랑히어로’에 출연한 김성주 아나운서를 ‘배신의 아이콘’으로 부르고, 김국진을 ‘이별의 아이콘’으로 부를 때, 일부 시청자들은 그것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에 이독제독의 기능이 수행된다. 김구라는 문제가 되었던 연예인들에게 갈 모든 비판을 자신이 대신 한 셈이 되며, 그걸 통해 거꾸로 비판을 동정과 이해의 시선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즉 시청자들이 ‘그 비판의 말이 맞다’고 생각하게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지나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독한 말이 오히려 비판의 대상에는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설의 기능을 프로그램화 한 것이 ‘무릎팍 도사’다. 초기 문제 있는 연예인들이 기꺼이 곤혹스러워 보이는 질문공세를 받을 각오로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는 바로 이 독설의 기능이 가져올 이점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당집 같은 분위기에 살풀이를 한다는 컨셉트는 애초부터 ‘무릎팍 도사’가 이 기능들에 주목하고 있었다는 걸 잘 말해준다. 면죄부라고 하면 지나치겠지만 적어도 ‘문제 연예인’이라는 이미지를 상쇄시키고 그 문제를 시청자들과 나눌 수 있는 자리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물론 독설은 지나치면 독을 제거하는데 사용되지 않고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된다. 아프지만 솔직하고 직설적인 이야기와 비방은 다르며, 독설과 막말은 다르다. 이미 인터넷 환경을 통해 누구나 독설을 내뱉는 이른바 ‘독설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자칫 독설은 본래의 진정성의 틀에서 벗어나 주목도를 높이려는 형식전략의 하나로 변질될 수도 있다. 바로 그런 우려에 대한 자성 때문일까. 최근 들어 김구라나 박명수, 그리고 프로그램으로서의 ‘무릎팍 도사’는 특유의 독설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설은 아직 유효하다. ‘공감 가는 악플러’는 늘 널리 퍼져있는 찬양가들과 함께 공존하면서 건전한 균형감각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속히 건전한 독설의 대가들이 귀환하기를 기대한다.

부족하지만 현실적인 캐릭터, 2인자

‘이산’에서 이산(이서진)만큼 주목받는 캐릭터는 단연 홍국영(한상진)이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 속 주인공이자 1인자인 이산보다 소위말해 더 뜬 것처럼 보인다. 단적으로 이산은 아무리 멋진 대사를 해도 그저 멋있다는 평가 정도로 끝나지만 홍국영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어록으로 남는다. 시간적으로 보면 홍국영이 등장하는 양은 이산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얼굴을 내미는 장면 속의 홍국영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집중도는 이산보다 더 높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왕의 2인자들, 홍국영과 윤회
홍국영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산보다 매력적이라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홍국영을 그렇게 빛나게 하는 것일까. 그 첫 번째 이유는 홍국영이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라는 점이다. 특히 이산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산은 이른바 대의명분과 정치라는 세계 속에 자신의 개인 감정을 철저히 억누르는 캐릭터이지만, 홍국영은 그렇지 않다. 그는 노론 벽파 세력의 역모가 드러난 상황에서 이를 덮고 넘어가려는 이산의 처분에 대해 분개하는 인물이다.

‘대왕 세종’에 등장하는 윤회(이원종) 역시 앞으로 세종이 될 충녕대군(김상경)의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 정치적인 대의에만 밝았지 실제 현실 정치에는 어두웠던 충녕대군에게 윤회는 이상을 현실화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그는 충녕대군이 멀찌감치 물러나 정치적 대의를 얻고 있을 때, 기꺼이 나아가 명국 사신의 문제를 해결해내는 인물이다.

당당한 2인자에 더 공감가는 시대
역사적으로도 드라마적으로도 홍국영이나 윤회 같은 인물의 역할은 사실상 초반부터 그런 것이었다. 이산이나 충녕대군이 대의명분을 세우면서 그 누구에게도 피를 묻히지 않는 모습을 고수하려 할 때, 홍국영이나 윤회는 손수 나서서 피를 묻히는 그런 역할. 이것은 실제현실에서도 2인자, 혹은 3인자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1인자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양지에 세워놓고 자신은 음지의 진창에서 뒹구는 2인자들의 모습은 가깝게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회사나, 가정 내에서조차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라는 것이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고 때로는 꿈꾸게 하는 어떤 것이라면, 2인자에 대한 이러한 호응은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시청자들은 완벽하게 이상화된 1인자보다는 못났어도 현실적인 2인자에 더 공감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이제 1인 중심의 수직구조의 명령 체계보다는 다양성이 용인되는 수평구조의 토론 체계가 합리적으로 판단되는 사회다. 그러니 1인자니 2인자니 하는 것은 역할이 그럴 뿐, 그것이 더 이상 순위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예능 속의 2인자들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에서 2인자 혹은 3인자 캐릭터가 1인자 못지 않게 인기를 끄는 요인도 여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무한도전’을 이끌고 있는 반장 유재석 만큼 입지를 다지고 있는 하찮은 형 박명수가 그렇고, ‘1박2일’의 리더 강호동 만큼 인기를 끌고 있는 허당 이승기나 초딩 은지원, 심지어는 상근이까지 그 예에 해당될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2인자면 다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소위말해 뜨는 2인자 캐릭터란 1인자 아래서 꼬리를 내리고 있는 2인자가 아니라 오히려 대등한 입장으로 서 있는 2인자라는 점이다. 즉 2인자는 이제 어떤 시청자에게는 순위가 2인자라기보다는 1인자보다 인기 있는 2인자로 인식되며 따라서 그런 역할을 프로그램 내에서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2인자 컨셉트는 때론 프로그램 자체의 정체성으로 내세워지기도 한다. ‘라디오 스타’가 대표적인데 이 프로그램 속에서 MC들은 서로 자신이 메인이라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서는 심지어 초대된 게스트에게 면박을 주거나 말문을 막는 상황까지 연출한다. 이것은 그만큼 치열해진 예능의 세계를 말해주면서 동시에 그와 같은 치열함이 실제 현실의 모습이라 공감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가식적인 모습으로 우아한 척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2인자임을 인정하고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는 모습이 더 공감을 준다는 이야기다.

TV가 보여주는 2인자 전성시대는 고스란히 사회의 모습을 포착한다. 그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 첫째는 1인자보다 무수히 많은 2인자들이 1인자 되기가 태생적으로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한 사회이고, 그 둘째는 그렇기에 2인자로서 1인자에 억눌릴지라도 저 스스로는 당당함을 희구하는 사회이다. 이것이 물론 TV 속의 이야기라 할 지라도 드라마에서 예능까지 당당한 2인자에게 아낌없는 박수가 보내지는 이유가 아닐까.

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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