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과 아벨’, 의드의 경계를 넓히다

의학드라마가 힘을 발하는 이유는 도시 속에서 그 병원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야생의 도전을 인공의 안락함으로 변모시킨 도시적 삶 속에서, 생과 사의 문제가 가장 치열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바로 병원이다. 과거 야생에서 삶을 도전 받았던 삶과 달리, 도시인들의 삶은 병원에서 시작해 병원에서 끝난다 해도 이제는 그다지 틀린 얘기가 아닌 시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병원이라는 공간에 포획되는 것이 당연할까.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 질문은 그러나 ‘카인과 아벨’을 만나면 한갓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카인과 아벨’은 병원 밖에서도 의드의 묘미를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다.

이초인(소지섭)의 전공이 응급의학과라는 사실은 이 의드가 그리는 공간이 단지 병원 내 응급실이라는 공간을 넘어선다는 것을 암시한다. 병원 밖에서도 얼마든지 응급 상황은 있게 마련이고 그것은 의드가 주목하는 생과 사의 긴박한 순간들을 응급실 바깥에서도 그려낼 수 있게 해준다.

바로 이 점은 그다지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실상은 여러 장르들이 뒤섞이게 되는 ‘카인과 아벨’에서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만일 이초인이 중국에서 기억상실의 시간 속에 액션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을 때, 그가 가진 응급의학이라는 경력이 없다면, 한편으로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국내에서의 병원이야기(그리고 앞으로도 이어질)와의 봉합은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초인은 중국의 야생 상황에서도 병원에 갈 수 없는 탈북자인 오영지(한지민)를 수술해주고, 기억상실이 된 채 탈북자 신세가 되어 쫓기는 상황에서도 동료를 야생에서 수술해준다. 그는 병원 바깥에서도 여전히 의사라는 입장을 버리지 않고 있으며, 수술대 앞이 아니라도 메스를 든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의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은 거꾸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능력으로 변모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중국 공안에 잡혀 수용소에서 거구와 벌이게 되는 죽음의 대결에서 오강철(박성웅)은 이초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같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절대로 때려서는 안 되는 곳이 있지. 거길 때려라.” 이것은 의드의 새로운 변용이다.

물론 ‘카인과 아벨’은 후에 다시 병원이라는 공간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의드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초인의 응급의학이라는 전공은 형인 이선우(신현준)의 뇌의학과 병원 내 권력 구도를 두고(물론 그 밑에는 복수극의 전제가 깔릴 것이 분명하다) 각을 세울 것이다. 이 점에서도 응급의학이라는 이 의드의 새로운 선택은 탁월했다 생각된다.

지금까지 의드의 선택은 거의 대부분이 그 중심에 외과(그 중에서도 흉부외과)를 두고 있었다. ‘하얀거탑’이 ‘외과의사 봉달희’가 그리고 ‘뉴하트’가 그랬다. 이렇게 된 데는 외과가 가장 생명과 직결되고 힘겨운 과이면서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외면받는 과로서 의학의 본령을 건드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의드의 계보를 세울 수 있을 정도가 된 상황에서 의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것은 새로운 장르와의 결합이 될 수도 있고, 의학의 새로운 분야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카인과 아벨’은 이 두 가지를 응급의학의 선택을 통해 넘어서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의학, 멜로, 액션, 정치, 휴머니티까지 봉합하려는 ‘카인과 아벨’

장르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일까.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시도가 갖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백화점식 나열일까. 장르 드라마들은 한 가지 이상의 장르를 봉합하며 진화해 왔다. ‘하얀거탑’은 의학드라마에 법정드라마와 정치드라마를 칵테일했고,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학드라마에 멜로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봉합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액션드라마에 가족드라마의 관계망을 접목해 한국형 느와르를 선보였다. 그렇다면 ‘카인과 아벨’은 어떨까. 놀랍게도 이 드라마는 이 모든 장르 드라마들의 디테일들을 하나로 끌어 모으고 있다.

‘카인과 아벨’에는 ‘하얀거탑’이 가진 권력대결구도가 있다. 그것은 이초인(소지섭)으로 대변되는 응급의학 센터와 이선우(신현준)로 대변되는 뇌의학 센터 건립을 두고 벌어지는 권력의 충돌이다. ‘하얀거탑’에서 긴장감 넘치게 그려졌던 투표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한다. 한편 ‘카인과 아벨’은 의드로서 ‘외과의사 봉달희’가 가진 멜로드라마와 휴먼드라마의 요소도 숨겨져 있다. 형제의 한 여자를 두고 벌어지는 삼각관계와 새롭게 멜로의 축으로 들어올 오영지(한지민)가 멜로드라마의 구도를 이루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술을 향해 달려가는 이초인의 휴머니티가 기술에 편향된 이선우와 대결구도를 이룬다.

‘카인과 아벨’에는 또한 ‘개와 늑대의 시간’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이 드라마는 의드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권력 대결구도의 극한으로 끌어올려지면서 액션드라마와 복수극의 양상을 띄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에 기억의 문제를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이초인의 탄생이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어머니로부터 꺼내지는 것이나, 자신을 아버지처럼 키워준 이종민 원장(장용)이 뇌사상태에 빠져있었던 것, 그리고 자신도 음모에 빠져 기억상실에 빠지는 것이 그렇다. 무엇보다 이 의학드라마에서 그 분야로 잡고 있는 것이 뇌 의학이라는 점은 이 드라마가 그만큼 기억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개와 늑대의 시간’이 그려낸 기억의 문제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겠지만, 일정부분 모티브가 연결되어 있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카인과 아벨’은 이처럼 꽤 많은 장르 드라마들의 속성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그 봉합은 현재까지는 꽤 성공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판단된다. 화두로서 제시했듯, 이렇게 많은 장르적 요소들을 한 틀 안으로 끌어 모은 데는 이제는 장르적 재미에만 머무는 것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하게 되어버린 현 드라마 소비층들의 높아진 안목에서 기인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장르 드라마라는 아직까지도 여전히 낯선 그 틀에 전통적인 드라마의 형식을 접목하면서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 모쪼록 그 장르 실험이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거나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시도가 작금의 정체된 장르 드라마들에 꽤 괜찮은 의미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의드로 장르화 된 소재, 캐릭터 신선미 떨어뜨려

국내 의학드라마의 효시인 ‘종합병원’의 적통을 잇는다는 기대를 한데 모으고 방영된 ‘종합병원2’의 첫인상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14년의 공백 사이에 무수히 많은 의학드라마들이 계보를 이루어왔고, 그렇기에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의드에 ‘종합병원2’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그 제목이 주는 화려한 외투에 비해 첫 단추를 풀어 보인 ‘종합병원2’의 속살은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것들이었다.

의드에 이런 캐릭터 꼭 있다
‘종합병원2’의 캐릭터들은 여러모로 ‘그레이 아나토미’의 캐릭터들을 벤치마킹한 혐의가 짙다. 주인공인 좌충우돌의 정하윤(김정은)은 메리디스 그레이를, 어딘지 어수룩하지만 인간적인 최진상(차태현)은 조지 오말리를, 상사이면서도 따뜻한 심장을 가진 김도훈(이재룡)은 데릭 셰퍼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거의 대개의 국내 의학드라마들이 가졌던 캐릭터 구조다.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과의 과장이 있고, 이제 막 병원생활을 시작하는 신출내기 레지던트들이 있으며 그 레지던트들 사이에는 우정인지 사랑인지 애매한 관계의 남녀가 있다. 대체로 주인공은 그 레지던트들 중 여성이며, 그 여성은 외과의 과장 혹은 동료와 사랑에 빠진다. 이것이 그 대략의 구조다. 이 틀은 이미 ‘뉴하트’에서도 똑같은 구조로 제시된 바 있다. ‘외과의사 봉달희’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지없이 빠지지 않는 캐릭터는 레지던트들을 깨는 호랑이 선배 레지던트다. ‘종합병원’에서 오욱철이 했던 그것을 ‘종합병원2’에서는 류승수가 맡아 하고 있다. 이것은 ‘뉴하트’에서는 뒤질랜드로 유명한 배대로(박철민)라는 캐릭터로 보여진 바 있다. 이들 캐릭터들은 아마도 ‘종합병원’이 최초로 방영되었던 1994년이라면 획기적이고 신선한 캐릭터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이 캐릭터들이 전형화되어 버린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야기들
총상을 맞고 응급실에 실려온 유괴범과 그가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밝히지 않아 위험에 처하게된 유괴된 아이를 두고 벌어지는, 이른바 ‘범법자와 환자’코드의 에피소드 역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유괴범을 범법자로 봐야하는가 아니면 환자로 봐야 하는가 하는 의사들의 원초적인 질문을 하는 이 에피소드는 이미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소개된 것들이다. 살인범을 살려주었더니 그 자가 오히려 봉달희를 칼로 찌르는 이 이야기는 의사라는 직업과 인간이라는 본질 사이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의사들의 상황을 잘 말해주는 에피소드다.

‘종합병원2’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정하윤과 최진상이 서로 환자를 살리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교차시키면서 이 메시지를 잘 영상화해냈다. 즉 정하윤이 살리려는 유괴범이나 최진상이 살리려는 유괴된 아이 모두 의사에게는 살려야만 할 등가의 환자라는 걸 영상이 분할화면으로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에게는 그 유괴범도 하나의 환자에 불과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에피소드는 이미 여러 번 의학드라마에서 반복되어 이제 그 신선미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제 단 2회가 지난 것으로 아직까지 이 드라마의 전체 그림을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종합병원2’의 모습은 어떤 새로운 의드의 도전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익숙한 의드의 코드들을 활용하는 장르에 기대는 느낌이다. 어쩌면 그것이 좀더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 판단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국내 의학드라마의 첫 단추를 열었던 ‘종합병원’의 연장선이라면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 ‘종합병원2’가 자칫 ‘종합병원’의 향수에 기대는 드라마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종합병원2’, 의학드라마의 또 다른 진화가 되려면

새롭게 시작하는 ‘종합병원2’는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다. 본격적인 의학드라마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종합병원(1994)’의 적통이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은 최완규 작가가 현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병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의 디테일을 살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실로 이 드라마는 전문성이 부족했던 당대 드라마환경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청률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호평을 기록한 ‘종합병원’의 성공은 다른 의학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의가형제(1997)’, ‘해바라기(1998)’, ‘메디컬센터(2000)’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 중 ‘의가형제’와 ‘해바라기’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종합병원’만큼의 전문성을 갖지는 못했다.

트렌디 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드라마는 전문성보다는 멜로에 집착했고, 그러자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라는 말이 등장했다. 전문성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본격적인 의학드라마는 부활을 예고했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가 본격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이으며 등장해 호평을 받았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의학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었지만 그 결이 달랐다. ‘하얀거탑’이 멜로 라인 없이 한 인간의 욕망에의 질주를 그려냈다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전문직으로서의 의사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의사를 그리며 호평을 받았다. 이어서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이은 것은 ‘뉴하트’로 이 드라마는 ‘외과의사 봉달희’와 ‘하얀거탑’의 요소들을 모두 아우르고, 의학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켰다.

이제 그 계보 위에 세워질 ‘종합병원2’는 어떨까. 2008년에 만들어지는 ‘종합병원2’는 단순히 1994년작 ‘종합병원’의 연장선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간 이어진 계보의 연장선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커진 것은 기대감과 함께 부담감이다. 의학드라마의 효시를 등에 업고 있고, 또한 일련의 진화된 계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다르거나 혹은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기대감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종합병원2’의 차별점으로 일단 제시된 것들은 인물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과 이전보다 더 디테일한 장면 묘사에 공을 들였다는 것 정도다. 이건 사실 정확히 말하면 차별점이 아니다. 세대교체야 당연한 것이며, 디테일한 장면 묘사는 ‘하얀거탑’ 이후 일련의 의학드라마들이 추구해온 방향이다. 또 휴머니즘을 바탕에 깔 것이고, 또 멜로 라인도 필수적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점은 이미 ‘외과의사 봉달희’나 ‘뉴하트’를 통해 반복되었던 것들이다. 이것은 이제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하나의 장르의 요소로서 굳어진 것들이다.

흔히들 의학드라마를 보며 “이런 장면 꼭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의학드라마가 이제 장르가 가진 먹히는 요소들의 유혹을 받는다는 반증이다. 같은 내용에 인물이 조금 바뀌고 장면들이 좀더 세련되게 구사한다고 해서 이제는 더 이상 차별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짜 차별화가 이루어지려면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스토리의 발굴이 필수적이다. 완전히 장르를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큰 틀에서 몇 가지는 ‘종합병원2’가 장르의 유혹을 벗어나 그것만의 차별점을 찾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의학드라마의 계보 위에서 ‘종합병원2’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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