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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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다큐' 폐지, 유감스러운 이유

D.H.Jung 2009. 10. 13.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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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다큐의 시대, 다큐를 외면하는 TV

KBS는 가을개편을 맞아 그간 주중 저녁에 매일 방영되며 일일 다큐 시대를 열어놓았던 '30분 다큐'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30분 다큐'는 이번 주까지만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폐지 이유는 시청률이나 제작비 부담 등을 들고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편당 1천만 원 정도가 들어가는 이 프로그램에 제작비 부담을 얘기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게다가 시청률을 목적으로 했다면 그럴만한 후속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텐데, '30분 다큐'의 공백은 종전처럼 스포츠 뉴스가 채운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시청률이 높은 KBS1TV의 일일드라마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 시간대의 KBS2는 공백지대로 놔두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30분 다큐'는 그렇게 간단히 폐지돼도 될 만큼 존재감이 없는 프로그램일까. 시청률이 낮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같은 시간대가 일일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간이라, 이 시간대의 편성은 애초부터 다큐멘터리로서는 무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독특한 다큐멘터리 형식은 단지 시청률만으로는 얘기할 수 없는 존재가치가 있다. 그것은 국내 TV 다큐멘터리가 가진 거대담론의 이야기들을 벗어나 소품이지만 일상적인 다큐멘터리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여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30분이라는 시간으로 압축된 다큐멘터리는 그 안에 지금껏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거창한 기획의 다큐멘터리의 세계에서는 좀체 발견하기 힘든 지점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장점이 있다. 즉 일상이라는 소재 자체가 다큐멘터리의 카메라에 포착되기 시작된 것. 이것은 영상이 일상화되어버린 현재, 거대담론의 다큐멘터리들이 놓치고 있던 것들이기도 하다. '30분 다큐'는 그 짧은 시간이 주는 경쾌함으로, 일상성의 소재를 가벼이 다루지 않는 겸손함으로, 우리에게 다큐멘터리란 본래 이처럼 친근한 것임을 드러내주었던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또한 현재 TV 다큐멘터리가 어떤 변화의 길을 가는 도정에 놓여진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TV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그 변화의 속도가 느리게 진행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다양한 실험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을 고민하고, 틀에 박힌 엄숙주의의 무거움을 깨뜨리면서 대중들과 호흡하려 할 때, TV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그 보수적인 틀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TV 다큐멘터리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MBC스페셜'은 그 편안해진 다큐멘터리의 성공사례로 지목된다. 'SBS스페셜'는 여전히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변화된 다큐멘터리의 일상화를 저버리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KBS는 '30분 다큐'와 함께 '다큐멘터리 3일'이 그 첨병에 나서고 있다. 3일이라는 시간의 축으로 자른 특정 공간을 포착해 그 위에 살아가는 인간군상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그려내는 이 독특한 형식의 다큐멘터리는 기획 다큐멘터리가 갖는 기획적인 의도성의 틀을 깨는 힘을 보여주었다. 즉 의도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의 만남과 발견의 영상들은 그 순간의 포착이 잡아내는 리얼리티의 진정성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다큐멘터리 3일'이 이렇게 포착하는 곳의 시간을 3일로 압축시켜 거기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삶 속에 숨겨진 비의를 포착해냈다면, '30분 다큐'는 방송분량을 압축함으로써 그간 일상이라는 이유로 소외된 소재들을 카메라에 담아낸 공적이 있다.

항간에는 '30분 다큐'가 폐지되고, '다큐멘터리 3일' 역시 지금 시간대인 토요일 저녁 9시40분에서 더 늦은 밤으로 미뤄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다큐멘터리로는 이례적으로 롱런하며 세간의 관심을 한몫에 받아왔던 '인간극장'이 아침 7시50분대로 이동된 것까지 생각해보면, 이제 KBS 다큐멘터리는 'KBS 스페셜'을 빼고는 모두 한데로 내몰리는 느낌이다. 현재의 방송 프로그램들이 예능, 드라마 할 것 없이 다큐멘터리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형식들이 탄생하는 요즘, 그만큼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반증하는 이 시점에 다큐멘터리가 폐지되거나 한데로 옮겨가는 상황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물론 시청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TV에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어떤 재미적인 기능을 통해 시청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형식이라면, 다큐멘터리는 TV라는 매체가 갖는 정보적 기능에 충실한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정보성을 버리고 재미에만 치중할 경우, 결국 TV는 오락기로 전락하고 말 것이 명약관화한 현실이다. '30분 다큐'의 폐지. 시간대의 이동도 아닌 이 일상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폐지가 유감스러운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