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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강심장', 강한 토크 부족한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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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심장'은 그 프로그램명이 의미심장하다. 먼저 '강심장'의 '강'에서 우리는 두 가지 뉘앙스를 발견한다. 그 첫 번째는 강호동이다. '야심만만2'가 우여곡절 끝에 폐지되고 신설된 이 프로그램은 시작 전부터 '강호동쇼'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중훈쇼'가 시청률에서도 또 평가에서도 참패를 면치 못하고 물러날 때, 그 반대급부로서 떠오른 것이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 도사'였다. 박중훈이 주창했던 '예의바른 토크'는 게스트에게만 예의바른 토크로 끝났고, 반대로 '무릎팍 도사'의 '불친절함'은 게스트를 불편하게 하지만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단지 불친절한 토크로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시점에 '강호동쇼'라는 제목이 주는 무게감은 실로 클 수밖에 없다. 첫 회에 이례적으로 17%에 달하는 시청률을 거두게 된 것은 바로 이 '강심장'의 '강'이 가진 '강호동쇼'의 뉘앙스가 일정 부분 역할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강심장'은 '강호동쇼'가 아니었다. 강호동이 MC인 토크쇼였을 뿐이다. 그것도 이승기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게다가 '강심장'은 게스트들을 잔뜩 초대해 벌이는 집단 대결토크쇼의 형식을 지니고 있어 게스트에 집중도가 더 높았다. 상대적으로 MC들은 진행자의 위치에 머물 뿐이었다. 실제로도 강호동의 역할은 눈에 띄지 않았다. '무릎팍 도사'처럼 프로그램 전체를 이끌고 가는 강호동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강심장'에서 존재감이 살지 않는 강호동이 낯설게 느껴질 판이었다. 그러니 '강호동쇼'라는 기대감이 컸던 만큼 실망감도 클 밖에. 기대감을 갖게 한 '강호동쇼'의 뉘앙스가 시청률을 높여놓는 역할을 해냈지만 그만큼 강호동이 져야할 부담감도 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강심장'의 '강'은 '강호동쇼'가 아니라 '강하다'는 의미로 변환되었다. 강한 토크를 한다는 이야기다. 지금껏 토크쇼에서는 좀체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빅뱅의 G드래곤은 "멤버들과 잠적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을 승리가 사장에게 폭로"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놨고, 2NE1의 씨엘은 "5년간 남자친구 금지"를 선언한 사장님이 밉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방식은 이른바 그 주의 '강심장'이 되기 위한 대결형식이다. 그 날의 주제에 대해서 각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어떤 것이 더 "강한가"를 즉석에서 방청객이 투표로 결정하는 식이다. 마지막에 남은 1인이 그 주의 '강심장'이 되는 것. 물론 여기서 '강한 것'이 토크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춤이나 끼를 보여주는 것도 한 방식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강심장'은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이경규가 진행한 '토끼열전'의 화려한 버전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강한 토크쇼를 지향하는 '강심장'의 형식은 어디서 파생되어 진화된 결과일까. 먼저 밝혀 두자면 프로그램의 형식이 어떤 기존에 있는 형식을 변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변용된 형식이 갖는 새로움이 진화의 성격을 갖는가, 아니면 퇴행의 성격을 갖는가이다. '강심장'에서 떠오르는 프로그램은 '세바퀴'와 '스타킹'이다. 집단 게스트 체제를 갖고 토크와 끼를 선보인다는 점이 '세바퀴'를 닮았고, 거기에 스튜디오 경연대회 형식의 대결구도가 '스타킹'을 닮았다. 하지만 두 프로그램과 '강심장'은 근본적인 차이점들이 더 극명하다. '세바퀴'가 설문을 통한 퀴즈 형식으로 다양한 세대의 공감대를 끌어내려 했다면, '강심장'에는 그러한 퀴즈 형식 같은 공감의 장치가 따로 없다. 좀 더 강한 토크를 위한 대결구도가 더 부각되고, 공감 포인트는 외적인 장치가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찾아지는 형식이다. 그 주의 '강심장'이 되기 위해서 게스트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에는 자극적인 폭로의 이야기도 있지만, 때론 감동적인 사연도 들어가 있다. 아직까지는 자기 존재를 알리기 위한 강한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닐 것이다. 실로 강심장이어야 할 만한 자극적인 폭로성의 이야기와, 심장을 울리는 공감의 이야기를 섞어내야 비로소 토크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스타킹'은 경연 형식의 대결이 들어가지만 그 대결은 일반인들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공감대가 형성된다. 반면 '강심장'은 연예인 자신들의 이야기나 끼를 뽐내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자기 홍보의 함정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형식 속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는 것이다. 그 강한 이야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강심장'은 우리가 흔히 토크쇼에서 봐왔던 자극적인 폭로성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물론 간간히 가슴 찡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회와 2회에 '강심장'에 등극한 이야기는 이러한 폭로성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방송한 지 3년 만에 결혼해 임신까지 하게 되자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아나운서 오영실이 겪었던 그 시절의 눈물겨운 사연이 1회의 강심장이 되었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의정의 뇌종양 투병기가 2회의 강심장이 되었다. 이처럼 토크가 가지는 폭로성과 진정성 사이에서 '강심장'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려 노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배분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연예인 사생활에 관련된 자극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거의 끝부분에 진정성 있는 이야기 한두 개로 마무리를 하는 느낌이다.

'강호동쇼'가 아닌 강한 이야기를 선택한 '강심장'이 이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심장을 뛰게 만드는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다. 토크쇼가 가져야 하는 제 1의 덕목은 소통이기 때문이다. 토크쇼는 그 기본이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공감을 일으켜야 비로소 토크쇼로서의 어떤 기본이 마련될 수 있다. 이것은 아무리 예능화되어버린 토크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강심장'이 이제부터 다시 들춰봐야 할 것은 '세바퀴'가 갖고 있고 '야심만만'이 갖고 있던 공감의 장치들이다. '세바퀴'와 '야심만만'이 갖고 있던 설문 퀴즈 같은, 그 자리에 앉아있는 수많은 게스트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공감의 장치가 있어야, 각각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지리멸렬해지지 않는다. 집단 게스트는 경쟁이라는 장점을 가지지만, 반면 소외라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여러 명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꿰다 논 보릿자루가 늘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게스트란 사실 시청자들이 공감하면서 동시에 감정이입을 통한 대리만족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세바퀴'의 아줌마들이 보여주는 솔직 과감한 수다는 현실에서 쉬 내뱉지 못하지만 늘 속내로 갖고 있던 그 부분을 긁어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러니 그 게스트가 소외된다는 것은 그대로 시청자의 소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야심만만'은 토크쇼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평가되는 프로그램이다. 설문을 통해 공적인 이야기를 가져와 그것을 연예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자극과 공감을 동시에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장치를 버리고 나서 '야심만만'이 겪은 지리멸렬의 길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강한 토크를 할 것인가만을 고민한 결과였다. '강심장'이 진정한 토크쇼의 강자로 서려면 강한 이야기와 함께 심장이 뛰게 하는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
(이 칼럼은 시사저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