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아바타'와 '아마존의 눈물' 본문

옛글들/네모난 세상

'아바타'와 '아마존의 눈물'

D.H.Jung 2010. 1. 1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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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몇 가지 시선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2012'의 쓰나미는 온 지구를 삼켜버리지만 그 이유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뭐 과학적인 이론이야 그럴싸하지만 과연 그런 지구 종말이, 그저 예언되어진 대로 벌어지는 것일 뿐, 인간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는 심지어 무책임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하긴 할리우드에서 흥행을 위해 만들어진 재앙 블록버스터에서 윤리적인 측면까지 기대한다는 건 좀 지나쳐 보이기까지 한다. 재앙이 벌어졌으나 거기에 인간의 죄는 묻지 않는 태도, 끔찍한 지옥도가 펼쳐지지만 먼 거리에서만 바라봐 그 지옥도조차 스펙타클로 여겨지게 만드는 할리우드 CG의 놀라움 앞에서 환경 문제 같은 이야기는 쑥 들어가 버린다.

코맥 매카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더 로드'는 이야기가 약간 다르다. 이 작품 역시 무엇이 그런 지구의 종말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 영화는 이 모든 원인들이 바로 인간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종말 이후의 세계 속에 생존한 인간들의 모습이 그 종말의 원인을 말해준다. 사람들은 파괴된 세계 속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맨다. 때론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끔찍한 카니발리즘을 만나지만 사실 이것보다 더 끔찍한 건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그 순간이다. 희망하는 자는 길을 따라 걸어가고, 포기한 자는 길 바깥으로 나가 짐승의 길을 가게 된다. '2012'는 종말의 스펙타클(?)을 보여주지만, '더 로드'는 보고 싶지 않은 현실, 환경 파괴가 가져오는 그 지옥도를 클로즈업해서 보여준다는 점이 다르다.

한편 '아바타'는 이미 파괴될 대로 파괴되고 에너지가 고갈된 지구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 행성인 판도라로 날아간다. 그런데 아직도 인간들은 정신 못 차리고 지구에서의 잘못된 역사를 반복한다. 대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족의 터전을 불질러버리는 것. 문명의 바람을 이미 쐰 인간으로서는, 에너지를 얻기 위한 파괴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일까. 휠체어 신세로 다리(아마도 기계 다리)를 얻기 위해 이 행성에 들어와 아바타(분신)를 이용해 나비족에게 접근한 제이크 설리(샘 웨딩턴). 그러나 그는 점점 나비족에게, 아니 이 아름다운 판도라 행성에 빠져든다. 결국 이 판도라 행성을 지키는 제이크 설리의 이야기는 바로 파괴되지 않았던 시절, 자연과 인간이 영적으로 소통하던 옛 시절의 지구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담는다. 판도라 행성을 구해낸 제이크 설리가 기계 다리를 포기하고 주술이 살아있는 자연의 품에서 새 몸을 얻는 장면은, 문명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도 읽히지만, 지긋지긋한 현실에서의 도피, 즉 가상이지만 낙원으로 영원히 접속되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아바타'의 잔영이 보이는 것은 그 판도라 행성의 살아있는 자연이 아마존의 밀림을 그대로 닮아있기 때문이고, 대체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그 원주민들의 터전을 불 지르는 인간의 이야기가 바로 이 곳 아마존에서 지금 현재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눈물'의 시선은 '아바타'에서의 제이크 설리의 시선을 따라간다. 아마존 밀림 속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삶을 차츰 이해해가는 그 과정에서 저 한 편에서 밀림을 향해 다가오는 기계음을 듣게 되는 식이다. '북극의 눈물'에서 카메라가, 녹아가는 얼음 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북극곰에 머무르는 것으로 지구적인 환경문제를 잡아냈던 것처럼, '아마존의 눈물'에서 카메라는 거기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삶을 따라가며 지구의 이야기를 건넨다. 물론 '아마존의 눈물'에는 파괴되어 가는 '지구의 허파'를 위해 싸우는 제이크 설리 같은 돈키호테는 없다. 하지만 바로 그 곳에 들어가 그 실상을 시리도록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과 대비시켜 담아온 그들이 바로 환경 파괴에 맞서는 첫 발을 내디디는 제이크 설리가 될 것이다.

올 겨울, 전 세계는 이상기온으로 들썩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때 아닌 폭설에 한파가 몰아닥쳤고, 지구 반대쪽에 있는 호주에는 난데없는 열대야로 펄펄 끓고 있다.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해는 어쩌면 이제 우리가 지금껏 누려온 문명의 평온한 만큼 앞으로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연재해를 보는 시선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는 '2012'의 무책임한 태도로 바라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더 로드'의 보고 싶지 않지만 반드시 바라봐야 하는 현실로 볼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아바타'가 그리는 막연한 야생과 자연에의 향수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아마존의 눈물'처럼 그네들의 불행이 우리의 삶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통찰해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우리 각자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문화는 때로는 이야기와 꿈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