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당신은 누군가의 '올리브'인 적이 있는가 본문

옛글들/네모난 세상

당신은 누군가의 '올리브'인 적이 있는가

D.H.Jung 2010. 4. 1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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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프로그램의 새로운 실험, '올리브'

"비둘기는 저녁 때가 되어 되돌아왔는데 부리에 금방 딴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있었다. 그제야 노아는 물이 줄었다는 것을 알았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의 한 구절이다. 아마도 홍수로 배 위에서 절망적인 나날을 버텨내던 그들은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 잎사귀에서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올리브는 평화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인 기부 프로그램 '올리브'에는 그 비둘기와 그 올리브가 모두 존재한다. 비둘기가 기부자라면 올리브는 그가 프로그램을 통해 전하는 희망이다.

그 희망이 닿는 곳은 지금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사연 하나씩을 들고 스튜디오로 들어온다. 출연자들이 직접 필요한 금액을 적어보이는 모습은 조금은 직설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그 투박함이 어떤 진실에 가까워보인다. 이것은 힘겨운 현실에 처한 이들을 그저 말로 위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누군가는 고상하게 '돈'이라는 말을 피하겠지만, 사실 이들에게 가장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돈이다.

하지만 돈을 적어내고 그 돈을 기부하는 것으로 '올리브'라는 프로그램을 단순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드러내고 그 사연을 들어주는 이가 있으며, 거기에 선선히 돈을 쾌척하는 기부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눈앞에서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부의 선순환을 희망하게 만드는 힘이 생겨난다. 그래서 '올리브'가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은 돈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출연진들이 전해주는 사연들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낮은 곳을 드러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거기에는 날치기범을 잡은 자율방범대원이지만, 바로 그 일 때문에 오른쪽 어깨 인대 파열을 입고 손을 사용할 수 없어 횟집을 2년 여간 방치해오다 왼손으로 다시 칼을 잡게 된 이도 있고, 두석장을 만드는 중요무형문화재지만 생활고에 시달려 나무조차 살 수 없게 된 이도 있으며, 고2 때 아들을 낳아 이제 갓 스물에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사연을 통해 힘겨운 삶의 이야기들을 시청자들에게 물어다 준다.

한편 기부자를 통해 도움을 받은 그들은 자신들 또한 자신처럼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겠다고 다짐한다. 다친 오른손 때문에 서툴게 왼손으로 회를 썰며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던 남자는 다음날 새벽 3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시장에 나가면서 이렇게 말한다. "매일 왔던 곳인데 어제와 오늘이 달라 보입니다."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연봉 1천5백만 원도 안 되는 자신의 일을 선뜻 아들에게 권하지 못한 중요무형문화재 두석장 보유자는 다음 날 신바람 나게 목재상을 찾아간다. 그것은 희망을 찾아가는 발걸음이다.

프로그램 시작에 MC 이경규는 이렇게 말했다. "돈을 버는 건 기술이지만 돈을 쓰는 건 예술"이라고.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그것을 직접 목도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이건 '올리브'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힘이다. 의외로 공감의 힘은 강하다. 어떤 사연을 가진 이에게, 또 그에게 도움을 주는 이에게 공감할 때, 이미 사회는 그 변화가 시작됐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방주 위에서 비둘기가 물어다 준 올리브를 보며 느꼈던 그 희망이 다시 삶을 살아가게 해주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의 올리브였던 적이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