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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MBC의 ‘무한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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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파업과 ‘무한도전’ 결방, 왜 지지받을까

토요일 저녁, 우리는 ‘무한도전’이라는 세상에서 웃고 울었다. 그 세상에서는 어딘지 평균 이하인 인물들이,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가장 낮은 위치를 확보하자, 그 눈높이는 서민들에 맞춰졌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모습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위무해주기도 했고, 때론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했고, 때론 희망을 갖게도 만들었다. TV 속 오락 프로그램은 그렇게 현실 바깥으로까지 손을 뻗었다. 그들의 세상은 언제부턴가 리얼이 되었고, 따라서 그 ‘무한도전’에서 도전하는 그들의 모습은 세상을 바꾸어가는 작은 힘이 되었다.

그 도전들을, 그 작은 힘을, 희망의 작은 상징을, 벌써 6주째 못보고 있다. 파업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일일까. 계속된 결방으로 시청자들이 주말의 즐거움을 빼앗겼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무한도전’ 결방에 대해 지지를 표하고 있다. ‘무한도전’의 결방이, 아니 MBC의 파업이 정당하며, 그 파업이야말로 시청자들의 진정한 볼 권리를 얻게 해줄 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이미 타협을 통해 통제 속에서 만들어지는 ‘무한도전’은 더 이상 진정한 ‘무한도전’이 아니라는데 합의하고 있다. 그러니 ‘무한도전’의 결방은 진짜 ‘무한도전’을 위한,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약속을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그 작은 권력을 이용해 약속을 깨버리는(게다가 거기엔 늘 외압의 흔적이 존재한다) 80년대식 이미 식상한 트렌디 드라마 같은 이야기. 왜 파업이 결정되었고, 왜 그다지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가는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은 이야기일 것이고, 관심을 아직 갖지 못한 분들에게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할 정도로 낯선 이야기일 것이다. 관심과 무관심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지금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제대로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공영방송사가 한 달 넘게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조용한 걸까.

처음에는 천안함 사태로 묻혀 졌고, 이대로 가다보면 곧 있을 지방선거와 월드컵으로 또 묻혀질 가능성도 높다. 그러니 MBC의 파업은 이슈화가 되지 않으면 오히려 정부가 바라는 바가 될 거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지방선거 같은 중요한 사안에 MBC의 공백은 실로 클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일련의 상황들을 늘어놓고, MBC에서 벌어진 일들을 끼워 맞춰보면 마치 잘 짜여진 대본을 보는 것만 같다.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현재 MBC 노조측이 파업의 잠정 중단을 고민하는 이유는 이처럼 잘 짜여진 대본의 흐름대로 흘러가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무한도전’이 작금의 MBC 파업에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는 언론들 속에서, 대중들이 MBC 파업을 실감할 수 있는 것으로 ‘무한도전’의 공백만큼 큰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한도전’이 지금껏 해왔던 정신들, 즉 불가능해보여도, 끝까지 도전하고,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그 정신은, 현 MBC 파업 속에 깃든 정신과 맞닿아 있다. 누군가의 통제 속에서 과연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방영되고 또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까.

파업의 와중에도 ‘검사와 스폰서’라는 민감한 사안을 방영한 ‘PD수첩’에서, ‘무한도전’의 그 도전정신을 보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잘 짜여진 대본, 낙관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상황.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본래 ‘무한도전’은 그 짜여진 대본 바깥으로 나와 도전함으로써 그 정체성을 만들었던 존재가 아니었던가.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최고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게 아니었던가. ‘무한도전’의 정신은 지금껏 MBC를 버티게 해준 그 힘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파업으로 ‘무한도전’은 결방되고 있어도, MBC의 ‘무한도전’은 끝나지 않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