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시리즈 3부작 이후, 박찬욱 감독이 들고 나온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찬욱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상표가 붙은 이 영화에 대해 “괜찮다”, “괜찮지 않다”는 말들이 분분하다. 그 이유인즉슨 정지훈, 임수정 같은 이름만 들어도 기분좋은 상큼발랄한 연기자들이 캐스팅된 데다, 누가 봐도 이목을 잡아끄는 포스터와 제목, 게다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의 적시 등으로 톡톡 튀는 영화의 이미지를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떡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만 괜찮아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지만 괜찮아’라는 의미에 걸맞게 두 가지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들을 뒤집어놓는다. 영군(임수정 분)은 스스로를 싸이보그라고 생각하지만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희구하는 인간이며, 그녀와 일순(정지훈 분)이 생활하는 신세계 정신병원은 우리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보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환타지의 세계다. 그 곳에서 생활하는 싸이코들 역시 히치코크의 영화 ‘싸이코’에 나오는 그런 인물들이 아니고, 어린이의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이다. 영화의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은 복잡하고 낯선 영상들 역시 어떤 중압감으로 관객들을 억누르는 게 사실이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새 좀더 자유로운 상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박찬욱표 복수는 어떻게 변용되었나
그렇다면 박찬욱표라면 빠질 수 없는 복수의 내러티브는 어떨까. 아무리 로맨틱 코미디라고 우겨도 그 모티브는 바뀌지 않는 법. 타란티노식의 사고방식에서 자주 보이는 인체와 무기의 만남은 영군의 손가락이 총구로 바뀌는 것으로 나타나며, 그녀가 흰옷 입은 사람(의사, 간호사)에 대해 갖는 복수심 역시 저 복수3부작과 궤를 같이 한다. 막연히 흰옷 입은 사람이라 나오지만 사실 그들은 소중한 사람(할머니)을 데려간 사람으로 어떤 공권력처럼 읽히며, 영군이 스스로를 싸이보그라 생각하며 단식을 하는 장면 역시 박찬욱 특유의 사회에 대한 풍자처럼 읽힌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러한 복수를 생각하는 인물의 사고수준이 동화적 세계에 놓여있다는 것. 프로이트식의 해석을 굳이 늘어놓지 않더라도 영군은 어린이가 갖는 적개심과 분노, 복수심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니 복수를 해도 영화는 경쾌해진다. 도망치는 의사들을 쫓아 다니며 무차별 난사하는 장면들은 마치 즐거운 오락게임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이 위악적으로까지 보이는 영상들 속으로 영군과 일순의 박찬욱식 사랑이야기(사이보그의 사랑?)가 들어가면서 영화는 깜찍해진다.
박찬욱 감독은 정지훈과 임수정이 갖고 있는 본연의 이미지를 영화적으로 잘 활용했다. 저 드라마 ‘풀하우스’에 나왔던 정지훈의 이미지와 임수정 본연의 소녀 같은 이미지는 감독에 의해 창조적으로 파괴되었다. 이로써 무언가 차가우면서도 귀엽고, 섬뜩하면서도 앙징맞은 박찬욱 냄새가 물씬 나는 영군과 일순의 캐릭터로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전적으로 두 연기자의 이미지가 없었다면 박찬욱 단독으로는 만들어내지 못했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박찬욱이지만 그의 로맨틱 코미디가 괜찮은 것은 이들 연기자들의 몫이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거
이러한 이질적인 이미지들의 결합으로 탄생한 이 영화는 그래서 또한 위험성도 존재한다. 어차피 결합을 통한 탄생이란 성공했을 때는 독특하고 새로운 작품이 되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경우엔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박찬욱의 이미지를 갖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마도 어떤 아쉬움 같은 걸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또 전혀 그런 이미지와 상관없이 ‘열린 마음으로’ 본 사람이라면 그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미덕을 발견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를 했다. 그 요지는 “논리를 들이대면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편안하게 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영군과 일순이 하는 행동들과 말을 따라가다 보면 거기 사랑이 보일 거라는 말이다. 이로써 이 영화는 순수한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영화가 되었다. 그게 안 보인다고 말하면 순수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되니 서둘러 말해야겠다. “사랑이 보여요!”라고. 그런데 그런 얘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이 영화에 왜 그런 사족을 붙여놓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기자들의 궁금증이 너무나 증폭되어 생긴 결과겠지만, 영화라는 게 꼭 감독의 의도대로 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싸이보그지만, 박찬욱이지만 괜찮은지 아닌지는 관객들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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