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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도망자'와 '대물',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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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도망자', 고현정의 '대물' 그 강약 비교

첫 방영에 '도망자'와 똑같은 시청률 18%를 기록한 '대물'은 기획이 잘 된 작품이다. 먼저 '여성 대통령'이라는 화제성이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 그 대통령을 연기하는 배우가 고현정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선덕여왕'의 미실로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그녀의 이미지가 여전히 여운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치 드라마를 소재로 담고 있지만 그저 현실적인 정치에 머무르지 않고 그 위에 대중들의 바람을 판타지로 엮어놓은 점도 강점이다. 천안함 사태나 아프카니스탄 피랍, 대통령 탄핵 같은 우리 주변에 이미 벌어졌던 사건들을 배치하지만, '대물'은 그것을 현실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다. 즉 대통령을 다루지만, 아직은 현실적으로 바라보기 힘든(물론 현실이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만) 여성 대통령을 다루는 작품이 '대물'이다.

정치물이면서도 그 주인공으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어 드라마 주시청층인 중장년 여성층을 공략하기에도 수월하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이미 대통령이 된 서혜림(고현정)을 다루는 게 아니라, 아나운서가 되었다가 남편의 죽음을 겪고 정계에 입문해 대통령이 되어가는 여성의 성장드라마를 다룬다는 점에서 여성사극이 보여주던 그 몰입감을 선사한다.

'대물'의 이런 기획적인 강점들을 두고 보면, '도망자'는 상당히 불리해 보인다. 사실 '도망자'의 완성도나 성취도는 결코 낮지 않다. 이른바 '한국형 본격 오락 드라마'의 탄생이라고 말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미 장르적 성취가 이루어진 것이지만 여전히 드라마에서 본격 오락물은 요원한 것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망자'는 이런 매체적 한계를 여지없이 깨고 있다.

'도망자'는 대사로 극이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액션)을 통해 스토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타의 드라마들과 다르다. 대사는 주로 코미디를 연출하는 측면이 강하고, 드라마는 시종일관 쫓고 쫓기는 장면들로 그 속에 놓여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누군가에 의해 자신과 관련된 인물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고 자신조차 쫓기는 진이(이나영), 그리고 그녀에 의해 고용된 탐정 지우(비), 또 살인자로 오인해 지우를 추격하는 형사 도수(이정진). 이들이 벌이는 추격전은 이 드라마의 핵심적인 재미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를 마치 옆 동네처럼 넘나들고 멀티 더빙된 영화처럼 우리말과 일본어, 중국어, 영어가 마치 일상어처럼 사용되는 이 드라마는 스케일이 그만큼 크고, 이야기 전개 또한 스피디하다. 따라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있으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그 오락적인 영상의 흐름 위에 던져진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없이 달리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과거 일제시대에 사라진 금괴의 이야기로 한 지점으로 모여질 것으로 보인다. 액션이 보여주기 위한 액션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이 정신없이 달리는 액션이 시청자들에게 낯선 것 역시 사실이다. 대사로 전달되던 이야기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끝없이 질주하는 몸들의 이야기는 너무 빨리 흘러가 오히려 몰입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시청층으로 봐도 중장년 여성들이 빠져들기에는 좀 어려운 스타일이다. 물론 이런 고정관념을 깨뜨리려는 시도가 이 작품의 진짜 묘미이자 가치인 것은 분명한 일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한편 '대물' 역시 강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대물'은 정치라는 현실적 배경 그림 위에 판타지적인 인물과 스토리를 얹어 놓은 드라마다. 따라서 인물과 스토리가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흐르게 되면 작품 자체의 개연성을 깨뜨릴 위험성도 있다. 특히 만화 원작 드라마들이 만화적 스토리에 집착하게 되면 드라마적 현실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초반전. '대물'과 '도망자'는 각각 자신의 확고한 영역을 통해 박빙의 승부를 보여주고 있다. 장단점이 뚜렷한 이 두 드라마는 어떻게 자신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고 단점을 극복하느냐에 앞으로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대물'은 진정 대물 드라마가 될 것인가. '도망자'는 계속 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인가.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두 드라마의 대결 자체가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