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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명랑TV

재미로 무장한 '일밤', 왜 시청률은 안 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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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밤', 재미만큼 공감으로 정체성을 구축해야

공익예능을 벗고 '일밤'은 재미로 무장했다. '뜨거운 형제들'은 아바타라는 새로운 장치를 들고 나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재미를 선보였고, '오늘을 즐겨라'는 예능에는 첫출연 하는 신현준과 정준호를 내세워 상황극과 리얼 사이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공익이라는 대의만으로는 예능 프로그램의 기본인 웃음을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한 듯, '일밤'은 어떻게 하면 웃음을 줄 수 있을까에 골몰했다.

실제로 웃음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이 두 프로그램은 꽤 강력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재미있게 만들어도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다. 한때 '뜨거운 형제들'이 10%대의 시청률에 도달하면서 '일밤'을 재점화시킬 것으로 고무된 적도 있었지만, 지금 '일밤'의 시청률은 고작 6%대에 머물고 있다. 새롭게 시작한 '런닝맨'이 초반 부진에도 불구하고 현재 10%대 시청률에 도달한 것과는 사뭇 상반되는 결과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일요일 밤 예능을 거머쥐고 있는 '해피선데이'가 '남자의 자격'과 '1박2일'로 쌍끌이를 하면서 도무지 틈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시간대에 '런닝맨'이 선전하는 것을 보면 이것이 꼭 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오늘을 즐겨라'는 애초 '1박2일'의 시간대에 편성되어 경쟁구도를 이끌어갈 것으로 여겨졌으나, 갈수록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오늘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들을 보여주고 이를 모아서 1년 후 책으로 묶어낸다는 처음의 기획의도는 사라진 지 오래다. 현재 '오늘을 즐겨라'는 스포츠 버라이어티로 바뀌었다. '빵을 즐겨라' 이후에 '육상을 즐겨라'로 시작된 이 스포츠 버라이어티는 그 후로 '축구를 즐겨라', '마라톤을 즐겨라', '양궁을 즐겨라'로 이어졌다.

김성주 아나운서가 투입되고 해설 개그의 일인자 이병진이 고정적으로 배치된 것은 이런 변화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스포츠 소재들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양궁을 즐겨라'에서만 봐도 사과 맞추기 같은 볼거리에다, 복불복이 가미된 식사 내기 양궁대결의 웃음이 분명한 재미거리를 만들어낸다. 특히 이병진의 빵빵 터지는 해설은 이 코너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재미도 역시 '오늘을 즐겨라'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고정적인 시선을 잡아끌기에는 부족하다. 즉 '1박2일' 하면 여행을 '남자의 자격' 하면 아저씨들의 감동을 '런닝맨' 하면 게임을 떠올릴 수 있지만, 작금의 '오늘을 즐겨라' 하면 떠오르는 게 스포츠다. 그런데 이 스포츠와 '오늘을 즐겨라'는 컨셉트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1년 후에 과연 책으로 묶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한편 앞에서 끌고 나가야될 '뜨거운 형제들'은 아바타 소개팅에서 멈춰서 있는 형국이다. 초기 아바타라는 컨셉트는 그 파괴력으로 '뜨거운 형제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이 아이디어는 그다지 확장되지 못했다. 중간에 신구세대 간의 소통이라는 의미로 기성세대 연예인들과 젊은 연예인들이 아바타로 짝을 짓는 '아바타 주식회사'가 시도되었지만 이것도 몇 회 후에는 흐지부지되어버렸다. 현재는 '일치게임', '불일치게임' 같은 것이 프로그램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아바타는 반복적으로 소비되면서 그 참신함을 잃고 있다.

토니 안이 투입되면서 어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지는 알 수 없지만 김구라가 자진 하차하는 상황은 '뜨거운 형제들'에게 그렇게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뜨거운 형제들'은 김구라와 박명수가 앞에서 치고 나가고 탁재훈이 옆에서 거들어주며 젊은 쌈디나 이기광이 밑에서 받쳐주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뜨거운 형제들' 역시 '오늘을 즐겨라'처럼 재미 면에서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예능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좀체 오르지 않는 것은 잦은 프로그램 코너의 변화가 가져오는 불분명한 정체성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무한도전'처럼 매번 형식 자체를 바꿔가며 새로운 시도를 할 수는 없다. 이런 형식실험이 '무한도전'에서 가능한 것은 그것 자체가 '무한도전'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 밤 좀 더 대중적인 접근을 해야 하는 '일밤'이 매번 형식 실험을 하는 것은 무리수다.

지금 '일밤'이 갖고 있는 '뜨거운 형제들'이나 '오늘을 즐겨라'는 그 형식 자체가 나쁘지 않다. 그러니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계속 새로운 아이템을 끼워 넣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애초 기획의도를 재점검해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 최초의 아이템들을 좀 더 폭넓은 세대와 공유할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한다. 재미만큼 중요해진 것은 의미다. 이것은 공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 속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공감을 찾을 수 있다면, '일밤'은 현재 갖고 있는 코너의 본래 형식으로도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일밤'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