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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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네모난 세상

다큐, 당신은 언제부터 이렇게 재미있었나?

D.H.Jung 2011. 1. 23.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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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으로 들어온 다큐의 특별한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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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의 만남'(사진출처:KBS)

사람만큼 진한 향기를 내는 소재가 있을까. 특히 그 사람과 첫 만남을 가질 때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러 번 만나 향기에 익숙해지고, 그래서 무덤덤해지는 만남처럼 흥이 깨지는 일도 없다. 피천득의 '인연'이나 조동진이 부르는 '제비꽃' 속의 만남들이 가슴에 아련히 남는 것은 그 긴 세월 동안 단 몇 번의 만남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번의 만남'이다. 이 인물다큐는 단 세 번의 만남이라는 제한으로 오히려 만남의 향기를 더 진하게 전한다.

'세 번의 만남' 속에서 장재인은 갑작스럽게 신데렐라가 된 그 변화에 놀라는 얼굴로 다가왔다가, 힘들 때 이대 앞에서 사먹던 치즈케이크와 홍대 클럽에서 봤던 오디션, 그리고 노래가 좋아 자퇴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홍대 클럽으로 오고 '슈퍼스타K'를 하게 된 얘기들을 들려주는 꾸밈없고 인간적인 얼굴을 조금씩 보여준다. 마치 짧은 만남 속에서 어떤 깊은 순간을 포착하려는 듯, 카메라는 장재인의 손 때 묻은 노트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에서 신데렐라가 아닌 싱어 송 라이터 장재인을 찾아낸다.

사실 '세 번의 만남'의 카메라는 무덤덤할 정도로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다만 꼼꼼하게 인물과 인물 주변의 것들을 담아내면서 그 인물이 가진 매력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뿐이다. 악역 전문 프로레슬러에 종합격투기 해설가, 7권의 책을 쓴 작가, 칼럼니스트, IT전문가, 프랜차이즈 사업가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동시에 하고 있는 낭만레슬러 김남훈을 만났다고 해서 카메라가 호들갑을 떠는 일은 없다. 그 일상들을 마치 일기 쓰듯 기록하고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이 무덤덤함도 세 번이라는 제한 속에서는 그 인물을 오히려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힘이 있다. 마치 울지 않고 슬픔을 연기하는 연기자가 더 큰 슬픔을 전해줄 수 있듯이.

'세 번의 만남'이 인물과의 만남을 다루는 것처럼, '그 날'이라는 휴먼다큐 역시 그 중심에 서 있는 건 인물이다. 다만 그 인물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그 날'에 집중하는 형식이 다를 뿐이다.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인 '그 날'을 중심으로 이 다큐멘터리는 그 날의 이전과 그 날 당일, 그리고 그 날 이후를 조명한다. 특정한 날이 어떤 클라이맥스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큐는 어떤 극적인 형식을 얻게 된다.

한류팬 다나하시씨의 실종을 그녀를 찾기 위해 찾은 그녀의 딸들의 시선으로 다룬 '엄마가 실종된 그 날' 편은 마치 추적하듯 엄마가 실종된 그 날의 길들을 되밟는다. 자신의 간 절반을 내주고 그것도 모자라 신장까지 아버지에게 떼어준 수홍씨의 '그 날'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더 감동적이다. 2PM이 일본을 처음 진출하던 '그 날'의 흥분과 설렘은 또 어떻고.

'세 번의 만남'과 '그 날' 같은 다큐멘터리는 '다큐3일'이나 '미지수' 같은 일상화된 다큐들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진화된 형식으로 탄생한 것들이다. 공통점은 시간적 제한이다. '세 번의 만남'은 횟수를 제한했고, '그 날'은 시점을 제한했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대작 기획형 다큐멘터리가 갖는 한계들, 예를 들면 제작비나 제작기간 같은 것들을 뛰어넘기 위한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 제한 자체가 새로운 시각을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보다 일상의 반짝반짝하는 순간들을 포착하게 된 다큐는 확실히 재미있어졌다.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의 말투를 빌자면, "다큐, 당신은 언제부터 이렇게 재미있었나"하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