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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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영화라고 얕보지마

D.H.Jung 2007. 1. 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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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사로잡는 아이들 영화

방학시즌이 되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방학용 영화’들이 한 편 두 편 극장가에 선을 보이고 있다. 으레 방학이면 아이들 손잡고 영화 한 편 보는 게 통과의례처럼 되어 버려 좋던 싫던 시간 내서 영화관을 찾긴 찾아야겠는데, 그게 그렇게 영 내키는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애들 영화’라는 선입견 때문. 하지만 애들 영화라고 얕보면 안 된다. 별 기대않고 들어갔다가 오랜만에 감동 먹은 어른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어른들 마음 사로잡는 아이들 영화,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빠 왜 울어? 어른 울리는 ‘해피피트’
이 영화를 보기 전 주의사항.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간 끝 부분에 가서 북받쳐 오르는 감동에 “아빠 왜 울어?”하고 아이가 물어보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펭귄의 세계를 통해 동심으로 만들어진 ‘해피피트’는 아이들에게는 그저 즐거운 영화일 수 있겠지만, 어른들은 그 깊은 이야기 속에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음치이지만 대신 춤을 잘 추는 멈블은 그 춤이 물고기가 사라지는 재앙을 불러올 것이란 이유로 종족에서 쫓겨난다. 멈블은 그러나 물고기가 사라지는 이유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고 결국 인간에게 그 환경문제를 알려 펭귄들을 구한다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그저 ‘미운 오리새끼’의 변용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펭귄세계의 종교적 상황과 어찌할 수 없는 미지의 힘에 대한 해석들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좀더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지한다. 이 영화는 대부분의 동물영화들이 그렇듯이 동물을 통한 인간 세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만의 미덕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 인간 실존의 질문들을 담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아이들은 탭댄스 추며 노래하는 펭귄에 매료되는 것으로 대만족이지만, 어른들은 생각 못한 수확을 얻게되는 셈. 순수한 아이들의 세상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얻어갈 것이 많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야생의 맛을 보여주자구, ‘부그와 엘리엇’
‘부그와 엘리엇’은 자칫 직장이나 가정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귀차니스트’ 어른들에게 야생의 맛을 보여줄 영화다. 부그는 산악관리인 베스에 의해 키워진 곰으로 TV와 쿠키를 좋아하고 변기가 없으면 볼 일을 못 볼 정도로 야생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날 난폭한 사냥꾼 쇼에게 잡힌 사슴 엘리엇을 부그가 구해주자 엘리엇이 자꾸만 부그를 부추겨 야생으로 끌어낸다. 결국 사고를 친 부그와 엘리엇은 산으로 돌아가게 되고 거친 야생의 맛이 고달픈 부그는 인간세상으로 돌아오려 한다. 그러나 마침 사냥철이 되어 위기에 몰린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인간과 맞서면서 차츰 야성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조금 결말에 가서 무언가 맥빠지는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이 ‘인간에게 길들여진 곰’이 야생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울림이 있는 것은 바로 우리네 삶에도 부그가 처한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있어 동물들이 모두 협심해서 인간들을 혼내주는 장면에 가서는 어떤 통쾌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이나 어른이나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우리네 환경에 속시원한 야생의 맛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아버지는 살아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남자는 약하지만 아버지는 강하다. 박물관이 밤이 되면 살아난다는 ‘주만지적인’상상력으로 돌아온 ‘박물관이 살아있다’에는 박제되어버린 우리네 아버지들의 자화상이 숨어 있다. 하는 일마다 실패해 이혼까지 한 래리 댈리(벤 스틸러 분)는 아들에게만은 떳떳하고 싶어 일자리를 찾는다. 그 일이란 다름 아닌 박물관 야간경비원. 그런데 이 박물관 야간경비가 만만찮은 일이다. ‘박물관은 역사가 살아나는 곳이다’라는 경구가 실제 상황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롤러코스터 타듯 신나게 박물관 모험 속에 빠지다 보면 슬슬 이 영화가 직업도 없고 입지도 좁아진 우리네 아버지들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들 앞에서 떳떳하게 서는 모습에서 어떤 통쾌함을 느끼게 되지만, 그것이 결국 환타지라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평소 아이들에게 주말 잠자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 아버지라면, 함께 보는 것으로 서로간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 있는 영화다.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아이들은 어쩌면 ‘살아있는 아버지’를 찾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아이들 영화를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너무나 통쾌한 웃음을 웃는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현실이 아이들의 순수에서 더 멀리 있다는 걸 안다는 증거이다. 취향따라 만족도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한번쯤 아이들 세계 속으로 푹 빠져보며, 잊고 있던 방학의 기억을 되살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