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천’의 고전이 시사하는 것
‘중천’이 제작된다고 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새로운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여된 데다, 아시아급 스타인 정우성, 김태희가 주연을 맡은 점, 게다가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했다는 점에서 안정적인 배급망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살짝 공개된 CG를 통해 우리는 또 한번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건 ‘반지의 제왕’급 CG가 붙었으니 이제 이 ‘중천’이란 호랑이는 날개를 단 격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 시장을 노려볼 만 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막상 뚜껑이 열리고 몇 주가 지난 상황에서 ‘중천’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현재 약 150만∼170만 관객정도를 확보한 상태고 최종관객수가 200만을 전후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400만 정도가 들어야 맞출 수 있는 손익분기도 넘기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온다. 무엇이 이 완벽한 조건의 영화를 고전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을까. 그 시사하는 바를 살펴보면 한류의 바람을 타고 만들어지는 우리네 블록버스터의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영화는 CG가 아니다
우리네 CG기술은 이제 더 이상 헐리우드의 그것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그 증거물은 다름 아닌 ‘중천’이다. CG기술의 핵심인 캐릭터 모델링에서부터 동작을 연출하는 애니메이션 기술도 이제는 자연스러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CG를 실사와 합성하는 기술이 진일보함으로써 이제는 너무 CG기술에 매달릴 필요가 없게되었다. 과거에는 CG 자체의 성공이 작품 성공의 관건이 되었다면, 그것은 이제 영화나 게임 등의 한 부분이 되고 있다. CG가 멋지다고 해서 흥행이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상황이 아니다. 최근의 헐리우드 액션은 와이어 액션보다 리얼 액션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 최근 개봉된 ‘007 카지노로얄’이 007 본연의 캐릭터인 신종무기를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몸 하나로 액션을 보여주는 것은 최근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말해준다. 만들어진 액션보다는 이제 실제 액션을 봐야 리얼하게 다가오는 세상이다. 아무리 정우성이 저 하늘 꼭대기에서 내동댕이쳐져 바닥에 착지하는 장면이 실사에서는 불가능하고, 그래서 CG로 만든 정우성이 그걸 대역한다 하더라도 이제 영화의 관건은 그런 CG가 아니다. CG는 이제 영화의 한 기술일 뿐, 그 자체가 되지는 못한다.
상업영화에서는 내러티브의 힘이 관건이다
영화의 성공 여부는 오히려 고전적인 조건들로 돌아가게 된다. 내러티브의 힘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중천’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내러티브를 확고하게 만들어주는 스토리 구축에 있어서 저 CG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았던 데 있다. ‘반지의 제왕’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CG를 통해 고작 하고자 하는 스토리가 멜로라면 이건 기획의 실패일 수도 있다. CG에 열광하는 층이 어쩌면 가장 흥미를 느끼지 못할 스토리가 바로 구태의연한 멜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매트릭스적인 상상력을 스토리 속에 더 쏟아 넣었다면 ‘중천’은 동양적 혹은 불교적인 철학관을 매트릭스적으로 풀어낸 작품이 될 수도 있었다. 불교가 말하는 연기설과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이야기가 맞물렸다면 이 이야기는 좀더 보편적인 공감의 틀을 만들어 아시아만이 아닌 전 세계를 시장으로 구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단지 눈물을 쏟아내는 ‘은행나무 침대’식의 이야기들은 캐릭터들이 가질 수 있었던 매력을 없애버린 결과를 낳았다. 스토리는 단지 이야기의 재미만이 아니라 캐릭터들의 힘까지도 만들어준다. 따라서 캐릭터의 실패는 제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가 끼어 든다고 해도 복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타마케팅만으론 안 된다
‘한류 위기설’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스타마케팅이 갖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누가 봐도 간판급 한류스타인 정우성과 김태희의 출연은 아시아 전체에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놓았겠지만, 영화를 본 실망감이 주는 부메랑 효과는 너무나 가혹하다. 기대감만큼의 무게로 그 타격은 한류 전체가 입게 되는 것이다. 몇몇 스타를 캐스팅하면 무조건 된다는 사고방식은 우리네 ‘묻지마 투자’를 닮아 있지만 이것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먹히지 않는 방식이다.
스타에 너무 주력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스타의 몸값을 높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타 제작비의 여력이 줄어든다. 이것은 결국 영화의 부실을 낳게 된다. 부실한 영화를 스타 몇 명이 채워줄 수 있다는 건 이제 환상이다. 스타보다는 작품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감독, 작가와 스토리 발굴, 영화 스텝들의 처우개선 등이 결과적으로는 더 성공에 가깝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배급, 마케팅도 작품이 있고 나서 얘기다
‘괴물’이 괴물 같은 관객수를 갱신하며 성공가도를 달릴 때 비판으로 제기된 것이 배급과 마케팅의 문제다. 영화적 질보다는 전국 영화관을 장악한 배급망과 수치를 갖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마케팅이 그 성공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것도 결국 ‘괴물’이라는 작품이 있고 나서의 얘기다. ‘괴물’은 그만한 흥행력을 담지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한 ‘중천’이 전국망의 배급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공하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그 작품에 있다. CG에서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영화로서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영화를 아무리 밥상 위에 자꾸 올린다고 해도 쉬 젓가락이 잘 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블록버스터급 영화에 블록버스터급 배급이 가능하다 해도 결국 작품이 없다면 성공은 요원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 마케팅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중천’의 고전이 시사하는 것은 이제 영화의 외형적인 것들(스타, CG, 배급, 마케팅 등등)에 대한 투자보다는 좀더 영화 자체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이런 식으로도 읽힌다. 영화의 외형은 이제 충분히 성숙되어 있어서 더 이상 그것만으로는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잠시 외형에 들떠 잔뜩 폼을 잡고 있던 우리네 영화가 이제 좀더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준엄한 경고를 저 ‘중천’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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