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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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대중문화, 못 웃으면 지는거다

D.H.Jung 2011. 11. 24.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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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종과 '나꼼수'가 보여주는 대중정서

'승승장구'(사진출처:KBS)

최효종은 '승승장구'에 나와 자신의 풍자 개그에 대해 명쾌한 한 마디를 남겼다. "풍자가 기분 나쁘면 진짜로 그런 사람이란 뜻"이란 거다. 즉 '사마귀유치원'에서 국회의원을 풍자한 자신의 개그에 고소로 맞선다는 것이 결국은 본인이 그런 국회의원이란 걸 자인하는 셈이란 얘기다. 이것은 풍자가 가진 힘을 제대로 표현한 것이다. 풍자는 말해지는 순간, 진영을 나누는 힘이 있다. 웃는 사람과 웃지 못하는 사람. 게다가 이것은 웃음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웃지 못하는 사람마저 웃고 싶은 욕망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최효종의 풍자 개그와 그것에 대해 한 국회의원이 제기한 고소에 대해 개그맨들은 일제히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얘기했다. 대중들 역시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빈다.', '개그를 다큐로 받아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최효종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그가 현재 하고 있는 것은 분명 정치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이것을 '정치적인 의도'로까지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사실 모든 이들의 사회활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맥락을 갖게 마련이니까. 최효종은 개그맨이고 또 풍자에 관심이 있다. 그러니 현실의 문제들을 웃음의 소재로 끌어올 수밖에 없다. 웃는 사람이 있으면 웃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이 구분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

우리가 흔히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고 하는 말에는 은연 중에 개그(확장에서 보면 대중문화)와 정치가 분리된 어떤 것이라고 여기는(혹은 여기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가 들어 있다. 개그가 정치에 억압받던 시절의 트라우마다. 정치가 개그를 저질 판정 내리면서 스스로는 고급한 어떤 것(실제로 고급했는지는 모르겠지만)으로 구분지으려 했을 때의 이야기다. 고 이주일씨가 정계를 떠나며 "코미디 한 수 잘 배우고 갑니다"라고 말한 일화처럼, 사실 정치나 개그나 질적인 차이는 별로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러니 정치를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 여길 필요는 없다. 개그도 정치를 함의할 수 있다.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가 대중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은 것은 이 풍자가 가진 진영 나누기의 효과로 볼 수도 있다. 즉 지금껏 정치라고 하면 진보니 보수니 하는 해묵은 논쟁과,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에서 드잡이를 하는 풍경을 신물 나도록 봐온 대중들에게 김어준이 들이댄 것은 이런 소위 '정치적인 행위'라고 붙여지는 것과 정반대되는 일련의 행위들이다. 그간 비정치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사적인 이야기', '근거 없는 농담', '상황극', '조롱' 같은 행위들은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지한 체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뭔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는 기성 정치 앞에서 이런 지극히 가볍고 맥락도 없고 어디로 튈 지 전혀 알 수 없는 한 편의 개그 같은 이야기들은 확실히 진영을 구분해 버렸다. 정치인 양 얘기하면서 사실은 권력을 탐미하는 기성 정치의 비정치성. 전혀 정치 같지 않은 '잡놈'들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대중들의 정서를 정확히 파악해 그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나는 꼼수다'의 정치성. 아니 이것은 어쩌면 대중들이 원하고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인 지도 모른다. 대중은 어딘지 현실과 멀리 떨어진 저 기성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 보다는 좀 더 가까이 있는 우리 일상에 정치가 깃들길 원한다.

과거와는 달리 대중문화가 이제 정치의 중심부로 들어오고 있다. 그것은 대중정서가 가진 힘이 실제로 정치적인 힘이 되는 미디어 환경에 우리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효종은 사실 '애정남'에서부터 이런 대중문화가 가진 정치적인 힘을 부지불식 간에 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일상의 '애매한 것을 정해준다'는 그 행위는 대중들과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키지 않는다고 쇠고랑차지는' 않지만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약속'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법의 범주와 일상의 범주는 자연스럽게 대결하게 되고, 거기서 그 공감대를 공유하는 '우리'라는 연대가 생겨난다. 그 공감대가 대중문화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서울 시장 선거를 통해 급부상한 세대가 2040이다. 이 세대들의 특징은 어쩌면 이러한 대중문화와 대중정서와 긴밀한 연관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사회의 길이 결정되고 그 흐름이 동맥경화가 되어버린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 세대들은 문화를 통해 그 답답한 속내를 풀어내고, 같은 처지를 가진 그들끼리의 네트워크를 갖게 됐는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제 정치와 대중문화가 동떨어진 어떤 것이라 여기지 말자. 그리고 최효종이 말한 것처럼 '풍자가 기분 나쁘다'는 것은 어딘지 대중정서와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제 '웃지 못하면 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의 세상이 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