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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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우에 가려진 '나가수'의 진짜 문제

D.H.Jung 2011. 12. 1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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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수' 논란, 문제는 스토리 부재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의 무대에 오른 적우에 대한 논란은 사실 그 이유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이 논란은 무명가수가 '나가수'라는 무대에 올랐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애초부터 '나는 가수다'의 문호는 '실력 있는 가수'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에게 언제나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정엽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실력 있는 가수'가 아니어서 일까. 이것도 이유로서 합당하지는 않다. 적우는 나름 자신의 색깔을 갖고 있는 가수다. 다만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실력은 다 발휘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첫 무대였던 '열애'가 괜찮게 실력을 발휘했다면, 두 번째 무대였던 '나 홀로 뜰 앞에서'는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낸 무대였다. 하지만 그것이 이 가수의 실력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몇 번 더 그녀의 '나가수' 무대를 봐야 그 판단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적우에 대한 논란은 강도가 너무나 강하다. 대중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적우가 가창력의 문제를 드러내자 갖가지 의혹을 쏟아냈다. 그 비난의 강도가 얼마나 강한가는 마치 그녀를 적극 추천한 것처럼 언론에 부풀려진 것으로 비판에 직면한 장기호 교수가 그것을 공개적으로 부인하고 나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단 두 번의 무대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논란은 지나칠 정도로 커져있다. 이것은 어쩌면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다만 적우라는 가수를 통해 터져버린 어떤 것.

그것은 어쩌면 현재의 '나가수'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은 아니었을까. 처음과 거의 달라지지 않은 똑같은 형식의 반복, 순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기보다는 생존의 무대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식상함, 무엇보다 새로운 스토리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적우라는 가수를 통해 폭발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형식이 굳어져버리면 도드라지는 건 변수로 등장하는 출연자일 수밖에 없다. '나가수'가 어느 순간부터 캐스팅이 만사가 되어버리고 캐스팅 논란이 끊이질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가수는 '나가수'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기 마련이다. 적우는 바로 그 위치에 있었고, 증폭된 불만의 포화를 맞을만한 많은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캐스팅 전부터 불거져 나왔던 업소출연이 만들어낸 잘못된 이미지, 무명가수로서 베일에 가려진 과거사, 익숙하지 않은 방송, '나가수'라는 무대가 주는 중압감과 그 무대에 대한 부적응으로 생기는 실수 등등.

작은 빈틈은 관심의 집중이 된(그것도 '나가수'의 변하지 않은 형식에 불만이 있는 대중들의) 출연자를 두고 끝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이미 많은 논란을 통해 경험했듯이, 대중들의 관심이 증폭된 콘텐츠는 그 자체로 스토리를 제공해주지 못하면 거꾸로 대중들이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걸 알고 있다. 루머의 탄생이다. '나가수'가 만들어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대중들이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가수'에게 필요한 것은(적어도 캐스팅 논란이 계속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의 스토리다. 긴장하면서 방송사에 도착하는 가수들을 보여주고 중간 중간 긴장하는 모습을 인터뷰하고 경연 순서를 뽑고, 경연을 하고 무대를 내려가는 그 단순한 스토리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왜 거꾸로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처음부터 과정을 되짚는 스토리의 파격은 안되는가. 각각의 가수들이 일주일간 노래를 준비하며 겪는 이야기들은 왜 다채로워지지 못할까. 왜 가수와 매니저인 개그맨들 사이의 무대 바깥의 진솔한 대화가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못할까. 왜 공간은 꼭 스튜디오 안이어야만 할까. 청중평가단이 그토록 소중하다면 왜 청중의 이야기는 없을까.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무대를 통해 보여주겠다면 왜 그 장르에 걸 맞는 새로운 스토리는 구성하지 못할까. 질러대는 창법이 유리하다면, 왜 발라드 특집(모두가 발라드를 부르는) 같은 건 하지 못하는가. 특정일에 어울리는 이벤트는 왜 보이지 않는가.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라면 크리스마스에 어울리는 장르의 음악과 따뜻한 스토리로 얼마든지 이야기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나가수'가 오래도록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그 스토리를 무한정 끌어올 수 있는 열린 여지가 있어야 한다.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처럼, 가수의 존재증명에 관한 스토리라면 그것이 병원에서 벌어지는 경연이든, 산사에서 벌어지는 경연이든, 혹은 각각의 가수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적인 접근이든, 또는 청중에게 친절하게 노래 장르의 A to Z을 설명해주는 이야기든 뭐든 가능한 것이 아닌가. 물론 경연이 주는 힘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것이지만 거기에만 매몰될 필요는 없다. 이제 '나가수'는 그 좁고 굳어져가는 형식의 틀에서 과감히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불필요하고 소비적인 논란의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 그 자리에 좀 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이야기들이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