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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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경, '하이킥'의 시간을 멈추다

D.H.Jung 2012. 1. 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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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왜 신세경을 추억할까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사진출처:MBC)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좋겠어요." 신세경의 이 말이 주문이 되었던 것일까.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그 주문 같은 말을 남긴 채, 비극적인 엔딩으로 사라졌던 전작 '지붕 뚫고 하이킥'의 신세경을 부활시켰다. 너무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었을 게다. 시트콤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그 엔딩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대중들은 신세경의 해피엔딩을 바랐다는 얘기다. 왜? 신세경이니까.

캐릭터와 연기자가 제대로 만났다는 건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신세경은 다른 어떤 작품에서의 신세경보다 더 돋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것은 이 시트콤이 신세경이란 존재를 가장 먼저 알린 작품이라는 데도 그 원인이 있지만, 이 작품 속에서 신세경이 워낙 도드라진 존재였다는 데도 이유가 있다. 21세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식모라는 역할, 하지만 그 역할과 어딘지 반전을 이루는 '청순 글래머'라는 기묘한 판타지가 그녀에게는 있었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으로 되살아난 신세경을 보고 강승윤이 음악적 영감이 떠오른다며 다름 아닌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제가를 부르는 것은 이 작품 속에서의 신세경의 무게감을 보여준다. 식모로 더부살이를 하는 신세경은 만약 이 시트콤에 수직적인 계급이 있었다면 그 맨 바닥에 존재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계급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 스스로 내뿜는 매력을 통해 이 계급적 관계를 무너뜨렸다. 이지훈(최다니엘)과 정준혁(윤시윤) 사이에서의 신세경의 멜로는 그래서 이 시트콤의 주제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이었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보여주었던 신세경에게 닥친 비극적인 결말은 그래서 너무나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을 게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이 신세경의 새드 엔딩에 집착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시트콤 초반부에 이 새드 엔딩을 소재로 다뤄 눈길을 끈 적이 있다.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백진희가 '바닥 뚫고 로우킥'의 결말을 고민하는 PD에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준 것. 여기서 백진희가 말한 새드엔딩에 PD는 면박을 주었지만 나중에는 결국 자신의 말대로 시트콤 결말이 나간 걸 보게 된다. 이 소재는 김병욱 PD에게 '지붕 뚫고 하이킥'의 새드 엔딩 논란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던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신세경을 부활시켜 과거를 데자뷰하게 하면서 굳이 해피엔딩을 만들어낸다. 윤계상이 신세경을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세경은 마치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멈췄으면 좋겠어..."하고 말한다. 그리고 마치 교통사고가 나는 것처럼 편집된 장면을 내보낸 후, 다시 시트콤으로 되돌린다. "멀미가 멈췄으면 좋겠어."하고. 그녀는 결국 본인이 바라던 대로 아버지와 동생의 품으로 돌아가고 윤계상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보낸다. 모든 건 바라던 대로 해피엔딩이 되었다. 하지만 이 뒤에 남는 찜찜함은 뭘까.

과연 김병욱 PD는 신세경을 부활시켜 새드 엔딩의 부채감을 털어내려 한 것일까. 어쩌면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신세경이라는 자신의 시트콤이 탄생시킨 배우의 존재감을 이번 작품에도 적절히 활용하고픈 욕구가 더 컸을 것이다. 그렇게 대중들을 들끓게 했던 새드엔딩의 주인공이 다시 등장해 해피엔딩을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 테니까.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새드엔딩에서 해피엔딩으로 되돌려 보여주었지만 이 해피엔딩에 아무런 여운이 남지 않는다. 만일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신세경이 지금처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이토록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래서 다음편인 이번 작품에 또 얼굴을 내밀 수 있었을까. 혹시 극중의 비극이 신세경에게는 강한 인상을 남기는 기폭제가 됐던 건 아닐까. 김병욱 PD가 다시 부활시킨 신세경의 해피엔딩 뒤집기는 그래서 새드엔딩이 만들어낸 힘을 다시 실감하게 만든다. 신세경의 시간까지 멈추고 되돌리게 만들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