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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여진구와 김유정, 이건 아역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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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달', 아역만으로 25%, 성인역은?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세자빈으로 간택 받았으나 저주를 받아 원인 모를 병에 걸려버린 연우(김유정)는 결국 궁 밖으로 쫓겨나고, 그걸 바라보는 세자 이훤(여진구)은 오열한다. 간택되기 위한 수많은 궁궐 내의 암투와 그로 인해 사가로 내쫓겨지는 설정은 사극의 오래된 소재다. 하지만 이 닳고 닳은 소재가 이토록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어른이 아닌 아이이기 때문일 게다. 겉모습은 세자와 세자빈이지만, 그 껍질을 벗겨내면 결국 아이들일뿐인 그 어린 상처를 바라보게 만드는 절절함.

그런데 이 아역들이 보통내기들이 아니다. 연우를 연기하는 김유정의 눈빛은 어린 나이에도 연정에 설레는 여인의 태가 제법 느껴진다. 안정감 있는 목소리에서는 그 단정한 기품마저 전해지고, 그런 아이가 세자 이훤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는 때론 소녀 같다가도 때론 성숙한 여인 같은 인상마저 남긴다. 이훤을 연기하는 여진구는 어떤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 속에는 기품이 느껴지고, 때로는 결단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연우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진정 깊은 사랑이 드러난다. 둘이 만나는 장면에 미소 짓게 되고 둘이 헤어지는 장면에 똑같이 마음이 아픈 건 전적으로 이 아이들이지만 아이 같지 않은 연기의 소유자들 덕분이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김유정과 여진구의 놀라운 연기는 '해를 품은 달'이 그 첫 번째가 아니다. 이미 김유정은 '동이'에서 아역을 맡아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해낸 괴물(?) 아역이다. 또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는 구미호의 딸로 등장해 소름끼치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여진구는 '자이언트'의 어린 강모 역할을 맡아 부모 없이 길바닥에서 생존해가는 연기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긴 아역이다. 연기경력도 화려해서 '연개소문', '일지매', '태양을 삼켜라', '명가', '무사 백동수' 등 수많은 작품의 아역을 거쳤다. 무엇보다 아이 같지 않은 김유정의 눈물연기와 여진구의 강인한 인상은 이 두 연기자를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다.

'해를 품은 달'이 이제 겨우 5회를 끝내고 시청률 25%에 육박하게 된 가장 큰 일등공신들은 다름 아닌 이 아역들의 힘이다. 아이가 가진 특유의 순수함과 그 아이 같지 않은 연기력으로 깊어지는 사랑 연기는 이 청춘 멜로 사극 특유의 색채를 구축해 놓았다. 기존 사극들이 가진 무거운 어른들의 세계와는 차별되는, 아이들 특유의 환상적이고 맑으면서도 두려운 어둠에 대한 긴장감이 공존하는 세계. 이것이 초반 몇 회만에 시청자를 품은 이 사극의 비결이다.

아역들이 이런 발군의 연기로 초반 분위기를 장악해버리자 그 바통을 이어받을 성인역할의 연기자들에게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연우의 역할을 해야 할 한가인과 이훤의 역할을 연기할 김수현은 어쨌든 이 아역들과의 비교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한가인은 물론 절대 동안의 얼굴을 가졌지만, 그 연기를 통해 나이를 뛰어넘는 캐스팅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 아역이라면 그저 성인역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기 위한 짧은 방편으로 치부되었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역은 드라마의 초반 힘을 확실히 세워주고 이끄는 존재들이 되었다. 그렇게 된 것은 아역의 연기력이 점점 성인역을 압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일상으로 살아온 아이들의 카메라에 대한 친숙함과 일찍부터 트레이닝된 연기, 게다가 아이 특유의 몰입이 맞물리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여진구와 김유정은 바로 그 일상의 영상세대가 낳은 첫 번째 수혜자들인 셈이다.

이게 진정 아이의 연기란 말인가. 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들이 아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린 어른들은 그래서 당혹감을 넘어서 감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연 '해를 품은 달'은 이 아역들이 보여준 감동을 성인역으로 고스란히 연결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초반 이미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낸 이 사극이 가진 가장 큰 수확이자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