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품달' 성공이 중견작가들에게 시사하는 것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 시청률 37%를 넘어섰다. 이런 기세면 40%도 손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 때 사극이란 장르가 첫 회부터 20% 시청률로 시작해 통상 40%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던 걸 떠올려보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드라마들의 시청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해는 사극마저 20% 넘기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항간에는 대신 예능이 드라마의 권좌를 빼앗았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그러니 '해를 품은 달'이 첫 회에 18%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때 심지어 제작진마저 깜짝 놀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그저 한 작품의 성공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즉 이 작품은 똑같은 패턴을 반복함으로써 침체됐던 사극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이다. 이 과정에는 '역사로부터의 탈피'라는 과감한 선택이 있었다. 역사 바깥으로 나와, 완전한 허구가 된 사극은 그 장르적 특성이 가진 장점만을 취한 셈이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역사적 배경만 떼어놓고 보면 전형적인 청춘 멜로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그간 침체기를 겪은 멜로 장르가 사극이라는 틀을 접목시켜 부활한 작품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작년 한 해 우리의 주목을 끈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그 핵심에 바로 이 '참신한 시도'가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주의 남자'가 본래 역사를 재구성하여 팩션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글 창제라는 소재 속에서도 전혀 다른 장르적 재미를 덧붙인 팩션 사극의 새로운 실험을 완성했다고 평가된다. 작년 초 '현빈 앓이'를 만들었던 '시크릿 가든'은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를 덧붙여 멜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독고진 현상'을 만든 '최고의 사랑' 역시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보기 드물게 법의학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룬 '싸인', 의학드라마의 틀 안에서 심지어 컬트적인 시도를 보인 '브레인'도 그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반면 작년 두드러진 현상은 중견작가들의 저조한 성적이다. 김정수 작가가 쓴 '내일이 오면'은 10%대 초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문영남 작가의 '폼나게 살거야'도 시청률 10%를 못 넘기고 있다. 그나마 임성한 작가가 '신기생뎐'으로 24%의 시청률을 올렸지만, 이 작품은 시청률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졸작이었다. 유령에 빙의되고 심지어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쏘는 장면들은 이 작품을 막장 중의 막장으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억의 문제를 덧붙여 절절한 멜로를 만들어냈던 김수현 작가의 '천일의 약속'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지만 그 명성에 비해 저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중견작가들이 써내는 거의 비슷비슷한 도돌이표의 작품들에 대중들이 시선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것. 가족드라마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것은 바로 이 점에 기인한다. 중견작가들이 주로 써온 가족드라마들은 인물 구성만 달리했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굳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중견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거나 연구해서 나온 작품이라기보다는 그저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한 마인드 게임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도 대중들의 외면을 가져온 이유 중 하나다.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 '공주의 남자'의 조정주 작가, '무사 백동수'의 권순규 작가, '싸인'의 김은희 작가, '브레인'의 윤경아 작가 등등, 사실상 신진작가들이 작년 대거 주목을 받은 반면, 중견작가들의 성적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제 제작진들의 시선도 바꾸고 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드라마 업계에는 작가의 '세대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신진작가들에 비해 원고료는 터무니없이 비싸면서도 그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중견작가를 굳이 쓸 이유가 없다는 것. 게다가 시청률이 나온다 해도 매번 비슷한 패턴에 머물러 있는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시청률이 좋아도 이런 작품에 광고가 잘 붙을 리도 없다.
물론 이렇게 중견작가들의 몸값이 성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진 데는 방송사의 책임이 있다.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 참신한 신진작가들의 실험보다는, 안정적인(?) 중견작가를 너나 할 것 없이 모시다 보니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사실 극성이 높아 시청률은 잘 나오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는 떨어지기 마련인 막장드라마의 양산은, 바로 이런 몸값에 걸 맞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중견작가들의 안간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시청자들이 이런 작품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방송사 입장에서도 그런 작가를 기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같은 패턴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중견작가라고 해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작품은 쏟아져 나오고 드라마가 아니어도 점점 볼 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니 중견작가들은 이제 스스로도 연구하고 실험하는 작품을 고민해야 될 시기다. 중견작가로서 '뿌리 깊은 나무'를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그런 점에서 모든 중견작가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자기 스타일이 있고 글 잘 쓰는 중견작가라고 해도 이제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해를 품은 달'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 속에는 그 참신함에 대한 갈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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