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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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신사의 품격>, 그 판타지와 현실 사이

D.H.Jung 2012. 6. 1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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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의 품격>, 판타지는 달콤하지만...

 

신사되기 참 어려운 시대다. 그러니 품격을 갖추기는 더 어렵다. 하루하루 밥 벌어 먹기도 힘들어죽겠는데 신사? 품격? 아마도 많은 지금의 중년남자들에게 더 마음에 와 닿는 글귀는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일 것이다. 물론 이 글귀 역시 엄살이 너무 심하다는 느낌은 있다. 어쨌든 <신사의 품격>에 등장하는 잘 나가는 중년 4인방과 아마도 그 시간에 TV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남자들 사이에는 그만한 거리가 있다는 얘기다. 당연하다. 여기 등장하는 꽃중년 신사 4인방은 여성들의 판타지니까.

 

 

'신사의 품격'(사진출처:SBS)

잘 나가는 건축디자이너 도진(장동건), 그 건축사 사장 태산(김수로), 변호사 최윤(김민종), 그리고 카페 사장이자 한량 이정록(이종혁). 먼저 직업부터가 누군가에 간섭을 받지 않는 전문직들이다. 직원이 거래처 사장에게 맞았다고 무려 2억의 손해를 감수하며 계약서를 찢는 도진이나, 프로 골퍼인 여자 친구에게 좋지 않은 기사가 떴다고 그걸 볼까봐 휴대폰을 발로 밟아버리는 태산, 건물 하나가 아니라 한 거리를 통째로 갖고 있는 아내를 둔 덕에 2천5백만 원짜리 피트니스 클럽을 끊고 호시탐탐 다른 여자들에게 눈을 돌리는 정록까지 이들에게 현실의 그늘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이 사는 곳이 우리와 같은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이국적인 문화 속에서 산다. 수시로 모여 브런치를 하며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신다. 집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된장찌개를 먹는 그 흔한 장면 하나가 이 드라마에는 없다. 그들은 대신 레스토랑에서 친구들끼리 둘러 앉아 스테이크를 썬다. 이곳이 <섹스 앤 더 시티>의 뉴욕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아니 어쩌면 그 뉴욕의 라이프스타일을 따라하고 싶어 생겨난 거리와 상점들로만 이들의 발길이 머무는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현실의 냄새가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신사들에 대한 판타지가 생겨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들은 뭐하나 구질구질하게 굴지도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간다. 심지어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지독할 정도로 쿨하다. 당사자의 일이지만 마치 남 일을 대하듯 한다. 도진의 말투, 이른바 '걸로체'는 이 쿨한 이들의 대화를 잘 표징하는 어법이다. 속내를 직접 표현하지 않고 ' ∼걸로'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아닌 타인이 말하는 것처럼 객관화하는 방식이다. 여러모로 <신사의 품격>은 현실에서 좀체 찾기 힘든(찾아보면 또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멋진 중년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판타지가 녹아있다.

 

드라마가 꼭 현실을 대변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판타지를 그린다는 게 잘못된 일도 아니다. 다만 판타지를 그릴 때도 현실적인 접점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그저 공중에 붕붕 떠버린 우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그것이 <섹스 앤 더 시티>처럼 아예 뉴욕의 일이라 치부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신사의 품격>은 바로 여기 우리가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이 판타지적인 인물들을 바라보는 좀 더 현실적인 눈높이다. 대부분의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신데렐라가 바로 이 눈높이를 맞춰주는 역할을 한다.

 

많은 이들이 신데렐라 스토리를 주로 신분상승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더 중요한 점은 그 도달하기 어려운 판타지와 현실을 이어주는 고리로서의 신데렐라라는 존재다. 평범한 신데렐라가 있기 때문에 그녀가 바라보고 이뤄가는 판타지에 대중들이 몰입할 수 있고, 판타지적인 존재로만 있던 왕자님이 알고 보니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네 하는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시크릿 가든>에서 초재벌인 김주원(현빈)이라는 판타지를 현실적으로 만들어주고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시선으로 하루하루를 온몸을 던져 살아가는 길라임(하지원)이라는 신데렐라가 있었듯이.

 

<신사의 품격>은 그러나 초반 이 역할을 해야 할 서이수(김하늘)가 우리네 서민들의 눈높이를 보여주기보다는 저 판타지 속 남자들의 세계에 그냥 동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서이수가 좀 더 서민적이고 현실적인 눈높이를 보여줬다면, 이 드라마 속 왕자님 4인방이 그렇게 딴 나라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초반 <신사의 품격>이 비현실적이라 비판받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판타지의 주인공들이 다른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들도 잘 빠진 여자를 보면 여전히 눈길을 멈출 수 없고, 누군가의 수영복 사진을 몰래 훔쳐보기도 하며, 소녀시대 멤버들을 갖고 누가 더 낫다며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당구장을 살 수도 있는 재력의 소유자들이지만 게임비 얼마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이렇게 신사 4인방이 친절하게도 판타지적 세계를 벗어나 현실로 저벅저벅 걸어 내려오자 드라마는 비로소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게 된다.

 

<신사의 품격>이 최근에 와서 대중적인 지지를 다시 회복하고 있는 건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신사와 품격이라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실적인 중년남성들에게는 지극히 이질적인 단어들이 주는 괴리감은 여전하다. 여성들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판타지 속에서 이 땅의 어떤 남성들은 소외감 심지어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사실 사람의 품격이라는 것이 어디 재력과 외모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쩌면 내가 아닌 타인의 현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닌가. <신사의 품격>이 주는 판타지에 잠시 빠져 있다가도 불쑥 불쑥 드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