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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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콘', 왜 서수민PD는 칼을 들었나

D.H.Jung 2012. 6. 2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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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서수민 PD, 왜 위기감을 느꼈나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졌다. '애정남', '비상대책위원회', '감사합니다' 같은 인기 코너가 사라졌고, '감수성'과 '사마귀 유치원'도 폐지 논의에 들어갔다. 파업이 끝나고 복귀한 서수민 PD가 마치 벼르고 있었다는 듯이 칼을 뽑아들었고, 코너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물론 아직까지 새 코너들이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과감한 폐지 선언에 대한 찬반양론이 분분하다. 실제로 무리한 점이 없잖아 있다. 만일 서수민 PD가 파업으로 자리를 비우지 않고 있었다면, 코너들의 물갈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을 탔을 것이다. 잘 나가는 대표코너들이 있을 때, 새로운 코너들이 준비되고 그 중 몇 개가 두각을 나타내면 몇몇 반복되고 식상해지는 코너들을 폐지시키는 과정들을 서수민 PD는 물 흐르듯 진두지휘해 왔었다.

 

하지만 복귀해서 그간 변하지 않고 있던 <개콘>을 본 서수민 PD는 아마도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변화하지 않고 고여 있는 듯한 코너들, 긴장감 없는 분위기에서 사라져가는 헝그리 정신, 게다가 몇몇 개그맨들은 최근 들어 너무 잘 나가고 있지 않은가. 광고를 찍고 음원이 차트에 오르고 하는 건 물론 개그맨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자칫 그 본래 터전인 <개그콘서트>만의 긴장감이나 헝그리 정신을 희미하게 만들 수도 있는 일이다.

 

서수민 PD가 칼을 든 것은 아마도 개개 코너들에 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결과는 코너들이 재미없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거기에는 그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개그콘서트>라는 경쟁 시스템이 느슨해질 때, 코너들도 식상해지고 프로그램도 어려워지게 된다. 그것은 결국 개그맨들에게도 위기로 이어진다. 즉 당장의 편안함이 이 <개그콘서트>라는 시스템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서수민 PD의 칼날은 코너들을 살리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바로 경쟁 시스템 자체를 복원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보면 웃기기는 하지만 이미 반복적으로 굴러간다 싶은 코너들은 그래서 <개그콘서트>에는 그 자체로 독이 될 수 있다. '애정남'은 그 폐지 수순이 너무 늦었다 싶을 정도로 반복적이었다. 이 부분은 서수민 PD 역시 알고는 있었지만 시청자분들이 챙겨준 아이디어들을 그저 버릴 수가 없어서 존속시키고 있었다고 했다. '비상대책위원회'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역시 그 패턴이 너무 익숙해져버렸다. "안돼!"와 "고뤠!"의 반복인 셈이다. '불편한 진실' 역시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패턴 반복의 고리에 빠져 있다.

 

'사마귀 유치원'도 신선함이 사라져버렸지만, 그나마 그 안에서 일수꾼 최효종이 브로커로, 쌍칼 조지훈이 작두 아저씨로 캐릭터를 바꿔 변화를 주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 코너도 큰 틀은 그대로인 셈이다. '생활의 발견'은 아이디어적으로는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는 코너지만(지금껏 남녀 사이로만 국한된 아이디어에 머물러 왔다) 좀체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 게스트를 통해 넘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감수성'도 마찬가지다. 다만 '감수성'은 엔딩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복안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새 코너들은 어떨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직까지 빈 자리를 제대로 채워줄 핫한 코너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무섭지 아니한가'나 '아빠와 아들' 같은 코너는 너무 과거에 무수히 써먹었던 개그의 반복처럼 여겨지고, '호랭이 언니들'은 개그우먼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기획적인 안목은 좋지만 개그로서는 너무 약한 게 흠이다. '박부장'은 공감은 가지만 한방이 부족해보이고, '하극상'은 너무 말장난으로 가는 느낌이다.

 

그나마 주목되는 것은 '희극지왕 박성호'다. 박성호를 전면에 내세운 이 코너는 예상과 반전으로 웃음을 만든다. 이 개그는 박성호가 하는 개그를 평가하면서 그것이 개그로 이어지기 때문에 그 웃음의 틀이 탄탄하게 여겨진다. 즉 박성호가 웃기지 않으면 웃기지 않다는 걸 내세워서(그는 <개콘>의 최고참이다) 웃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박성호 특유의 언변이 돋보이는 개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코너마저 내린다고 한다. 그만큼 <개콘>의 분위기가 남다르다는 얘기다.

 

어쨌든 <개콘>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또 그래야 한다. 그래서 코너들보다도 먼저 경쟁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그 팽팽한 긴장감과 경쟁구도가 살아난다면 코너들은 자연적으로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역시 서수민 PD는 명장이다. 여전히 적지 않은 20%라는 시청률에 현혹되지 않고 문제를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변화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조만간 더 강력해진 <개콘>을 기대할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