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살아나는 '놀러와', 솔직함이 승부수 본문

옛글들/명랑TV

살아나는 '놀러와', 솔직함이 승부수

D.H.Jung 2012. 9. 19. 11:19
728x90

<놀러와>, 자폭 토크의 묘미

 

<놀러와>가 살아나고 있다. 아직 시청률 면에서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씩 상승한 시청률(5.4% agb닐슨)은 <힐링캠프>(6.9%)를 넘보고 있다. 물론 시청률은 언제든 또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건 <놀러와>가 개편 후 시도한 변화가 의미 있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도대체 <놀러와>는 어떤 변화를 주었던 것일까.

 

'놀러와'(사진출처:MBC)

그 변화가 극명히 보이는 건 <트루 맨 쇼>다. 유재석은 새로 마련한 <트루 맨 쇼>를 “요즘 <놀러와> 보시는 분들 많지 않다”는 말로 시작했다. <놀러와>가 가진 현재의 위치를 명확히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고 각오를 다진 후 <트루 맨 쇼>를 ‘국내 최초 리얼 위기 토크쇼’라고 명명했다. 웃음을 주기 위한 자폭 토크에 가깝지만, 그 안에는 절치부심한 유재석의 의지가 엿보인다.

 

사실 자신의 위치를 솔직하게 고백한다는 것은 쉬운 일만은 아니지만 이것을 밝힘으로서 얻을 수 있는 건 많다. 그 절실함 자체를 토크쇼의 새로운 화법으로 제시할 수 있고, 시청자들에게도 지지(현재는 낮지만 노력하겠다는 것)를 호소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실제로 <트루 맨 쇼>는 그 절실함을 내세워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솔직한 토크를 승부수로 띄우고 있다.

 

먼저 유재석의 변화가 눈에 띈다. 나경은 아나운서와 다시 태어나도 결혼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결혼은) 천천히 하겠다”고 말하는가 하면, 자신이 클럽을 좋아하고 자주 다녔던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고 당시 유행했던 춤을 추어 보이기도 한다. <놀러와>에서 줄곧 앉아서 게스트들에게 질문하고 이야기를 받아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트루 맨 쇼>에서 유재석은 MC라기보다는 자신 또한 출연자의 하나로서 솔직하게 이야기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권오중은 이 솔직한 토크쇼의 구심점이 된 느낌이다. 그는 어린 시절 쿵푸를 배웠던 사연을 얘기하며 "삼형제가 다 약골이다. 아버지가 술을 먹고 어머니를 임신시켰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고, 6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 전 차 안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주민 신고로 경찰서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심지어 치질로 병원에 가서 겪은 곤혹스러운 순간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털어놓으면서 동시에 권오중은 <놀러와>를 대놓고 비판하는 자폭 토크를 선보이기도 했다. 김원희와 유재석이 안경을 갖고 개그를 하려 하자 권오중은 “진부하다”며 이것이 ‘위기의 이유’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졸업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을 누구와 갔냐”고 묻는 유재석에게 “누구랑 갔겠어요. 친구랑 갔지”라며 “아직 대학교 졸업을 못해 잘 모르는 구나”라고 말해 유재석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솔직함을 무기로 권오중이 전방에서 거침없이 이야기를 털어내면 김응수는 그 이야기를 받아서 요리하는 편이다. 권오중이 결혼 전 아내와의 차안에서의 데이트 이야기에 “과연 껴안고만 있었을까” 의구심을 드러내는 MC들에게 김응수는 “그렇게 쉽게 경찰이 연행하지 않는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경찰도 3분은 현장을 지켜본다. 적어도 차가 들썩거리는 걸 보고, 눈으로 뭔가 확인한 것이 있어서 연행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박재범이 클럽이야기를 하다가 ‘부비부비’를 언급하자, “부비부비가 뭐야? 먹는 건가?”라고 말해 유재석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예능 늦둥이답게 기존 토크쇼의 문법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툭툭 던지는 김응수는 20대 후반에 돈이 없어 조카 저금통을 털은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고, 술을 얻어먹기 위해 선배들 앞에서 추었다는 진진바리 애교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유재석과 권오중, 김응수의 조합에 엉뚱한 면모를 보이는 박재범, 그리고 여성이지만 남성 캐릭터 콘셉트로 남성들에게 조언을 던지는 김원희까지. <트루 맨 쇼>는 확실히 과거의 <놀러와>와는 차별화를 이룬 느낌이다.

 

<힐링캠프>가 구사하는 깊이 있는 토크는 또한 단점도 갖고 있다. 그것은 게스트에 따라서 대중들의 관심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진짜 관심 있는 게스트(주로 비연예인이다)라면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지만, 늘상 보던 연예인이 자신의 연예생활 이야기의 고충을 늘어놓는다면 그다지 관심이 가지 않게 된다. 이것이 최근 몇 회의 연예인 게스트를 불렀던 <힐링캠프>가 시청률에서 추락한 이유다.

 

어쨌든 <힐링캠프>가 게스트들의 깊이 있는 이야기로 차별화를 이뤘다면, 개편된 <놀러와>는 깊이는 아니라도 MC들의 거침없고 솔직한 이야기로 변별력을 만들고 있다. <힐링캠프>가 힐링이라는 부드러움과 함께 어쩔 수 없이 게스트에게 강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공격성을 드러낸다면, <놀러와>는 그 공격적인 토크를 스스로에게 던지는 식이다. 자신들의 처지를 솔직히 밝히고 그 절실함을 무기 삼아 자신의 치부까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자폭 토크’는 그래서 <힐링캠프>와는 다른 토크의 묘미를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