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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영화는 더 별로. 말이 별로 없잖아요. 요즘 멜로 영화는 음악만 나오고. 사실 멜로영화에서 내가 진짜 보고 싶은 건 남자가 여자를 볼 때 어떤 눈빛인가. 여자가 남자를 볼 때 또 어떤 눈빛인가. 둘이 어디서 만나고 무슨 옷을 입고 뭘 먹나 그런 건데 보다시피 난 눈이.." <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이하 그 겨울) > 의 오영(송혜교)의 이 대사 속에는 이 특별한 멜로가 여타의 멜로와 달리 어떻게 더 절절한 감정을 보여줄 수 있는가에 대한 비밀이 담겨져 있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사진출처:SBS)
실제로 음악만 나오고 말이 별로 없는 그런 멜로는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오영이 얘기하는 것처럼 멜로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오고 가는 눈빛과 그 속에 담겨진 감정일 것이니. < 그 겨울 > 이 이 감정을 더 정밀하고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은 그 클로즈업의 미학에 있다. < 그 겨울 > 의 카메라는 배우에 1센티 더 근접함으로써 그 얼굴의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하는 작은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
그 가까이 다가간 카메라는 송혜교의 앙다문 입을 통해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절망감을 애써 누르는 오영의 감정을 포착하고, 조인성의 흔들리는 눈빛을 통해 오영이라는 여자에게 자꾸만 마음을 쓰게 되는 오수(조인성)의 진심을 담아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오영과 그녀를 바라보는 오수 사이에 놓여진 미묘한 마음의 간극을 < 그 겨울 > 의 카메라는 좀 더 근접한 영상으로 잡아낸다.
이 가족처럼 굴면서 사실은 오영에게 다른 목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의 속내는 그래서 말이 아니라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 그 겨울 > 의 카메라가 인물들이 어떤 대사를 던질 때 그 대사의 내용보다 그 표정에 더 집중하는 건 이처럼 그 속내가 가진 끔찍함이나 혹은 절절함을 보다 강렬하게 전하기 위함이다. 이 클로즈 샷 속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오영 앞에 서 있는 이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또 그들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들의 진심을 알아채는 외로운 오영의 마음이 포착된다.
그래서 이렇게 굳은 표정으로 마치 '난 외롭지 않아'하고 외치듯 버티던 오영이 오수 앞에서 무너져 내리며 "내가 널 믿어도 된다고 해줘."라고 말할 때 그 외로운 감정은 더 극적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믿어'도 아니고, '믿어도 돼?'라고 묻는 것도 아닌 '믿어도 된다고 해달라'는 요청 속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도 믿고 싶은 오영의 절박함이 담겨있다. "난 내 옆에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어. 제발 오빠 너만은 내가 믿어도 된다고..."
그런 오영 앞에서 오수도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돈을 위해 오빠라고 속이고 접근했지만 그녀의 절망을 들여다보고는 오빠가 아닌 남자로서 자꾸 마음이 끌리는 것. 오영의 손을 잡는 떨리는 오수의 손과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는 그의 손, 또 저도 모르게 키스할 듯 다가가는 그의 입술은 그의 흔들리는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생 참 별거 아니라고 그저 살아지는 거니 사는 거라는 내가 한 모든 말들은 어쩌면 모두 거짓말이었나.' 오수는 자신에게 그렇게 되묻게 된다.
< 그 겨울 > 의 송혜교와 조인성이 만들어가는 멜로가 더 강렬한 것은 시각장애인 오영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상황이 멜로와 범죄(사기 혹은 거짓) 사이에 걸쳐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멜로의 감정을 극적으로 잡아내는 클로즈업의 미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하게도 이들 연기자들의 놀랄 만큼 섬세해진 연기력이 그 클로즈업의 압박을 이겨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송혜교와 조인성의 얼굴 표정 하나, 손 동작 하나에도 그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그 겨울 > 이 만들어내는 극성은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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