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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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멜로에 머물 수밖에 없는 '기황후'의 한계

D.H.Jung 2014. 1. 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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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황후>의 근본적 한계를 만든 역사의 문제

 

MBC 월화 사극 <기황후>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어떨까. 최근 중국의 한국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마치 한때 우리나라에서 불던 미드에 대한 관심만큼 뜨겁다. <상속자들>이 방영된 후 중국에서 이민호 열풍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이처럼 우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지만 필자가 현지에서 만난 방송관계자들에 의하면 <기황후>에 대해서만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라고 한다.

 

'기황후(사진출처:MBC)'

이것은 결국 역사적 인물인 기황후가 가진 민감함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오랑캐로 여기던 몽골의 칭기즈칸이 세운 원나라에 대한 미묘한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니 고려에서 넘어와 37년간 황후로서 원나라를 쥐고 흔든 기황후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의적일 수가 없다는 것. <기황후>는 역사적 인물로서는 우리에게도 중국측에서도 반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의 <기황후>라는 사극의 이야기 전개나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는 점도 우리의 반응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역사의식 부재를 지적하는 비판 속에서도 <기황후>의 시청률은 손쉽게 20%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만큼 역사 논란을 잠재울 만큼 이야기 전개는 긴박하게 꾸려졌고 특히 멜로에서 액션까지 북 치고 장구 치는 하지원의 매력은 이 사극에 힘을 부여했다.

 

중국 측에서 <기황후>를 심각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멜로 사극으로 치부하는 시각 역시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것은 <기황후>라는 제목이 부여되는 순간부터 이 문제의 역사적 인물이 이 사극의 발목을 잡은 결과다. 결국 <기황후>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궁중 권력 암투이거나 기승냥(하지원)과 왕유(주진모) 그리고 타환(지창욱)의 삼각 멜로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기승냥의 성장담에 집중하게 되면 이야기는 자칫 기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찬양으로 흘러가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 최근 <기황후>의 이야기 속에서 기승냥이 초반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캐릭터에서 왕유와 타환 사이에서 휘둘리는 멜로의 대상으로 점점 변화해가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 기승냥은 남장을 벗어버린 후부터 여성으로 대상화되어가고 있다.

 

우연의 일인지 모르겠지만 기승냥의 캐릭터가 여성화되고 이야기가 삼각 사각 멜로를 반복하면서 시청률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11%부터 시작해 13회 만에 20%를 넘긴 시청률은 지금 현재 17%대까지 다시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기황후>의 초반 이야기가 고려에서 중국 대륙으로까지 이동하는 다이내믹함을 보여줬지만(여기에 기승냥의 변신담까지 더해졌다) 지금은 중국 황궁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기황후>의 기획단계에서 역사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제작진들은 우린 멜로에 집중할 것이라며 우려를 털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 사극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점점 소소해져버리는 근본적인 장애가 아니었을까. 사극이 한 인물의 감동적인 성장드라마를 담아내지 못하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과감한 해석을 시도하지 못한 채 궁중에서의 멜로에 머물러 있게 된 것. 이것은 어쩌면 상상력의 과신에 대한 역사의 반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