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동화와 스릴러의 흥미진진한 대결
독특하다. 아마도 <몬스터>라는 영화가 주는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물론 아직 거칠지만 그 파격적인 면모는 마치 박찬욱 감독을 떠올리게 하고 단단한 장르 해석 능력은 봉준호 감독을 생각나게 한다. 확실히 <시실리 2km>, <도마뱀>의 시나리오를 쓰고 <오싹한 연애>로 메가폰을 잡았던 황인호 감독은 분명한 자기만의 색깔을 이번 작품 <몬스터>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장르물에 대한 이해가 있는 관객이라면 이 놀라운 이종장르물의 경험에 환호할 것이다.
'몬스터(사진출처:상상필름)'
어떻게 피가 철철 흐르는 스릴러 속에서 동화 같은 이야기가 가능할까. 어떻게 연쇄살인범이 다가오는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서 폭소가 터지는 게 가능할까. 긴장과 이완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두 축이 분명하지만 이를 동시에 병치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유치한 B급 장르에서 종종 시도되곤 하지만 흔히 평가되듯 B급 정서를 가진 황인호 감독의 작품이 그렇다고 B급은 아니다.
그래서 <몬스터>는 장르 파괴물이면서 결코 B급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장르의 재창조물 같은 느낌을 준다. ‘살인마 vs 미친 여자’라고 적힌 포스터 문구는 이 두 이질적인 장르와 감성의 대결을 보여주는 <몬스터>를 가장 잘 표현하는 면이 있다. 사람 죽이는 일을 마치 손톱에 낀 때 빼듯이 저지르는 살인마 태수(이민기). 그리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물려주신 노점상 자리를 제 것이라 여기며 동생 하나만을 바라보는 조금 모자란 미친 여자 복순(김고은). 살인마 태수가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복순은 동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마치 스릴러와 동화가 병치된 독특한 느낌을 전한다. 앞부분에 일찌감치 복순의 할머니 회상 장면에서 보여준 마치 텔레토비 동산의 햇님을 보는 듯한 할머니의 모습은 복순이 살아가는 동화적 세계를 압축한다. 반면 산 속에 위치한 공포 영화의 한 장면에 나올 듯한 외딴 가마터에서 살해한 이들을 구워 도자기를 빚어내는 공간은 태수가 살아가는 스릴러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어느 날 이 이질적인 두 세계는 한 꼬마의 틈입으로 이어진다.
스릴러와 동화의 연결고리는 실로 절묘하다. 꼬마를 산으로 데려간 살인마가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마녀 같은 느낌을 주고, 그 살인마로부터 도망친 꼬마가 복순과 함께 싸우는 이야기 역시 동화 같은 뉘앙스가 묻어난다. 꼬마와 복순이 살인마의 집을 찾아 산으로 오르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모험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난 동화 속 아이들의 모습처럼 연출된다.
하지만 이러한 복순과 꼬마가 만들어내는 동화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종일관 스릴러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복순이 아이의 지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 대결구도가 마치 살인마로 대변되는 어른들의 세계와 아이들의 세계의 대결처럼 여겨지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동화 속에 머물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느슨한 듯 풀어지다가도 순식간에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그 다이내믹한 힘은 아마도 여러 장르를 섭렵하면서 갖게 된 황인호 감독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시실리 2km>에서도 코미디와 스릴러를 엮어냈고, <도마뱀>에서는 UFO라는 소재에 멜로를 엮어냈으며, <오싹한 연애>에서는 공포와 멜로를 공존시켰다. 이질적인 장르의 결합을 꽤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그 능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색다른 장르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김고은이라는 배우의 재발견이다. 영화 <은교>로 널리 알려진 김고은은 배우의 첫 단추로는 꽤 파격적인 연기를 보여준 인물이다. 본인 스스로도 말했듯이 “이목구비가 흐리멍덩한” 건 어쩌면 배우로서는 오히려 장점이다. 마치 빈 도화지 같은 인상이랄까. 그래서 그녀는 별다른 선입견 없이 새로운 배역에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
복순이라는 이름에서 얼핏 느껴지는 것처럼(이건 마치 복수와 순이를 붙인 것 같다) 이 인물은 때로는 미친 여자 같은 광기를 뿜어내면서도 때로는 아이 같은 면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한 면만을 보고 있는 아이의 또 다른 속성일 수 있다. 아이란 순수함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사회에 있어서는 미성숙을 의미하기도 하지 않는가.
실로 이 이중적인 캐릭터를 소화하는 데 있어 김고은 만한 배우도 없었을 것이다. 바보 연기에서 살인마와 대적하는 광기를 끄집어내는 모습은 앞으로 이 배우의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뚜렷한 한 가지의 이미지가 아니라 다양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는 걸 그녀는 확실하게 <몬스터>를 통해 각인시켜주었다.
늘 로맨틱한 분위기의 역할에서 살인마로 변신한 이민기나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김뢰하, 김부선의 연기 또한 압권이다. 특히 마치 <넘버3>의 송강호를 보는 듯한 짧지만 굵게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 배성우, 남경읍 같은 배우들을 보는 것 역시 <몬스터>를 즐겁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다. 스릴러와 동화를 병치시킨 <몬스터>라는 괴물은 그래서 그 둘을 한 몸으로 소화해낸 김고은 같은 괴물배우와 이 장르를 재창조시킨 황인호라는 괴물감독을 탄생시켰다. 조그은 낯설 수 있는 이 영화 여행이 실로 즐거울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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