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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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딸 가진 아빠라면 누구나

D.H.Jung 2014. 4. 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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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끓는 아빠의 분노를 어찌 공감하지 않을까

 

늘 미안한 딸이었다. 엄마를 암으로 먼저 보내고 나서도 잘 챙겨주지 못했다. 일 때문에 그 흔한 스키장도 한 번 놀러가지 못했다. 그런 딸이 어느 날 싸늘한 시신으로 그것도 심각한 성폭행의 흔적이 있는 몸으로 돌아왔다. 이걸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사진출처:영화 <방황하는 칼날>

<방황하는 칼날>이 던지는 화두는 이토록 섬뜩하고 아득하다. 시신을 확인하러 간 아빠가 문 앞에서 버럭 화를 내며 내가 왜 여길 가야되는데하고 소리칠 때부터 관객의 마음은 이 아빠의 고통을 실감한다. 텅 빈 눈. 떨리는 손. 그리고 오열.

 

오로지 딸의 죽음에 너무나 미안해서,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모두가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만 같아 아빠는 복수의 칼날을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린다. 이렇게 아빠의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는 처절한 복수극에는 그래서 액션 같은 화려함이 있을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마치 고행 같다. 눈 밭 위의 아빠가 온 몸이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은 채 누워 있는 첫 장면은 이 영화가 심지어 삶이 지옥인 아빠의 구원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아이들은 한 없이 잔인하고 영악해진다. 하지만 법은 그들은 쉽게 놓아버린다. 하지만 딸을 잃은 아빠는 그렇게 쉽게 모든 걸 놓을 수가 없다.

 

눈이 계속 내리는 강원도의 산길을 오로지 딸을 죽인 범인을 찾아 다리를 절어가며 오르는 아빠의 모습은 그 집념 속에 딸을 잃은 고통 또한 고스란히 담아낸다. 얼마나 안타깝고 얼마나 미안하며 얼마나 자신이 미웠으면 그렇게 온전히 몸 하나를 던져버리겠는가. 아빠가 포기해버린 듯한 자신의 몸은 그래서 점점 사체로 돌아온 훼손된 딸을 닮아간다. 아빠는 사실 그렇게 해서라도 조금씩 딸 곁으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법정 싸움으로까지 가게 된 논란이 된 청솔학원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요한 장면이다. 아이들은 어쩌다 이렇게 잔인하게 되었을까. 게임 한 팩을 사기 위해서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아이들. 그 밑바탕에는 썩어 버린 사회의 교육문제가 깔려 있다. 학원이 가출 청소년들의 성매매 현장으로 돌변한 상황은 이 교육문제를 고스란히 표징하는 장면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명한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지만 정재영과 이성민의 미친 연기는 이를 충분히 한국적인 느낌으로 바꾸어 준다. 박진감 넘치는 전개 따위는 사실 기대할 수 없고 기대해서도 안되는 작품이다. 그것보다는 이 아빠의 미칠 듯한 절절함을 그저 느끼는 것이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그래서 딸 가진 아빠라면 이 극단적인 선택과 상황에 내몰린 아빠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수간을 맞이하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놀라움이다. 피해자였지만 살인자가 된 아빠. 그 아빠의 손에 쥐어진 칼날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 속에는 그래서 수많은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이 아빠에 공감한다면, 그 뒤에 놓여진 우리 사회와 교육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살아남은 아빠들이 이 땅의 자식들에게 해줘야할 진짜 중요한 일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