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진, 전설의 귀환을 가로막는 것들
“주병진씨는 제게 롤 모델이자 우상입니다.” SNL코리아에 호스트로 출연한 주병진에게 신동엽이 이런 말을 던졌다. “정말 모시기 어려웠는데 영광입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이 원조가 사실 주병진씨입니다.” 피플 업데이트 코너에서 유희열 역시 주병진을 상찬하기 바빴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병진이다. 대선배인데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버라이어티쇼로 우리에게는 전설로 남아 있는 인물이 아닌가.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주병진은 몸 개그와 바보 캐릭터가 코미디의 주종이던 시절, 토크 버라이어티쇼라는 새로운 장을 연 장본인이다. ‘코미디계의 신사’라는 별칭에 걸맞게 게스트에게 매너 있는 모습과 때로는 그 매너를 살짝 벗어나거나 뒤트는 것으로 웃음을 만드는 게 그의 최대 강점이다. 신사라는 캐릭터의 이면을 슬쩍 보여줌으로써 반전 웃음을 주는 것.
몰래카메라를 탄생시키고, 이경규, 노사연, 김흥국 같은 인물들을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속옷 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연예인 중에서는 보기 드문 성취를 이룬 그가 후배들의 우상으로 받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신동엽의 이야기는 단지 수사가 아니라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전설 주병진이 현역 주병진이 되는 것은 다른 얘기다. 거기에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난관들이 있다. 먼저 그가 떠나 있던 사이 개그의 스타일이 상당히 많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코미디란 대본이 있고 그 대본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 하는 연기력이 중요했다. 주병진이 펄펄 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다른 표현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대에 연기력은 자칫 너무 인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물론 <개그콘서트> 같은 콩트 코미디에서는 연기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연기력보다는 자연스러움이 더 중요하다. 피플 업데이트에서 주병진의 빅 데이터 분석 한 켠에 들어 있던 ‘올드하다’라는 말은 새겨볼만한 단어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의 스타일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물론 그의 캐릭터가 확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점은 지금의 예능판에서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SNL 코리아>는 이 부분을 뒤집어 오히려 웃음 코드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배워봅시다’라는 코너에서 힙합을 하는 박재범에게 ‘예의가 없다’며 ‘예의 바른’ 힙합을 강요하는 장면이 그렇다.
주병진 매니저편으로 꾸려진 ‘아직도 극한직업’ 코너 역시 8,90대 할머니 할아버지 팬들이 모인 행사장 분위기로 그의 ‘올드하다’는 대중들의 생각을 웃음으로 바꿔놓았다. 또 ‘앙대요-’로 웃기는 매니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수준 낮은 농담을 거기서 할 수 있냐”며 ‘숭구리당당’을 선보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옛날 스타일의 개그가 지금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웃음 코드로 바꾼 것.
사실 전설이 현역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예능처럼 웃음을 주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주병진을 전설로 상찬하는 신동엽과 유희열은 당연하지만 그러한 상찬은 또한 현역이 되려는 주병진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후배들의 전설로 계속 남아서는 현재를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설은 한 때의 추억처럼 잠시 소비될 수 있을 뿐이다.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안 오려고 그랬는데 어디 먼 길 떠나거나 여행을 가면 많이 힘들 때 너무 힘들어 집에서 쉬어야겠어. 집에 가고 싶어 이런 말씀들 많이 하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런 느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주병진은 마치 습관처럼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또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주병진의 현실 인식이 들어 있다. 바로 여기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전설이 성공적으로 현역 복귀하려면 일단 전설의 무거운 옷을 벗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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