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쩐의 전쟁’, 돈의 얼굴 보는 재미 본문

옛글들/명랑TV

‘쩐의 전쟁’, 돈의 얼굴 보는 재미

D.H.Jung 2007. 6. 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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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시쳇말로 ‘돈에 웃고 돈에 운다’는 표현은 뒤집어 말하면 같은 돈이라도 그 얼굴(?)은 제각각이란 말이 된다. 돈에는 얼굴이 있다. 착한 얼굴, 나쁜 얼굴, 더러운 얼굴, 땀에 젖은 얼굴,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이 갖는 애증의 얼굴까지. SBS 수목드라마, ‘쩐의 전쟁’은 바로 그 돈의 다중적인 얼굴 보는 재미가 쏠쏠한 드라마다.

돈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의 금나라
사채업자란 직업의 설정은 돈이 가진 더러움과 숭배 사이의 간극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금나라(박신양)는 돈, 특히 사채를 철천지원수로 여기는 사람이다. 사채 빚 때문에 부모도 잃고 사랑하는 사람도 버렸지만 여전히 사채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그에게 돈은 똥보다도 더 더러운 존재다. 하지만 그는 “돈 많이 벌어 돈 땜에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사채업에 뛰어든다. 여기서 돈의 얼굴은 바뀐다. 돈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숭고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이 아이러니하다. 그의 아버지를 자살로 이끌었던, 그래서 돈을 똥보다 더럽게 생각하게 했던 그 집요한 빚 독촉을 하러 다닌다. 드라마는 기술적으로 금나라가 돈을 받으려는 채무자들을 도박중독자, 조폭, 명품중독자 등으로 그린다. 이를 통해 금나라의 빚 독촉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주인공의 딜레마를 의도적으로 가려버리기 위함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아이러니 가득한 금나라란 인물에 별 저항감 없이 감정이입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돈에 쪼들렸던 기억 한번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일 그런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는 재미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청률이 폭발적인 걸 보면 지금은 역시 돈이란 얼굴에 태연할 수는 없는 시대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니 드라마 초반부에 금나라가 가졌던 그 추락에 누구든 쉽게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닥에서 쓰레기를 주워먹으며 가지는 감정은 저 금나라가 그런 것처럼 복수심이다. 돈 나도 한번 벌어보겠다는 강력한 욕망이다.

하지만 이 욕망은 금기와 동의어다. 자신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바로 그 (타인의)욕망이기 때문. 그래서 그는 명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돈 벌어 돈 땜에 어려운 사람 돕고 산다’는 것이다. 신문 사회면에 ‘평생 벌은 몇 억 원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미담이 그런 명분을 가당한 것으로 여기게 하지만 여기엔 조건이 있다. ‘평생 벌은 몇 억 원’의 얼굴이 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금나라가 하는 사채업으로 돈을 벌어 어려운 사람 돕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드라마가 표현한대로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시청자들은 기꺼이 금나라의 명분을 받아들인다. 현실에선 어려운 일, 드라마에서라도 주인공에 감정이입되어 신나게 돈을 벌어보겠다는데 뭐가 문제일까. 드라마 초기에 사채업이 보여주는 돈의 무서움은, 금나라가 사채업자가 되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하면서 벌면 벌수록 즐거운 대상이 된다. 이제 돈에 대한 시청자의 감정은 교차된다. 금나라의 여동생 은지(이영은)의 포장마차를 때려부수는 사채업자들을 보면서 더러운 돈에 혀를 차다가, 금나라가 불량채무자들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벌이는 기상천외한 장면들에서는 재미와 욕망의 대상이 된다.

쩐의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이 드라마의 돈에 대한 집요함은 멜로조차 채권과 채무의 관계로 풀어낸다. 서주희(박진희)는 금나라의 담보(?)로 둘 관계는 외견상 채무자와 채권자로 설정된다. 그런 낌새를 차린 금나라의 옛 애인, 이차연(김정화)은 서주희를 불러서 그 돈 대신 갚아줄테니 그 관계를 청산하라고 말한다. 그 말을 전해들은 금나라는 이차연을 찾아와 함부로 서주희를 대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 순간, 이차연은 각서를 끄집어낸다. 그 각서는 ‘다시는 이차연을 만나지 않겠다’는 전제로 금나라가 돈을 빌렸을 때 쓴 것. 이차연은 금나라에게 돈을 갚고 이 각서 가져가라고 한다. 이차연이 채권자고 금나라는 채무자가 되는 순간이다.

이런 멜로의 관계를 돈으로 풀어내는 이면에는 ‘돈이면 사랑까지 가능한’ 세태를 꼬집는 풍자가 들어있다. 실제 드라마 속 상황은 표현만 채권 채무로 했을 뿐, 사랑하는 마음을 전한 것이지만 이런 얘기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 돈에 대한 풍자적인 접근방식 때문이다. 이차연에게 하우성(신동욱)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 대신 망가뜨릴 수도 있다”고 말했을 때, 이차연이 “나한테 데려올 수 있냐?”고 말하는 부분에서 이 드라마의 멜로는 정확히 이 이야기가 하려는 돈의 이중성과 맞닿는다. 하우성이 말한 건 ‘돈이면 다 되는 세태’이고 이차연은 ‘돈으로 얻을 수 없는 사람 마음’을 말한 것이다.

돈에 대한 ‘쩐의 전쟁’의 메시지는 대부분 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는 독고철(신구)이란 전설적인 사채업자에게서 나온다. “이제 그만 마동포 밑에서 나와 독립하라”면서 툭 던지는 말, “욕하면서 닮아간다”는 말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핵심에 근접한다. 자신은 다를 거라 명분 세우며 뛰어든 진흙탕 속에서 결국은 누가 누군지 모르게 되어버리는 것은 그 진흙탕의 원료가 돈이라는 다중적 얼굴을 가진 놈이기 때문이다. 결국 금나라의 아버지가 죽은 것도 “돈 때문이지 마동포 때문이 아니다”라는 그의 말은 돈 세상에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에게 돈의 실체를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사채업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돈에 대한 이야기의 극단을 만들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샐러리맨식으로 말하면 돈 벌기 위해서 간도 쓸개도 집에 놔두고 직장이란 전쟁터로 나가는 건 돈 벌어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지만, 차츰 돈에만 끌려 다니다가 행복을 내팽개치게 되는 식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는 사회라는 틀 속에서 누구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의 ‘쩐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매일 우리는 돈이란 다중적 얼굴을 가진 괴물과 싸우러 저 쩐의 전쟁 속으로 뛰어든다. 그런데 괴물과 싸울 때 가장 조심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