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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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왕사신기’, 드라마왕국 무너뜨릴라

D.H.Jung 2007. 6. 8.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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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의 덫에 걸린 MBC

450억 규모의 블록버스터 퓨전 사극, 한류스타의 별 중의 별, 배용준 출연, 한일 동시 방영 가능성 등등 ‘태왕사신기’라는 불가사리는 태생부터가 달랐다. 그리고 여기에 각종 소문이란 쇠를 먹고 점점 몸을 불려왔다. 몸이 커질수록 관심과 기대도 커졌다. 그런데 거대한 몸체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일까.

‘태왕사신기’가 또 방송일을 연기했다. 이번으로 무려 4번째. 이에 대한 각종 의혹과 추측은 점점 더 이 불가사리의 몸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제작사와 방송사의 기존 관계 구조에서 볼 때 이것은 너무나 예외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외주제작사의 몸피가 커졌다고 하지만 방송사가 질질 끌려 다닐 정도였을까.

시청자들의 기대를 잔뜩 갖게 만들고서 계속 연기를 거듭하는 제작사와 그것을 이례적으로 용인하면서 대체 드라마를 찾는데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서 MBC노조가 표현한 ‘대국민 사기극’이란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태왕사신기’는 지금까지 전혀 보지 못했던 거대한 몸집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그 파장은 일파만파일 수밖에 없다. 일차적인 피해자인 MBC는 그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일주일 내내 MBC는 내세울만한 이렇다할 드라마가 실종된 상황이다. 먼저 월화의 상황을 보면 ‘태왕사신기’의 급작스런 연기로 인해 급히 8부작 드라마로 편성된 ‘신현모양처’는 시청률을 기대하기보단 시간을 버텨주는 형국이 강하다. 그나마 더 연장되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뒤에 와서 얘기지만 지금 방영되며 인기를 끌고 있는 ‘쩐의 전쟁’이 애초 MBC에 제안되었다 ‘태왕사신기’와 겹쳐 SBS로 가게됐다는 점에서, 수목 드라마의 어려움도 이 거인 드라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말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에어시티’는 60억이 투여된 블록버스터 드라마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지만 시청률은 10% 내외를 오가는 저조한 상황이다.

한때 ‘주몽’이란 대작 드라마로 드라마왕국이란 칭호가 어울렸던 MBC는 왜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일까. 그 해답도 바로 ‘주몽’이란 대작 드라마에 있는 것 같다. ‘주몽’은 시청률로서 월화의 밤을 거의 방영기간 내내 독식해왔다. 그 파급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주몽’의 앞뒤에 방영되는 ‘뉴스데스크’와 ‘개그야’의 시청률이 동반상승 되었음은 물론이고 MBC 방송사 전체의 이미지도 높아졌다. 한류와 맞물려 킬러콘텐츠로서의 대박 드라마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아진 상황에 ‘주몽’은 ‘역시 돈 들이면 된다’는 선례를 남겼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돈 들이면 드라마가 될까. 이것은 블록버스터의 환상이다. ‘주몽’은 돈 들여서 된 드라마가 아니다. 퓨전사극만이 가질 수 있는 아기자기한 스토리들로 엮어내는 역사적 영웅의 환타지가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이다. 최근 대형화되는 드라마의 한 편에서 스토리는 부재하고 몸집만 커지는 드라마가 결국 전체 드라마 시장을 가라앉힐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태왕사신기’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전혀 알 수 없기에 거기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최근 대작 드라마들의 양상을 보면 블록버스터가 흔히 빠지는 함정, 즉 볼거린 있어도 스토리는 없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분명한 건 시청자들은 볼거리보다는 스토리에 더 열광한다는 점이다. ‘태왕사신기’가 그런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규모로 밀어붙이기보다는 참신한 연출과 다양한 소재발굴, 작가군의 양성 등으로 드라마의 완성도에 투자하는 가장 기본적인 제작시스템이 하루빨리 정착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