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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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드라마 곱씹기

'은동아', 이제 그 이름만 들어도 아프다

D.H.Jung 2015. 6. 29.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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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쥐나는 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

 

무모한 시도처럼 보인다. 이 시대에 순애보를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시청률이 2%를 넘지 못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어떤 아쉬움과 씁쓸함이 남겨진다. 이 시대는 이제 이런 사랑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걸까. 그저 즉물적이고 직설적이며 감각적인 사랑의 시대. JTBC <사랑하는 은동아>가 주는 아련함과 그리움은 도무지 공감되기 힘든 걸까.

 


'사랑하는 은동아(사진출처:JTBC)'

제목이 벌써 <사랑하는 은동아>. 세련되지도 않고 어찌 보면 너무 구시대적인 느낌마저 주는 제목. 그래서 선뜻 들여다보지 않았던 시청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한 번 보고 빠져들게 되면 이만큼 늪처럼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드라마도 없다. 마치 과거 우리네 가슴을 먹먹하고 훈훈하게 했던 옛 사랑이야기에 대한 기억들이 방울방울 피어나는 것만 같은 느낌. 일드 <러브레터>를 보며 느꼈던 기억 같기도 하고, 윤석호 PD의 계절 드라마가 주던 기억의 숨은그림찾기를 보는 듯한 기억 같기도 한 그런 느낌.

 

이야기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나게 된 은동이를 한 남자가 잊지 못하고 20여년 넘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야기. 몇 차례 만나서 사랑이 깊어갈 즈음, 갑작스런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은동이(김사랑)와 운명처럼 다시 만난 지은호(주진모)가 그 옛 사랑의 기억을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촘촘히 들어가 있는 장치들은 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이야기에 촉촉한 감성의 비를 내려준다. 자서전이라는 장치는 마치 <러브레터>의 연애편지처럼 시청자들의 가슴에 쥐가 나게 만든다. 은동이 자신이 은동인 줄 모른 채 지은호에게 들은 은동이와의 사랑 이야기를 적어나간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설렘과 먹먹함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옛 사랑의 기억이 자서전의 글귀들 속에 들어가게 되고 그것이 하나의 단서가 되어 다시 지은호와 은동이를 이어준다는 설정도 그렇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상대방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서도 이미 달라진 상황(은동이는 이미 결혼했고 아이까지 있다)으로 인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중요한 장치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뭐든 즉각적으로 연결하고 이뤄지고 헤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사랑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까이 있어도 그 사람이 그리운 그런 사랑.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을 맘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 그래서 가슴 한 켠이 무너지지만 그런 아픔조차 넉넉히 감당해내게 하는 사랑. 어찌 보면 너무 구닥다리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거리가 유지되어 있어 더더욱 마음과 마음이 전해지는 사랑 이야기.

 

시청률은 낮지만 그 낮은 시청률로 모든 걸 평가하기에는 아까운 드라마가 <사랑하는 은동아>. 일단 첫 회를 보게 되면 끝까지 빠져서 볼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는 그 느릿느릿하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진중한 사랑의 이야기로 이 시대에 잊고 있던 진짜 사랑의 기억들을 되살려 놓고 있다. 지은호가 은동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마치 그녀가 된 듯 가슴에 먹먹함이 느껴졌던 것처럼. 은동이의 잊혀진 기억이 지은호의 순애보로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