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보증수표 MBC사극,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시작부터 불안 불안했다. 물론 초반 흐름은 신선했다. 광해의 이야기를 가져와 그 권좌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욕망을 그리겠다는 시도는 참신해보였다. 하지만 정명공주(이연희)가 이야기의 중심축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조금씩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정명공주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 자체가 무리수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화정(사진출처:MBC)'
여러 인물들의 욕망을 그리겠다면 그 각각의 인물들이 매력적으로 자리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건 결코 쉬운 시도가 아니었다. 각 인물들의 욕망이 이해되고 거기에 공감하게 되어야 이들의 이전투구는 흥미진진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공감이 빠져버리게 되자 남은 건 복마전이다. 끝없는 욕망과 배신이 이어지는 복마전 속에서 시청자들은 어느 한 인물에게 몰입하는 것마저 힘들게 된다.
그나마 시청자들의 몰입이 가능한 지점은 멜로다. 정명공주와 주원(서강준)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에 빠져들다 보면 정작 <화정>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정치적 대결구도들이 점점 저 뒷 배경으로 사라진다. <화정>은 다양한 인간군상을 병렬적으로 그려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진 사극으로 시작했지만 그걸 성공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데는 역부족임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시청률에서마저 SBS <상류사회>에 뒤지는 결과가 이어졌다. 6일 방송에서 <상류사회>는 9.4%(닐슨 코리아)를 기록했지만 <화정>은 8.9%를 기록했다. 사극이 현대물에 그것도 멜로드라마에 시청률에서 졌다는 것은 지금껏 MBC가 구축해놓은 월화 사극의 전통 속에서 바라보면 치욕스런 일이다.
MBC는 한때 <주몽> 같은 사극을 통해 거의 1년 가까이 월화의 밤을 장악했던 적이 있다. 타 방송사들은 아예 월화 사극이 들어오면 ‘넘사벽’으로 여기는 경향까지 생기기도 했다. 당시 이 힘을 이끈 건 이른바 이병훈 사단으로 대변되는 MBC 사극의 주역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완규 작가가 있었고, 이병훈 감독이 있었다. 물론 <화정>의 김이영 작가도 이병훈 사단의 일원이다. 하지만 홀로서기로 나선 이번 작품에서 역시 50부작에 이르는 대하사극을 그린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절감하는 중이다.
이전 월화 사극이었던 <빛나거나 미치거나> 역시 10%대 시청률에 머물며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바 있다. 그것은 <야경꾼일지>도 마찬가지다. 시청률이 거의 9%대에 머물렀다. 그나마 월화 사극의 자존심을 지켰던 건 시청률 25%대를 유지했던 <기황후>였다. 하지만 <기황후>는 역사 왜곡문제로 꽤 지난한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때는 시청률 보증수표이면서, 화제성에 있어서도 완성도에 있어서도 누구나 인정하던 것이 MBC 사극이라는 브랜드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런 공식은 깨지고 있다. 사극이면 무조건 20% 이상부터 시청률이 시작한다고 말하던 시대도 점점 저물고 있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지만 이 정도의 결과를 계속 낸다면 그 효율성이 떨어져도 너무 떨어진다고밖에 볼 수 없다.
반 정도를 달려온 <화정>의 추락은 이제 남은 반을 또한 불안하게 만든다. 이제 광해군 역할을 했던 차승원이 빠져나가는 시점이다. 대신 그 자리는 이연희와 김재원이 이끌어야 한다. 이들은 다시 <화정>을 MBC 월화 사극의 부활로 이끌 수 있을까. 드라마 왕국이라고 불리며 시청률 보증수표로 자리했던 MBC 사극은 이제 향수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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